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전국대회 무승 유신고 '4강 기적' 쐈다 > 모교소식

# 북일고, "우리 결승전 상대는?"

지난 8일 봉황대기 준결승전 첫 경기였던 광주일고와 신일고의 경기가 중반으로 흐르던 수원야구장.

3루쪽 덕아웃에 도착한 북일고 선수들은 일제히 전광판을 응시하며 결승전 상대가 어디가 될지에 관심을 보였다.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충암고에게 3-0으로 져 준우승, 청룡기대회에서도 신일고에게 5-3으로 무릎을 꿇고 준우승에 머문 북일고로서는 준결승전에서 맞붙을 유신고보다 결승전 상대가 누구일지에 더 관심을 쏟는 것 같았다.

북일고는 안승민(3학년,우완)이 버티고 있던 공주고를 3-1로 물리치고 4강에 올랐고 유신고와 결승진출을 다퉈야 했다. 원래 덕수고가 올라오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예상을 뒤엎고 유신고는 파란을 일으키며 4강에 합류했다.

# "오늘 저희 선발 용주 아니에요. 월요일 결승 준비해야죠."

청소년 대표에 이름을 올린 김재우(북일고3, 중견수)는 당연하다는 듯 김용주(3학년, 좌완)는 대기조라고 밝혔다. 이미 마음은 결승전을 준비한다는 뜻이었다.

김용주는 올 시즌 고교 최고의 왼손투수로 두 차례 준우승을 이끈 자타가 공인하는 북일고 에이스.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36이닝 2자책점(방어율 0.50), 청룡기 땐 21.1이닝 4자책점(방어율 1.69)을 기록했다.

이번 봉황대기에서도 3경기에서 총 10.2이닝을 던져 방어율0에다가 팀 승리의 전부인 3승을 챙기고 있던 에이스였기에 북일로서는 최대한 그를 보호하고 경기를 잡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 돌풍의 주인공 유신고, "내친 김에 결승가자"

유신고는 올 시즌 봉황대기전까지 전국대회 성적 3전 3패였다. 황금사자기 1회전 탈락, 대통령배에서 북일고에게 11-4 패, 화랑대기 대구고전 13-1로 단 1승도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봉황대기에서는 완전 딴판이었다. 포철공고를 3-2 , 중앙고를 6-1로 격파한 뒤 부경고를 5-0 으로 꺾고 8강에 합류했다. 그리고 우승 후보 덕수고까지 꺾고 4강행 막차에 올라탔다.

대통령배 우승팀이자 우승후보 1순위로 자타가 인정했던 덕수고와의 경기는 객관적인 전력 면에서나 큰 게임을 치러본 경험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던 게 사실. 더구나 이미 유신고로서는 당초 목표였던 8강 진입 달성을 이뤄낸 만큼 부담감 없이 후회없는 경기를 펼치자는 것이 팀의 분위기였다.



# 덕수, 상대를 가볍게 여겼다가 낭패

덕수고의 준결승 선발투수는 김경도(3학년, 3루수). 이미 결승 진출, 나아가 우승을 염두에 뒀던 덕수고는 비책을 꺼내들었다. 주축 투수들의 체력 소진을 막고 시즌 2관왕을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김경도는 덕수중학교 시절엔 투수로도 활약했지만 고교진학 이후엔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가 준결승 선발투수로 변신했다. 팀내 부동의 4번 타자를 마운드에 선발로 내세워 최대한 이닝 수를 끌고 가겠다는 의도였고 실점을 한다 해도 충분히 방망이로 만회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저희를 얕본 거죠. 그래서 더 이기고 싶었어요. 오기가 생기던 걸요. 초반에 점수를 많이 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끝까지 힘들었죠."

박태관(유신고3, 1루수)은 상대가 강하다는 건 인정해도 깔봤다는 건 참을 수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1회 초 유신고는 김경도 투수를 상대로 볼넷 한 개와 야수선택에 이어 내야 땅볼로 선취점을 냈다.

6회 2아웃 만루 위기에서 밀어내기 볼넷으로 동점을 허용했지만 8회 2사 후 7번 박광현(2학년, 2루수)의 팀내 4호 안타에 이어 상대투수 폭투로 2루까지 진루한 뒤 8번 강승훈(1학년, 3루수)의 천금 같은 우전 적시타로 결승점을 뽑아내 덕수고를 침몰시켰다.



# "강호 덕수고를 꺾었어? 만만치 않겠는걸?"

유신고- 북일고의 준결승전은 명승부였다. 서로 견제를 하듯 에이스를 초반에 내세우지 않았지만 두 팀의 경기는 득점없이 5회까지 빠르게 진행됐다. 북일고로서는 계획대로 최대한 김용주의 투입시기를 늦출 수 있었다.

유신고는 5회 선두타자가 3루타를 날렸고 6회에도 2사 만루의 기회를 맞았지만 점수와는 연결시키지 못했다. 전날 덕수고와의 경기에서 4이닝 동안 81개의 투구수를 기록한 김학성(유신고3)은 3회에 투입돼 점수를 내주지 않고 호투했지만 50개가 넘어갈 즈음부터 구위가 떨어졌다.

결국 6회 오준혁(북일고2, 우익수)에게 적시타를 허용했고 7회에도 2번 박건주(북일고2, 2루수)에게 1타점과 중견수 실책이 겹치면서 2점을 상납, 결국 3-0 북일고의 승리가 확정됐다.

선발 임규빈(북일고3)에 이어 6회부터 던진 북일 김용주는 이번 대회 4승째를 챙겼고 방어율 0의 행진도 이어졌다.



# "잘했어. 괜찮아! 괜찮다구."

모처럼 수원구장엔 많은 관중이 모였다. 1루 스탠드 쪽을 거의 채운 관중가운데 유신고 재학생뿐만 아니라 수원의 유일한 고교야구팀을 갖고 있는 유신고 총동문회도 총출동했다.

9회초 공격이 무산되면서 경기종료가 확정되는 순간 유신고 선수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덕아웃 쪽으로 향했다. 이성열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는 깊은 한숨을 섞은 아쉬움을 내비치는 선수 한명 한명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비단 덕아웃 뿐만이 아니었다. 관중석에서도 '유신고 잘했어'라는 외침이 전해왔다. "이길 수도 있었는데 제가 점수를 줘서 진 거 같아 속상해요." 눈물을 애써 참아가며 김학성(유신고3, 사이드암)은 경기종료 후에도 한동안 아쉬움을 삭히지 못하고 말을 아꼈다.

"이기는 경기를 하면서 선수단이 똘똘 뭉치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더 이상 우리를 무시하는 팀은 없을 거에요. 저는 졸업을 하지만 후배들이 내년엔 더 좋은 모습 보여줘서 더 좋은 성적을 내줄 거라 믿어요."

1984년 창단 이후 2005년 제35회 봉황대기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던 유신고지만 그 이후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전통의 명문팀도 아니고 성적을 내는 강호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봉황대기에서 전국대회 4강 진출을 이뤄내며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우승 못지 않은 강한 인상을 남긴 유신고의 선전은 그것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