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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963회 작성일 2021-03-24 09:11
<중앙출신 문인탐방, 한국시의 정부(政府), 서정주> 김영철(60회) 교우가 밴드에 올린 글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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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의 정부(政府), 서정주>


미당 서정주는 ‘한국시의 정부(政府)’, ‘언어의 정부’로 불려지는 시인이다.

시와 언어를 다듬어 한국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문단의 지도자라는 평가에서 나온 말이다. 그 만큼 서정주는 한국시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우리나라 시인부족의 족장’, ‘시단에서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인물’이라는 비평가들의 말도 그가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의 대표작 <국화 옆에서>는 국민애송시로 사랑받고 있다.


서정주는 1915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다.

조부가 가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가세가 기울고, 부친은 고창군 측량기사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1929년 중앙고보에 입학(25회)했다.

하지만 광주학생운동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퇴학당하고 말았다.

향리인 고창고보로 전학했으나 자퇴를 강요당했다.

이처럼 그는 항일운동의 선봉에 서서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중앙고보 재학시 사회주의에 감염되어 빈민계층의 고통스런 삶에 고민하였다.

가죽구두 대신 노동자들이 신고 다니는 ‘찌까다비’를 애용한 것도 그러한 빈민계층에 대한 연민에서 나온 것이다.

심지어 아현동 마루턱 빈민굴에서 생활하다 장티푸스에 걸리기도 하였다.


당시 계급운동은 프로레타리아 계층으로 전락한 우리 민족을 구원해야 한다는 점에서 민족주의 운동과 관련이 깊다.

미당이 사회주의 운동이나 조직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일제 탄앞에 신음하는 빈민계층에 연민을 가졌음은 분명하다.


중앙불교전문학교에서 수학한 후 만주 간도로 가서 양곡주식회사 경리사원으로 있다가 일제말기에 귀국하였다.

해방공간에서 ‘조선청년문학가협회’(1946)와 ‘한국문학가협회’(1949)를 결성하여 좌익문단에 대응했다.


동아일보 문화부장, 동아대 교수를 거쳐 정부수립 후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을 역임했다.

6.25 전쟁 당시 종군작가로 활동하다 정신분열증을 일으켜 부산에서 요양하기도 하였다.


1.4후퇴시 가족들과 귀향하여 전주 전시연합대 강사, 조선대 부교수를 지냈다.

초대 예술원 회원으로 추천되고 서러벌예대를 거쳐, 동국대 교수로 재직했다.


시단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한국현대시인협회장, ’한국문인협회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시의 발전에 초석을 놓았다.


그의 데뷔작은 <자화상>(1935, ’시건설‘)이었고 이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 김동리, 유치환, 김광균, 김달진 등과 ’시인부락‘을 결성하여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생명주의 시세계를 펼쳤다.

1930년대에 서정주는 이용악, 오장환과 함께 3대 시인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당은 시의 정부답게 15권의 시집과 1000여 편의 시를 남겼다.

첫 시집 『화사집』(1941)에서 악마주의적이고 데카당틱(decadantic)한 관능미와 탐미성을 추구하여 ’한국의 보들레르‘라는 별칭을 얻었다,

『화사집』은 악마주의 시인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한국시단에 피워냈던 것이다.


해방 후에 나온 『귀촉도』(1948) 에서부터 시세계가 전환되어 동양주의에 기초한 영겁의 생명을 추구하며 심화된 정서와 세련된 시풍으로 민족적 정조를 부각시켰다.


『신라초』(1961)에서는 불교정신을 기조로 한 영원주의 이념과 선적(禪的)인 정서를 부활시켰다.

『질마재 신화』(1975)에서는 한국시의 공간을 신화의 세계로 끌어 올렸다.


문학교수로 학문적 이론서인 『시창작교실』, 『시문학개론』, 『한국의 현대시』 등 명저를 남겼다.

그가 키운 제자들만 해도 박재삼, 고은, 황동규 등 100여 명이 넘어 그들 그룹을 ‘미당스쿨’이라고 부를 정도다.


영국의 비평가 파운드(E.Pound

)는 한 편의 뛰어난 이미지로도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미당은 국민애송시 <국화 옆에서> 한 편으로도 우리시사에 영원히 남을 족적을 남겨 주었다.

고통과 번민의 젊음의 뒤안길을 거쳐 성숙한 인간으로 태어나는 통과제의적 구조가 뛰어나다. 인간적으로 성숙해진 누님을 한송이 국화꽃으로 피어낸 절창인 것이다.


*2015년부터 미당문학제가 열리는 고향 질마재는 온마을이 국화로 뒤덮힌다.

살아 생전 생가를 그대로 보존해 달라 당부했고, 그래서 작고한 2000년 이후에야 쓰러질듯한 생가를 새롭게 복원했다. 시인답게 묘소도 자그마하게 단장됐다. 미당문학제에 가서 <국화 옆에서>의 국화향을 만끽하면 멋진 문학기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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