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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1 통권 565 호 (p132 ~ 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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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
명성황후 시해 주범 밝혀낸 원로 사가(史家) 최문형 |
“좌편향 사학자는 민중주의에, 뉴라이트는 통계만능주의에 빠져 있다” |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
● 민왕후는 영리한 정치가, 그러나 구중궁궐에 머문 ‘아마추어’ ● 술에 취한 일본 낭인배, 민왕후 시신 능욕 시늉까지… ● 민왕후 사진은 없지만, 살해범이 들고 온 스케치는 남아 있을 것 ● 가해자 일본인의 머릿속에 ‘민비’ ‘한국’ 따윈 없다 ● 학자들이여, 자기 이론과 사상에 역사를 두드려 맞추지 말라! ● 동북아 균형자? 약자가 강자 이용한다는 건 거짓말 ● 전작권 단독행사 주장… 주제 파악 못하고 떠드는 ‘바보 외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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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는 일본 제국주의의 잔악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야만적 국가범죄였다. 식민지 쟁탈전에 뒤늦게 뛰어든 일본은 칼잡이들을 궁중에 난입시켜 조선 식민화의 장애물인 명성황후를 끔찍하게 난자했다. 한 사학자의 집요한 추적으로 명성황후 시해는 일본 내각이 결정하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내각에서 초대 외무대신을 지낸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가 주범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한국에서 명성황후는 드라마와 뮤지컬로 부활해 민족사의 아픔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해국인 일본은 명성황후의 존재를 잊은 지 오래다. 관심 있는 소수의 사람 또한 이 사건이 당시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가 떠돌이 낭인(浪人)들을 동원해 저지른 개인적 범죄라고 생각하는 게 고작이다.
최문형(崔文衡·71) 한양대 명예교수는 일본 제국주의가 명성황후 살해에 관여했음을 밝히는 자료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지식산업사에서 최근 개정판이 나온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을 밝힌다’는 일본 정계 실세들의 움직임을 날짜별로 추적해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세와 황후 시해 사건을 재구성했다.
일찍이 일본의 야욕을 간파한 명성황후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막으려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명성황후 시해는 러일전쟁의 전주곡이었다. 일본판 ‘민비는 누구에게 죽임을 당했나’(閔妃は誰に殺さわたのか·彩流社 간행)에는 ‘보이지 않는 일러전쟁의 서곡’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국제관계 속에서 개항기 한국사를 탐구하는 최 교수는 일부 근현대사 교과서가 “민중민족주의의 우물 안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세계열강의 각축에 휘말려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조선의 운명이 결정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역사에서 역(逆)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이나 느슨해지는 한미동맹 관계에 대해서도 역사적 사례를 들어 고언(苦言)을 아끼지 않았다.
필자가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을 밝힌다’를 벼락치기로 읽었는데 소설처럼 흥미진진했다”고 말하자 그는 “지식산업사 김경희 사장이 제발 주(註) 달지 말고 소설처럼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소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했다. 첨언하자면 ‘명성황후 시해의…’는 소설처럼 흘러가면서도 학술적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았다.
죽음 재촉한 인아거일(引俄拒日)
▼ 책을 읽고 나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조선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더군요.
“황 선생 같은 독자니까 재미있겠죠. 요즘 한문도 모르는 젊은 친구들에겐 어떨지 모르겠어요.”
명성황후는 시해된 지 2년 후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추존(追尊)된 호칭이다. 일본인들은 ‘민비(閔妃)’라고 낮춰 부른다. 그녀가 살아 있을 때는 고종이 왕이었으므로 민왕후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 민왕후 시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명성황후 추모사업회 이영숙 회장이 시해 사건에 관한 연구를 부탁했어요. 나는 서양사 전공자라서 못하겠다고 했지요. 1988년 KBS TV에 나가 국제관계를 강의한 적이 있어요. 60분짜리 특집을 네다섯 번 했을 거예요. 이 회장이 그걸 보고 강권하다시피 했어요. 그 무렵 학장을 그만두고 시간적 여유가 있었어요. 제자들한테 한 파트씩 맡겼어요. 그리고 민왕후 시해에 관심을 갖고 있던 동료 교수들과 함께 논문을 모아 1992년 민음사에서 ‘명성황후 시해의…’를 펴냈습니다. 이 책이 ‘동아일보’ 1992년 8월13일자 1면과 5면 전면에 소개됐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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