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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100년이 얼마남지 않은 한국야구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전통의 학교로 비록 현존하는 중앙 4개대회 우승은 단 2회에 그치지만 해방이전부터 수많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기록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중앙고는 70년대 후반까지 서울을 대표하는 강팀으로 남아있었고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을 양산했던 학교이기도 합니다...
1961년과 62년 투수 김옥수와 과거 한국 최고의 도루왕이었던 유격수 하갑득의 활약으로 2년연속 황금사자기 결승에 올라 성동고와 경기공고에 각각 패해서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중앙고를 누르고 우승했던 두학교의 감독이 모두 백효득씨였다는 것입니다...
65년 중앙고는 2학년 듀오였던 투수 이원국과 유격수 이광환의 맹활약에 힘입어 전국 최강의 팀으로 군림합니다... 이해 황금사자기에서 우승하면서 해방이후 첫번째 우승을 기록했고 청룡기에서도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에 투수 이원국이 고3 재학생 신분으로 일본 도쿄오리온스에 스카웃되면서 중앙고의 2년연속 최강의 꿈은 무산되었습니다...
이원국은 일본에서는 단 1년만 뛴 후 미국으로 건너가 트리플A에서 주로 활동했던 선수입니다... 프로야구 원년 돌풍을 일으키던 박철순이 더블A 소속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인 선수로서는 대단한 활약이었고 맥시칸리그로 선회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70년대에 첫번째 메이져리거를 탄생시킬 가능성도 있었던 선수였습니다...
이원국-이광환에 이어서 중앙은 이원녕과 이종도, 강타자 듀오를 또다시 배출합니다... 이원녕은 78부터 79년까지 상업은행 소속으로 아마야구 신기록인 31경기 연속안타를 기록했던 선수였고 이종도도 제일은행에서 홈런타자로 이름을 날린후 프로에까지 명성을 이어갔던 선수였습니다... 이원녕과 이종도는 고교시절에는 투수와 포수로 호흡을 맞추던 사이였습니다...
71년 황금사자기 준우승에 이어 72년 청룡기에서 중앙고 역사상 두번째 우승을 가져다준 선수는 투수겸 4번타자 윤몽룡입니다...
당시 고교야구는 막강전력의 경북고와 윤몽룡의 중앙고간 라이벌전이 매대회 이어집니다...
71년 황금사자기 승자결승에서 남우식의 경북을 꺽었지만 패자부활전 제도를 채택했던 당시 규정으로 다시 결승을 벌여 한경기만 이기면 되는 유리한 상황에서 내리 두경기를 내주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듬해 청룡기 결승에서 다시 경북을 만나 황규봉-이선희의 계투를 꺽고 우승합니다...
윤몽룡은 프로출범이전에 이른나이에 은퇴해서 OB코치로 재직중이던 84년 백혈병으로 31살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75년에는 이동영-선우기 배터리의 활약으로 황금사자기 결승에 올라서 부산상고에 0-1로 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그치게 됩니다...
80년에는 투타의 핵이었던 안언학을 중심으로 대통령배와 청룡기 연속해서 4강에 진출했고 봉황기에서는 선동열의 광주일고를 꺾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20대감독이었던 이광환은 지금과는 다른 아기자기한 플레이로 기습번트와 작전야구로 정공법으로는 무너뜨리기 힘들었던 선동열을 괴롭히면서 3-2의 승리를 따내게 되죠...
그 이후 중앙고는 조재환-최훈재-이숭용 등의 강타자들을 연속해서 배출했지만 약 15년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침체기에 빠졌다가 94년 송신영, 김병일의 투수진과 포수 홍성흔으로 두대회 8강에 진출하고 95년에는 투수 박찬협의 활약으로 모처럼 청룡기 4강에 오르게 됩니다...
과거와 같은 성적은 아니지만 중앙고는 2000년 들어서도 계속 8강이상의 성적을 매년 거두는 안정된 전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2002년과 2003년에 봉황기에서 2년연속 준우승에 그친 것이 아쉬웠습니다...
중앙은 2007년에도 좌완 민성기와 언더핸드 노진용의 절묘한 조화로 대통령배 4강과 봉황기 8강에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둔 일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