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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418회 작성일 2009-08-12 17:19
이원국(58회)-한국야구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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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국, 멕시칸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를까?
스포츠2.0 | 기사입력 2007-08-28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 가장 큰 영광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이다. 현역 시절 무수한 스포트라이트에 익숙한 스타 선수들도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는 감격에 젖는다. 지난 7월 30일(한국시간)에는 칼 립켄 주니어토니 그윈이 뉴욕주 쿠퍼스타운에 있는 명예의 전당에서 팬 7만여 명의 박수 속에 감격적인 헌액 연설을 했다. 최초의 한국인 메이저리거인 박찬호도 은퇴 뒤 5년이 지나면 일단 후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후보 자격을 얻기 위해서도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 투표에서 75% 득표를 해야 하므로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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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caption.gif멕시코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의 상징 벽화.(WWW.SALONDELAFAMA.COM)

일본프로야구에는 명구회(名球會)에는 1926년 이후 태어나 일본프로야구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2천 안타, 200승, 250세이브 이상을 넘긴 선수는 자동 가입된다. 오치아이 히로미쓰 주니치 드래건스 감독처럼 가입 조건을 갖추고도 입회를 거부한 선수도 세 명이나 있다. 현재 회원은 44명으로 한국 국적을 유지하면서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밝힌 선수는 통산 3,085안타의 장훈뿐이다.

사상 2번째 일본 진출, 최초의 미국 진출

국내 프로야구에는 아직 명예의 전당이 없다. 그러나 해외로 눈을 돌리면 장훈 다음으로 또 다른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선수가 나올지 모른다. 주인공은 1983~1984년 MBC 청룡에서 뛰었던 이원국(58)이다.

SPORTS2.0은 이원국이 지난해 11월 ‘멕시코프로야구 명예의 전당(Salón de la Fama del Beisbol Profesional de México)’이 발표한 2007년 예비 후보 60명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실을 확인했다.

이원국은 1965년 황금사자기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2학년 에이스로 모교 중앙고에 해방 이후 첫 우승을 안긴 투수다. 10월 20일 부산고를 상대로 한 결승전에서는 삼진 17개를 뽑아내며 1안타 완봉승을 기록했다. 이원국과 동기로 당시 유격수로 뛰었던 이광환 한국야구위원회(KBO) 육성위원장은 “고교 시절 이원국은 강속구를 앞세운 투수였다. 스피드건은 없었지만 시속 150km 가까운 강속구를 던졌다는 게 정설이다. 변화구는 커브와 슬라이더를 던졌지만 직구 위주의 피칭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원국은 고교 3학년이던 1966년 3월 일본프로야구 도쿄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했다. 구단주인 나가노 마시이치 다이에이영화사 사장이 그해 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영화제에 참석했다가 그의 가능성을 높이 사 스카우트한 것이다. 해방 이후 한국 국적 선수로는 1962년 백인천 이후 2번째 일본프로야구 진출이었다.

그러나 일본프로야구 1군에서는 1967년 한 경기에 등판하는 데 그쳤다. 이 경기에서 이원국은 1⅓이닝 동안 타자 7명을 맞아 2안타 볼넷 1개로 2실점했다.

1968년에는 외국인선수 정원 제한에 걸려 ‘야구 연수’라는 명목으로 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다. 이듬해 도쿄 오리온스가 롯데로 매각되자 그대로 미국에 정착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입단해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

미국야구연구회(SABR) 회원인 프리랜스 야구작가 메리트 클립턴은 “이원국이라는 투수가 스프링캠프에서 처음에 오른손과 왼손으로 모두 피칭을 하는 스위치 피처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곧 원래의 오른손투수로 돌아갔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고교 시절에는 한 번도 양손 투구를 한 기억이 없다. 아마 뭔가 와전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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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caption.gif멕시칸리그 사비나 소속이던 이원국.(SPORTS2.0)

'에르네스토 카를로스 리'

이원국은 이후 몬트리올 엑스포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을 옮겨 다녔다. 트리플A까지는 승격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메이저리그 진입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1972년 5월부터 ‘에르네스토 카를로스 리’라는 이름으로 멕시코로 무대를 옮겼다. 소속팀은 사비나스, 살티요, 코아우일라, 몬클로바, 포사리카 등이었다. 멕시칸리그는 1955년 마이너리그 더블A급으로 편성됐지만 이원국이 뛰던 당시에는 트리플A급이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협회가 펴낸 <한국야구사>에는 이원국이 멕시칸리그에서 통산 150승85패를 기록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멕시코 명예의 전당 홈페이지는 이원국의 통산 성적을 149승128패 탈삼진 1,126개에 완투 154회와 완봉 33회로 기록하고 있다. 통산 방어율은 2.81로 멕시칸리그 역대 6위다.

특히 1979년에는 무려 37경기에 등판해 277이닝을 던져 19승14패 방어율 2.53을 기록하는 놀라운 투구를 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그해 이원국은 마이너리그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공을 던진 투수였다. 270이닝 투구는 1970년대 마이너리그에서 여섯 번밖에 나오지 않은 기록이다. 한편 윈터리그인 멕시칸퍼시픽리그에서는 5시즌 동안 통산 16승23패 방어율 2.97 탈삼진 161개를 기록했다.

이원국은 1983년 3월 18일 국내로 복귀해 MBC와 계약금 4천만 원, 연봉 3천만 원에 계약했다. 그러나 그해 8경기에 등판해 1승1패에 그쳤다. 이듬해에는 오른쪽 팔꿈치 부상에다 김동엽 감독과의 불화가 겹쳐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하고 결국 시즌 뒤 임의탈퇴선수로 은퇴했다. 은퇴 뒤에는 멕시코로 돌아가 전 소속팀인 사비나스의 단장으로 2년 동안 활약했고 그 뒤 미국 텍사스주에서 건축 사업을 했다. 지금은 하와이에 살며 2~3년에 한 번꼴로 한국을 찾고 있다.

내년에는 과연?

멕시코 명예의 전당은 올해 예비 후보 60명 가운데 다시 최종 후보를 추린 뒤 투표를 거쳐 헌액 선수를 뽑는다. 이원국은 최종후보 8명 명단에는 들지 못했다. 그러나 예비 명단 투수 가운데 다승에서는 4위다. 이원국보다 승리가 많은 투수 세 명의 방어율은 모두 3점대다. 멕시코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도 전년도 후보가 다시 후보로 오르는 게 가능하다. 지난해까지 모두 137명이 헌액됐으며 미국, 쿠바, 푸에르토리코 등 외국 출신 선수는 29명이다. 이 가운데는 전설적인 니그로리그 선수 조시 깁슨과 몬테 어빈 등도 있다.

SPORTS2.0 제 65호(발행일 08월 20일) 기사

최민규 기자

 

 

한국선수 ML 도전사 ‘1968년 이원국 첫테이프’
입력: 2005년 11월 24일
한국 선수들이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 도전하기 위한 노력과 시도는 30년 넘게 계속 돼 왔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한 선수는 이원국이다.
일본 도쿄 오리온스를 거쳐 지난 68년 미국프로야구에 진출, 샌프란시스코 등의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하다 멕시칸리그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멕시코에서 150승 이상을 거둬 현지에서는 꽤 유명한 한국 야구인이다.
이재우 전 OB 감독이 내야수로 72년 시애틀 마이너리그에서 잠깐 활약했고,
박철순이 연세대를 졸업하고 지난 80년 밀워키 브루어스에 입단해 더블A에서 뛰었다.

이후에는 뜸했다. 지난 94년 미국프로야구에 진출한 박찬호는 한국야구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한양대 재학 중 태평양을 건너간 그는 곧바로 그해 메이저리그 데뷔 등판을 해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가 됐다. 96년부터는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97년 이후 풀타임 선발투수로 활약하며 100승을 돌파하는 등 한국인 빅리거의 상징이 됐다.

같은 해 최경환이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 계약했다.
그러나 그는 빅리그에는 오르지 못한 채 보스턴 마이너리그를 거쳐 2000년 한국 프로야구로 유턴한 첫번째 선수가 됐다.
97년부터 붐을 이뤘다. 서재응-서재환 형제가 나란히 뉴욕 메츠에 입단했고, 김선우도 보스턴과 계약했다. 봉중근은 고교선수로는 처음으로 태평양을 건넜다.
 
98년에는 정석·조진호·백차승·김병일이, 99년에는 김병현과 최희섭을 비롯해 5명이나 미국행을 선택했다.

김병현은 한국인 최초 마무리 투수로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하며 월드시리즈에서 두 번이나 우승했다.
 
최희섭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최초의 한국인 타자로 이름을 올렸다.
2000년에는 이상훈이 보스턴과 계약해 한·미·일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한 첫 한국인이 됐다.
최향남은 한국 프로야구만을 경험하고 미국에 진출한 첫번째 선수다.

일본프로야구 출신 한국진출 선수 (투수편 1)

 

 

 

 

현해탄을 건넌 선수들-일본프로야구 출신 한국진출 선수 (투수편 1)

 

한국프로야구 23년간 알게 모르게 일본프로야구에서 뛴 선수들이 많았다.수퍼너구리 장명부, 백인천 감독, 황금박쥐 김일융 등 일본에서도 스타급 실력을 가진 선수들이 있었는가 하면, 2군에서 눈물젖은 빵을 먹으며 지내다 우리나라에서 성공을 거둔 선수도 있다.

 

23년간 한국프로야구를 거쳐간 일본프로야구 선수는 얼마나 될까?

 

1. 김시철 (石川 厚/이시가와 아츠시)

생년월일 : 1958.11.24

투타 : 우투우타

경력 : 배문고-하카타고-요미우리(1979)-MBC(1982)

 

김시철은 일본프로야구 출신 1호 선수로, 한국국적 선수로는 3번째로 일본야구에 도전했다.배문고 출신으로 봉황대기 1회전에서 반짝하면서 바로 일본 하카다고교로 건너갔다가 1978년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면서 화제가 됐었다.
그러나 2년간 2군에 머물었을뿐, 1군에는 전혀 올라오지 못하고 퇴단했다. 퇴단후 우리나라 실업야구에서 뛰다가 1982년에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MBC 청룡에 입단하게 된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역시 오랜동안 뛰지 못하고 은퇴하고 만다.

 

통산성적

@일본 1군 기록 없음

@한국 1982 MBC 2경기 1승 5.2이닝 방어율3.18

 

1982년 6월 20일에 롯데전에서 선발로 나와 거둔 승이 유일하다.

 

2. 이원국

생년월일 : 1949.5.10

투타 : 우투우타

경력 : 중앙고-도쿄 오리온스(1967)-(미국 마이너리그, 멕시칸리그)-MBC(1983)

 

60년대 중반 중앙고 전성기 때 강속구로 주목을 받던 선수다.
(참고로 이광환 前 LG 감독과는 동기며, 이종도 고려대 감독과는 2년 선배다.)

 

 

*** 이종도(61회)이므로 3년선배가 맞음

 

당시 일본고교선발팀과의 경기에서 홀로 승리를 거둔게 계기가 되어 일본에 진출하게 된다. 백인천에 이어 한국출신 선수로는 2번째다.

그러나 1군경기에서 승패없이 1경기만 뛴 이력이 있다.

 

일본진출 이후 미국에 최초로 진출한 한국인 선수로 역사에 남았지만, 역시 실력차때문에 마이너리그와 멕시칸리그를 전전하다 1983년에 MBC에 입단하게 된다.복귀한 그 해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강속구를 구사할 수 있었던 이원국이었지만, 역시 제구력 난조로 복귀 첫해에 은퇴를 하고 만다.

 

통산기록

@일본(1967) 도쿄 오리온스 1경기 1.1이닝 방어율18.00

@한국

1983 MBC 8경기 1승1패 38.2이닝 방어율4.42 1완투 6삼진

 

 

3. 장명부 (福士 明夫/후쿠시 아키오)

생년월일 : 1960.12.13

투타 : 우투우타

경력 : 돗토리서고-요미우리(1971)-난카이(1973)-히로시마(1977)-삼미*청보(1983)-빙그레(1986)

 

일본에서 91승을 거둔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초창기 한국프로야구에 음양으로 영향을 끼친 선수다. 1979년 '붉은 헬멧군단' 히로시마 카프의 니폰이치(니폰시리즈 우승팀)에 등극할 때 멤버였기도 했다.타자의 심리를 떠보는 투구패턴과 스리쿼터 형식의 투구폼, 그리고 프로선수로서 규칙에 정통해야 하는 등 한국프로야구에 좋은 영향을 줬다.

 

그러나 장명부하면 계약당시 구단주와 한 얘기때문에 첫 해에 30승이라는 엽기적인 성적을 거두고, 사구(死球)를 던지고 나서도 능글맞게 웃는 표정으로 그때문에 붙은 '너구리'라는 별명, 또한 성과급 인센티브제를 들고 나오는 등 안좋은 추억(?)도 많이 남겼다.
1983년 삼미와 함께 몬스터시즌을 지낸 장명부는, 이후 연봉협상문제로 구단과 불화로 태업을 감행하다가 결국 1986년 빙그레 창단멤버로 트레이드 되고 그해 은퇴하게 된다.
그후 롯데, 삼성에서 투수코치를 지냈으나 1989년 각성제 소지 혐의로 체포되어 한국을 떠났다. 현재는 일본에서 택시운전을 한다는 등 하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통산성적

@일본(1971~1982) 339경기 91승 84패 9SV 1634.1이닝 방어율3.68

@한국

1983 삼미 60경기 30승 16패 6SV 427.1이닝 방어율2.34 36완투 5완봉 220삼진

1984 삼미 45경기 13승 20패 7SV 261.2이닝 방어율3.30 15완투 2완봉 145삼진

1985 삼*청 45경기 11승 25패 5SV 246이닝 방어율5.30 10완투 128삼진

1986 빙그레 22경기 1승 18패 108.1이닝 방어율4.98 3완투 48삼진

통산 172경기 55승 79패 18SV 1043.1이닝 방어율3.55 64완투 7완봉 541삼진

 

 

4. 주동식 (宇田東植)

생년월일 : 1948.8.23

투타 : 우투우타

경력 : 일본 중앙대-닛타쿠홈*니혼햄(1973)-한신(1982)-해태(1983)

 

우완 언더스로 투수로 1972년 드래프트 4순위로 도에이와 계약을 하고(이후 도에이는 닛타홈, 니혼햄으로 매각되게 된다.) 1982년에 한신으로 이적한다. 그리고 한신과의 계약을 1년 남겨두고 해태에 입단하게 된다.
히로시마 카프 출신의 김무종과 함께 배터리를 이루어 변화구 위주의 투구로 타자를 농락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특히 입단 첫해에 한국시리즈에서 2승을 거두어 해태가 승리하는데 일조를 했다.
그러나 코칭스텝과의 불화로 출장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고, 상대적으로 빠르지 않은 직구 속도 때문에 국내 타자들에게 난타를 당하기도 했다.

 

통산성적

@일본 (1973~1982) 171경기 16승 19패 471.2이닝 방어율3.97

1983 해태 30경기 7승 7패 3SV 134.1이닝 방어율3.35 3완투 2완봉 56삼진

1984 해태 18경기 6승 5패 83.1이닝 방어율2.27 4완투 2완봉 27삼진

통산 48경기 13승 12패 3SV 217.2이닝 방어율2.94 7완투 4완봉 83삼진

 

 

5. 김일융 (新浦 壽夫/니우라 히사오)

 

금일 융(니우라 토시오)

생년월일 : 1951.5.11

투타 : 좌투좌타

경력 : 시즈오카상고-요미우리(1972)-삼성(1984)-요코하마 다이요(1987)-후쿠오카 다이에(1991)-야쿠르트(1991)

 

깔끔하고 수려한 외모에 신사적인 경기 매너로 많은 팬을 몰고다녔던 선수다. 김일융은 1970년 드래프트에서 국적문제로 조항을 바꾸는 등 화제를 모았던 선수로, 일본 명문팀 요미우리에서 매년 10승이상을 거두는 일본 정상급 투수였다. 그러나 1983년 돌연 은퇴후 이듬해에 한국프로야구에 뛰어들게 된다.첫 경기였던 삼미전에서 구원투수로 나가 동점 3점 홈런을 맞는 등 순조롭지 못한 출발을 보였지만, 이후 16승을 기록하여 김시진과 원투펀치를 이뤄 팀이 전기우승을 하는데 공헌 했다. 요미우리 시절의 강속구는 볼 수 없었지만 커브와 체인지업 등의 변화구로 한국 타자들을 요리했다.

 

그리고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3연패를 한 새가슴 김시진과는 달리 한국시리즈 7차전 전까지 3연승을 거두며 MVP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7차전에서 유두열에게 역전 3점 홈런을 내주며 우승과 시리즈MVP를 놓쳤다.이듬해인 1985년에 5월부터 7월까지 14연승을 기록하는 등 25승을 거둬, 김시진과 함께 시즌 최다승을 거두며 1985년 삼성이 통합우승을 하는데 일조를 했다.

 


참고로 김일융의 14연승은 역대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1위 박철순(22), 2위 정민태(21), 3위 김시진(16))
고국에서 맞는 세번째 시즌에도 13승을 거둬 팀을 또 한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데 공헌을 하기도 했지만, 그해 한국시리즈를 끝으로 다시 일본에 복귀한다.
1987년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로 복귀하여 10승을 거두는 등 올해의 재기선수상을 받기도 했다. 이후 6년간 더 활약을 하며 1991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은퇴한다.
작년에 일본프로야구 OB올스타전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통산성적

@일본

(1971~1983, 1987~1991) 592경기 116승 123 패 39SV 2158.2이닝 방어율3.45

@한국

1984 삼성 38경기 16승 10패 3SV 222이닝 방어율2.27 14완투 3완봉 155삼진

1985 삼성 34경기 25승 6패 226이닝 방어율2.79 11완투 3완봉 107삼진

1986 삼성 19경기 13승 4패 138.2이닝 방어율2.53 7완투 2완봉 60삼진

통산 91경기 54승 20패 3SV 586.2이닝 방어율2.53 32완투 8완봉 322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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