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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건 조회 1,249회 작성일 2007-05-02 19:15
신동천 후배의 친형이 쓴 '내 동생 申東天'(블로그 펌글)

본문

내 동생 申 東 天 野球人   http://blog.naver.com/easthero25/40032955031    

1178100503.img.gm

 

 

내 동생 야구선수 신동천이다.

현재 고려대학교 야구부에 몸담고 있다.

 

나와 함께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야구부가 아닌 리틀야구 팀에서 취미삼아

야구를 즐기면서 배우기 시작했다. 나와는 다른 우투우타에다가 어려서부터

형제인데도 야구를 하는 스타일이 많이 달랐다.

 

나는 약간 부드러운 스타일의 야구를 한다치면, 동천이는 약간은 힘을 이용한

야구를 하는 선수였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 1학년 때는 야구와는 잠시 짧은

이별을 했지만, 워낙에 동급생들보다 머리하나는 더 컸던 덩치때문이었는지 

학교의 야구부장 선생님은 늘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동천이는 야구를 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아버지를 설득시키려고 노력하셨다.

그렇게 1년이 지속되었을 무렵, 아버지 역시 野球人이었기 때문일까?

 

아버지는 동천이를 야구선수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셨다. 물론 쉽지않은

과정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결국 자신이 꾸었던 꿈을 동천이가 이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동천이를 세광중학교 야구부에 입부시켰다.

당시 동천이는 아직은 어렸던 탓인지, 아니면 그 때부터도 야구를 좋아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별 불만없이 야구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중학교 시절, 유난히 컸던 체격과 타고난 파워로 중학생으로는 드물게

정식구장에서 프리배팅 때, 홈런을 꽤나 많이치는 선수였다. 그 잠재력을

인정받아 몇몇 타지역 고등학교들로부터 영입제의도 받았었지만,

아버지의 모교이고, 형인 내가 재학중이던 세광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중학교 시절, 엄청난 잠재력으로 인정받던 동천이는 세광고 시절,

그의 야구인생에서 첫 번째, 시련의 시기를 겪게 된다..

 

당시 팀의 감독과 코치들은 당장 한 게임, 한 게임 밖에는 생각할 줄 모르는 

근시안적인 팀 운영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에게 동천이는 1~2년 후에

팀의 중심이 될만한 재목감이기보다는 당장 시합에 내보내기 불안한 벤치선수에

불과했다. 본인과 가족의 꿈과 기대가 컸던만큼, 실망 또한 컸다. 

그 때부터 동천이는 팀에 대한 애정과 야구에 대한 열정을 조금씩 일어갔고,

야구공을 놓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가족들의 관심과 기대탓에

어쩔 수 없이 하던 야구를 정말 그만두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생겼다.

 

고 3시절, 첫 전국대회인 대통령배에서 동천이가 속한 충북대표 청주 세광고는

그 해 최고의 전력으로 평가받았고, 그 해 최대어 김대우를 앞세워 실제로도

2관왕을 차지했던 광주대표 광주일고와 1회전서 맞붙었다. 그 시합 광주일고의

선발투수는 당연히 김대우였고, 예상외로 시합은 팽팽하게 전개되었다.

동천이는 첫 타석에서 김대우의 빠른 직구를 받아쳐서 동대문의 중앙 펜스의

상단을 직격하는 큼지막한 홈런성 2루타로 팀의 첫 안타를 쳐냈지만,

두 번째 타석에서 높은 직구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자 감독은 동천이를 바로

시합에서 교체시켰다. 동천이뿐만이 아닌 거의 모든 선수가 삼진을 당했는데,

동천이만이 교체되었고, 고 3이라서 진학에 결정적인 전국대회 첫 게임에

그것도 그 해 최고의 투수에게 홈런성 2루타를 치고도 바로 교체를 당한 동천이는

더 이상 세광에서는 야구를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날 시합에서 진

세광은 바로 청주로 내려갔고, 동천이는 그길로 숙소에서 짐을 싸서 세광을

나왔다. 이 후, 한 달여간 아버지는 당시 서울에서 삼수중이었던 나와 동천이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들 중 동천이를 받아줄만한 학교를

구두굽이 닳도록 찾아다니셨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몇몇 학교와 말이 오갔고

그 중에서 서울의 중앙고등학교에서 테스트를 보자는 연락이 가장 먼저 왔고,

동천이는 중앙고의 감독과 코치진에게 피칭과 배팅 등의 간단한 테스트를 보았고,

동천이를 맘에 들어 했던, 조윤식감독의 덕으로 서울의 중앙고등학교로 전학을

하였다. 하지만, 교육청간의 합의로 만들어진 타지역으로 전학한 선수는 6개월간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는 룰 때문에 동천이는 고3, 1년동안 딱 2타수 1안타로 

1년 후를 기약하게 되었다.

 

하지만, 중앙고에서 운동하면서 새로운 야구를 배우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 동천이는 그제서야 잠재력을 실력으로 조금씩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새로운 코칭스태프가 추구하는 야구 스타일에 적합한 능력과 조건을

갖춘 선수였고, 새로운 팀 동료들과도 쉽게 친해져 야구를 하는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했다. 그렇게 6개월 이상을 절치부심하며 시합을 기다려온 동천이는

중앙고 선수로 이듬해 첫 대회부터 코칭스태프의 기대에 부응하며 중앙의

뛰어난 팀동료들과 힘을 합쳐 봉황기 준우승이라는 결과까지 이뤄내며 자신의

고등학교 야구인생의 마지막 해를 멋지게 불태우며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고려대학교 야구부에 스카웃되었다. 

 

그해의 거의 모든 게임을 보았지만, 평생 잊지못할 게임은 봉황기 결승전이 아닌,

4강이자 준결승이었던 대 세광고 전이었다. 자신을 홀대했던 세광고

코칭스태프들과 다시 만난 동천이는 중앙고의 선발 좌익수로 시합을 뛰었고,

그 경기에서 5타수 3안타에 1홈런에 4타점을 혼자 만들어내며 보기좋게 복수에

성공하면서 팀을 결승전으로 올려 놓았고, 덤으로 오늘의 봉황스타에

선정되기까지 했다. 그날 나는 내가 살아가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의

모교의 상대팀을 응원했고, 모교가 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속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화려하게 고3 시절을 마친 동천이는 꿈에 그리던 고려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다시 한 번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었다. 고등학교까지 병행해왔던

투수와 야수 중 하나에만 전념해야 하는 기로에 선 동천이는 늦게 시작했지만,

매력을 느낀 투수의 길을 선택했고, 그 시작은 순조로운 듯 보였다. 1학년 초반

감독의 신뢰하에 종종 등판 기회를 잡았었던 동천이는 1학년 춘계리그 시합에서

대 인하대전에 연장 11회에 마지막 투수로 나와 결승점을 내주었고,

이후, 3학년이 될 때까지 그 때, 잃었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팀에 반드시

필요한 투수라는 이미지를 만드는데 실패하게 되었다. 이후, 3학년이던 2006년

10월 팔꿈치에 뼛조각이 생겨서 투수로서 생명을 이어가려면 수술 후,

1년 이상의 재활기간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은 동천이는 고민끝에

코칭스태프들과의 상의를 했고, 야수로의 전향을 결심하게 되었다.

 

두 달 정도, 이제 야수로서의 운동에 다시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할 무렵,

달콤한 휴가가 시작되었고, 동천이는 자신에게 언젠가부터 꿈이 되어버린

일본프로야구장으로 날아갔다.

 

아무런 대책없이 찾아간 동천이는 사랑하는 이의 힘을 빌려 한국에서 온

야구선수인데, 일본야구를 동경해서 이곳까지 왔고, 야구장을 들어가보고 싶다고

무작정 구단 사무실로 가서 얘기를 건냈고, 예상 외로 야쿠르트의 구단직원은

선뜻 아무런 대가없이 동천이에게 진구구장의 곳곳과 그라운드를 친절하게

안내해주었고, 타석과 덕아웃에도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안내를

모두 마친 그 직원은 동천이에게 작별인사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다시 만날 때에는 야쿠르트팀의 선수와 직원으로서 만나고 싶다고 말이다!

 

동천이는 한국으로 돌아온 날, 나에게 이 얘기를 해주며 이렇게 말했다.

꿈을 주어서 고맙다고...!

그 보답으로 반드시 그 꿈을 이루겠다고...!

난 형으로서 언제나 뒤에서 열렬히 응원할 것이다. 동천이를 믿기 때문에...

 

2007.01.07 

申 東 傑

댓글목록

no_profile 이현주(高081)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작성일
2003년 봉황기 준우승의 주역들 중 신동천,이영욱,이희근 등은 대학으로 진학하고.  .김재호,남찬섭,김태우 등은 프로로 진출했는데. . 후배들 모두 잘 되길 바랍니다
no_profile 장훈(高085)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작성일
김재호 선수는 현재 군 복무중으로 알고 있으며 남찬섭선수와 김태우 선수는 무엇을 하는지 정확하게는 알수 없지만 분명 잘 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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