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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게 나이란 의미 없는 숫자일지도 모릅니다.
시인은 젊어도 늙었고, 늙었어도 젊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요절하여 세월이 흐를수록 더 생생하게 살아나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만수무강을 누려 영원할 듯하다가 어느새 사라져버린 시인도 있습니다.
한 편의 시로도 이름이 남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천 편의 시로도 흔적 없는 시인이 있습니다.
정치는 가도, 정서는 남습니다.
세기 말에 숨졌으나 21세기 한국시문학을 호흡하는 시인.
기형도를 누가 알까요.
시에 관심이 없는 이에게 그 이름은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낯선 가운데 신화로 다가오는 이름도 그가 거의 유일합니다.
어쩌면 한국시문학사의 한 시기에 그 이름만 남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중앙 70회 졸업생이면 이제 젊은 나이도 아닙니다.
기형도는 만 29세로 살아 있는 중앙 70회 졸업생입니다.
제게 연세대 캠퍼스가 부러웠던 단 한 가지 이유는
그곳에 윤동주 시비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곳은 언제까지나 그 시인의 나이 그대로 젊게 머물러 있을 것 같습니다.
중앙 교정에도 젊은 시인의 자리를 만들어 주십시오.
한 생애를 관통했으나 젊은 나이 그대로인 시인이 자리할 수 있는
중앙 교정은 천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기형도는 우리나라 시인 가운데 그 누구보다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기억될 이름입니다.
기형도(1960~1989)
1960.
2월 16일 경기도 옹진군 연평도에서 3남 4녀 중 막내로 출생
1967.
시흥국민학교 입학
1979.
신림중학교를 거쳐 중앙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정법대 정법계열 입학, 교내 문학동아리 '연세문학회'에 입회
1980.
대학문학상인 박영준 문학상(소설부문)에 당선 없는 가작
1981.
방위병 복무중 안양의 문학동인인 '수리'에 참여
동인지에 '사강리'등 발표, 시작에 몰두
1982.
대학문학상인 윤동주문학상(시부문)에 당선
1984. 10월
중앙일보사 입사
1985.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안개')되어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신문사 수습을 거쳐 정치부에 배속
1986.
정치부에서 문화부로 옮김.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 주목 받음
1988.
문화부에서 편집부로 옮김. 여행 등을 하며 많은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
1989.
가을에 시집출간을 위해 준비하다 3월 7일 새벽, 종로의 한 극장 안에서
숨진 채 발견
사인은 뇌졸중 만 29세, 독신.
경기도 안성 소재 천주교 수원교구 묘지에 묻힘
1989년 5월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발간
1990년 3월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살림출판사)
1994년 2월
추모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솔출판사)
1999년 3월
'기형도 전집'(문학과지성사)
댓글목록
기형도의 시비를 모교 교정에 세우자는 의견에 적극 공감합니다.
이미 문학계에선 큰별이 되신 기형도 선배님.
모교에 시비가 세워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암울한 역사의 시대가 토해낸 걸출한 시인 기형도(1960-1987)-
그의 시비를 모교 교정에 세움으로서 중앙의 후배들에게
뜬눈을 전해주고 긍지를 안겨 주는 것,
소홀할 일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열광하는 기형도를 우리 중앙인이 모른다면
너무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네요!
보성이 좋아하고 배재, 휘문, 양정, 중동이 기뻐할 일입니다.
이상화 시인을 제외하고는 그 대상이 아직 논의중에 있습니다.
뜻있는 교우님들께서 구체적인 기획안을 교우회로 보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후배들을 위하여 더 큰 영광이 되겠습니다.
이상화 시인, 서정주 시인, 기형도 시인,,
교우회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