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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硏 황문환 교수 논문
“그동안 망극했던 일을 어찌 만리 밖에서 눈앞의 간단한 편지로 말하겠습니까. ‘마누라’께서는 하늘이 도우셔서 위기를 피해 돌아갔으니 나야 어찌 귀국하기를 바라겠습니까.”
1882년(고종 19년) 흥선대원군이 부인에게 보낸 편지이다. 당시 임오군란의 책임을 지고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던 흥선대원군이 부인을 그리워하는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이 편지에서 보듯 조선 후기 ‘마누라’는 요즘과 달리 부인에 대한 최고 높임말이었다. 황문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는 2일 ‘조선 시대 언간 자료의 부부 간 호칭과 화제’라는 논문에서 조선 후기의 부인을 지칭하는 말로 ‘자내’ ‘게’ ‘마누라’가 있었으며 이 중 마누라가 극존칭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마누라를 “중년이 넘은 아내를 허물없이 이르는 말”로 풀이한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과 다르다. 황 교수는 조선 후기 부부 간에 주고받은 한글 편지와 실록을 분석해 ‘대비(大妃)마노라’ ‘선왕(先王)마노라’처럼 왕실의 여성 어른에게 쓰는 존칭인 ‘마노라’가 조선 후기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마누라로 바뀌어 갔다고 말했다.
또한 16세기에는 부부 사이에 ‘자내(‘자네’의 옛 표현)’라는 호칭이 많이 쓰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황 교수는 당시 부부 간에 쓰인 한글 편지 수백 편을 분석한 결과 남편과 아내 사이에 자내라는 호칭이 일반적이었으며 부부가 대등한 관계였다고 밝혔다.
1586년 부인이 남편에게 보낸 한 편지에는 “자내한테 가고자 하니 날 데려가소” 등 자내라는 호칭이 여러 차례 등장하며 문장도 ‘∼하소’로 끝을 맺을 정도였다. 18세기에는 요즘 말로 ‘그대’를 뜻하는 ‘게’ ‘게셔’라는 호칭이 많이 쓰인 것으로 드러났다.
황 교수는 “조선 중기에 대등했던 부부 간 호칭이 후기로 갈수록 남존여비의 차이가 난다”며 “이는 임진왜란 이후 예절과 신분 질서를 강조한 예학 때문에 국어의 높임말이 급격히 발달한 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