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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央 리틀야구단 | | | 중앙야구부 백년 |
2007.12.29 11:02 |
中央 리틀야구단
들어 보았는가?
예전 우리가 계동골목 오르락 내리락 할때
봄이면 대운동장에서 중앙 중학교에서 1학년 반대항 야구시합을 보았을꺼다.
중앙중학교에서 야구부지원이 없으니 선수수급을 위하여 중학교신입생을 대상으로
선수발굴을 했던걸로 기억한다. 아마 그 자원들이 중앙고까지 명맥을 이어왔었나보다...
근데 우리가 졸업한그해
이광환감독의 강력한 주장으로 중앙리틀야구단을 창단하였지
선수수급의 문제와 중학때 기본기를 익히다는것이 너무늦어서 리틀야구단을 창단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리틀야구와 국민학교야구와의 차이점은 모르겠지만..
리틀야구단은 아마 중1 까지 그러니깐 나이제한으로 팀을 구성하고 각지에서
야구하고싶은데 야구부가없는 어린아이에게 기회 제공인것 같다.
뒷산 공터가 그들의 연습구장이었고....
1대감독은 기억못하고...
2대감독은 초슬로우~~커브로 기억하는 이헌 선배였고
3대감독이 대중이라는 사실....
대중이가 중앙대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군대 가기전까지 中央리틀야구감독을 하였다
그래서 당시 술생각 나면 학교로 올라가 어린아이(후배?) 들 연습보고
음료수,짜장면 나눠 먹곤 하였다.
그때 귀엽게 생긴 중학생이 연습을 도와주곤 했는데...
갸가 봐로 최훈제였고....
근데 中央 리틀야구단이 크게 이름을 날리게 된다.
세계 리틀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이 우승하게되는데
당시 대회가 남미 어디에선가 대회가 개최되었고 우승후보는 대만과쿠바 그리고 남미국가 팀들이었는데
약체로 평가받던 대한민국이 홈런포를 빵빵쳐대며 우승하게 된거지....
그우승에 주역이 중앙 리틀야구단 선수2명이라는사실 몰랐지?
그중 한명은 대회 엠브피와 홈런왕을 차지하게 된다
갸가 중앙중학교 해체때까지 감독을 하였던 민상기(당시 중앙중1학년 아마79회나~80회정도..)였다
그니깐 대중이가 국가대표 2명을 길러내고 세계선수권 엠브피를 길러낸
명 조련사? 였다는거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대중이가 지도자로서의 탁월한소질이 있나보다)
그러나 대중이의 군입대와 함께 중앙 리틀야구단은 해체 하고만다(나도 그땐 군복무중이어서 잘모름)
아마 이광환감독의 프로진출로 학교의 야구부지원이 미약해지지 않았을까 추정할뿐이다.
대중이는 군제대후 당시 리틀야구선수 학부모의 강력한직구에 삼구삼진당하여 사위가 되고만다.
물론 처남은 중앙고 야구선수였고..............................
봉자애비(pappaa) | |
댓글목록
잘 던지다 큰거 한방을 맞는 바람에 아쉬었던 기억이......
이헌선배님은 지금 뭘 하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