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놀토가 아닌 토요일에 놀러 온 친구 부인이 하는 말씀이
‘참 살림도 깔끔하게 하신다.’하여
‘별 말씀을!’하고 겸손을 떨었더니
‘에이 마나님 오시니까 내무사열 준비하셔놓고는!'한다.
금방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자신도 그렇게 산다.’는 뜻이다.
당연한 이야기 일 수 있지만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없는 댓말이다.
같은 마음으로 살기에 통할 수 있는 수작이다.
그렇다. 반 살림을 하던 서울 살이 할 때도
장모님이 오신다는 날은
특별히 신경 써서 청소를 했으니...!
사실은 모든 사람들은 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 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해야 말을 빌리면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해 드리자!’다.
최소한 ‘기쁘게는 해 주지 못할망정 나쁘게는 하지 말아야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돌아 와선
‘집안 꼴이 이게 뭐야’하고 하거나
잔소리를 늘어놓으면 입맛이나 일할 맛이 똑 떨어진다.
자꾸 쌓이다 보면 정나미까지 떨어져 살맛도 없어지게 되어있다.
그런데 ‘자신이 그렇게 살면 상대도 그렇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런 짜증이나 잔소리가 늘어놓아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갉고 먹고
스스로도 나락으로 떨어지고
세상에 불행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짓을 할까?
근디 뭣 땜시?
못된 習이다.
‘자신이 그렇게 살면 상대도 그렇다.’를 잊어서다.
다른 말로 하면 상대-일 또는 인격-를 존중하지 않아서다.
‘좋게 생각하기’를 할 줄 몰라서다.
낡고 더러운 習은 이제 그만 버리고
상대의 모든 것을 존중하고
‘좋게 생각하기’를 일상화해야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세상에도 이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리 세상이 힘들게 하더라도
같이 사는 사람들을 더욱 존중하다보면
좀 모자란 것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좀 모자란 것을 수용한다고 몇 원 어치나 손해 보겠는가?
결국은 훨 이익인 것을!
아, 이 귀찮은 놈의 파리!
안 되겠다. 오늘은 파리가 없는 집을 만들어
달님이를 기쁘게 해주지 못할망정 기분 나쁘게는 하지 말아야지!
그만 일어나서 파리를 잡자, 얼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