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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는 이렇게 사는 것"... 채희묵 언론인이 본 김형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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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는 이렇게 사는 것"... 채희묵 언론인이 본 김형석 교수
아첨하지 말고 아첨하는 사람과 멀리해야
자신의 직분에서 사랑을 가지고 대해야
권석림 기자
입력 : 2018-01-28 21:02
수정 : 2018-01-28 21:23
노교수의 강연에 귀 기울이는 노송 동문들
"99세 답지 않게 꼿꼿하게 들어오시는 노교수, 한시간 넘게 강의하시는 체력, 100세 시대는 이렇게 사는 거라고 보여주시는 분이다."
채희묵 언론인이 지난 23일 올해 첫 노송포럼에서 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1920) 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철학 수필을 우리나라 처음으로 뿌리 내리게하신 분, 철학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게 하신 분이 김형석 교수님"이라고 전했다.
재경 전주고·북중 총동창회에서 주최한 이번 노송포럼은 김형석 박사의 '행복으로 가는길' 초청강연으로 진행됐다. 노교수의 강연에 노송 동문들은 귀를 기울였다.
김형석 교수는 인격에 대해 “밖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닌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그렇게 만든만큼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99년을 살면서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며 인생에 있어서 ‘65세부터 75세가 황금기’라고 밝혔다. 노철학자는 그래서 제2의 인생의 시작인 60대에는 첫째 공부를 시작해야하고, 둘째 취미를 가져야하고, 셋째 놀지 말라고 했다. 공부 중에서는 독서를 추천했다. 독서만이 자신을 키우고 100세 시대 후반 30여년을 보람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식민지 시대에서도 우리나라는 일본 유학에서 책읽는 법을 배웠고 해방 후 미국과 유럽에 유학가서 또 한번 책을 읽는 법을 배워 지금 이렇게 발전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노교수는 ‘인관관계’가 행복을 위한 두 번째 조건이라고 했다. 아첨하지 말고 아첨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지 말고, 편가르기를 해서는 안된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승만(1875-1965)대통령은 아첨꾼들로 둘러싸여 망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편가르기로 이 지경이 됐다고 했다.
제자 3명의 자신에 대한 사랑에 노교수는 자신이 해준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제자들로부터 받았다며 다시 교단에 서면 정말 제자를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다.
채희묵 언론인은 "노교수는 인격 수양을 위해 책을 읽고 정치인, 교사, 의사 등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직분에서 사랑을 가지고 대할 때야 비로소 참다운 정치인이고, 스승이고 의사라고 끝을 맺었다"며 그의 건승을 빌었다.
◆ [김형석 교수 강연 전문]
인격이 행복
우리 인류역사에서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BC 384~?)가 처음으로 윤리학책을 냈습니다. 그 분은 다른 모든 것은 원하는 사람도 있고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행복은 누구나 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가서 인격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결론을 냈습니다.
그분은 2300년 전 철학자인데, 아마 세계적으로 제일 존경받는 지성적인 시인은 파우스트를 쓴 독일의 볼프강 괴테(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일 것입니다. 괴테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관련이 없이 인생을 살아보고 낸 결론이 역시 인격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은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따라간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것도 아니며 내 인격이 행복을 만들므로써 내가 행복해진다는 뜻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내가 내 삶속에서 만든 것이 남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격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결론을 냅니다.
오늘의 행복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인생을 짧게 보지 말고 멀리서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또 행복은 인간관계에서 이뤄집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보충하기 위해서 주변얘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40~41살 때 미국에 가서 머물렀습니다. 근데 그 때 미국 사람들이 인생은 60부터다라고 말하더라구요. 우리는 60이면 회갑이라고 하는데 인생이 60부터라고 해서 남의 일같이 생각했습니다. 또 20년쯤 지났더니 제가 60대가 되었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제2의 인생은 가능한가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 때 결론은 50대가 끝나고 60대가 될 때면 아들 딸 다 독립해나가고 해서 가정에서 해방되고, 직장과 사회에서 해방됩니다. 그래서 60쯤 되면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그 때 재출발하는 사람은 70, 80, 90까지도 행복하게 살고, 60이 되어서 완전 늙어지니까 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뒤 인생 30년은 잃어버리는 것 즉 내 인생을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2의 인생 위해 해야할 첫째는 독서
그래서 60대쯤에 해야되는 제2인생을 위한 일 세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첫째로 무조건 공부하라입니다. 과거부터 하던 사람은 계속하면 되고 과거에 하지 않았던 사람은 바로 시작하라. 공부할 경우 내 지식이 올라가게 되고 그 만큼 또 내 인생이 성장하게 되고 보람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공부 가운데 반드시 해야할 일이 독서입니다.
두 번째 취미생활
그 다음 제2인생을 위해 해야할 게 60까지 취미활동을 못했던 사람들은 취미활동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 몰랐던 행복을 다시 찾을 수 있고 인생을 보람있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취미생활을 하게된 사람들 통계를 낸 것을 보니까 60이후 시작한 사람들의 성공률이 젊어서 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훨씬 높은 것 같았습니다.
얼마전 시내에 나갔다가 동영상을 하나 보았는데 미국의 한 할머니가 90세가 되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살까지 11년 동안 그린 것이었습니다. 그 중 101살 마지막 그린 것도 참 좋았습니다. 그걸 보면서 100살 넘을 때까지 그림을 그린 할머니가 얼마나 행복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특별히 예술분야같은 것의 취미활동을 꼭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세 번째 절대로 놀지 마라
세 번째가 재미있는데 60이 되고나서 절대로 놀지 마라는 것입니다. 논 사람은 마지막 30년을 잃어버립니다. 수입이 있고없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보수는 생각할 게 없고 내 인생이 귀하니까 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도 발견하는데 제가 연세대교수였기 때문에 병원에 가면 세브란스에 가는데 주부 호스피스운동도 있지만 한 분이 하루에 몇 시간씩 봉사한다고 하였습니다. 봉사하는 사람하고 집에서 노는 사람하고 누가 더 행복하냐면 일하는 사람이 더 행복합니다. 선진국은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도 봉사활동을 하는 것 같아요.
일본에 대해 평가가 다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일본이 제일 장수하는 것 같습니다. 홍콩과 싱가포르를 제외하고는 일본입니다. 제일 오래 사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일본을 여행하다보면 다른게 하나 있습니다. 일본의 노인들은 놀지 않습니다. 뭔가 일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 민족의 행복지수입니다. 그래서 뭐든지 반드시 일을 해야합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 해전 미국에 갔을 때 여러분 비슷한 나이의 한국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토요일 점심을 같이 먹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는데 서울에서 고등학교 교장을 지낸 분이 있었어요. 제 옆에 오더니 죄송합니다 저도 함께 앉아 얘기했으면 좋겠는데 일하러 가야겠다며 자리를 뜨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연금 타는데 무슨 일을 하느냐?했는데 미국에서 보니 노는 사람이 바보입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인과 함께 병원에 주 나흘동안 파트타임으로 2시간씩 청소한다는 겁니다. 청소하는 시간이 되었다는 거지요. 지금 버는 돈은 어디다 쓸 거냐고 물으니 1년 반동안 쌓이면 구라파 여행하고 성지순례한답니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에서 살아보니까 내 인생 내가 사는 것이다. 일본사람도 마찬가지다. 세가지 다 안하는 사람은 인생을 60으로 끝내는 것이고 이 3가지를 다 하는 사람은 제 2의 인생을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60에서 75세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
그리고 20년 지나니 80대가 되었습니다. 국회의사당에 갔다가 친구인 안병욱선생, 김태길선생을 만났어요. 커피숍에서 차를 마셨습니다. 정말 셋이 오랜만에 만났지요. 셋이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가 80이 넘도록 살아보니까, 계란이 노른자가 있어 병아리를 까면 계란 구실을 하는데 우리인생에도 계란의 노른자만큼 알차고 행복했던 나이가 있었을 것 같은데 몇 살쯤이었을까?그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50부터 아니었을까? 50~60대 아닌가? 일은 많이 하지만 인간적으로 성숙하지는 못했다는 얘기였습니다. 사회인으로 자격을 덜 갖춰 50은 너무 이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공자님 말씀처럼 60쯤 되니까 내가 나를 믿을만큼, 지도자로서 자신도 생기고 가정을 떠나 사회인으로 자기 발견도 이뤄지고 역시 60부터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는 얘기였습니다. 지도자 자격도 생기고 75세까지는 누구나 성장하게 되더라. 그래서 내가 나를 믿을 수 있고 성장이 계속되는 나이인 75세까지가 제일 행복하고 보람있었다는 결론입니다.
그런데 ‘직업윤리와 한국인의 가치관(1997)’은 김태길 선생이 마지막 쓴 좋은 책인데 76세에 나왔거든요. 나도 대부분 70대에 썼어요. 그래서 60~75세까지가 알차고 좋은 나이였다는 거에요.
75세부턴 행복을 연장하는 문제
그 다음 75세가 되면 얼마나 연장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연장하지 못하면 도로 내려와버리고 마니까요. 우리 주변 사람들을 보면, 예를 들어 김수환(1922-2009)추기경은 87세에 돌아가셨는데 1년 전 까지는 충분히 일을 했습니다. 김태길 (1920~2009) 교수는 89세에 돌아가셨는데 그 분은 반년전까지 일했습니다. 안병욱(1920~2013)교수가 마지막 TV에나온 것을 보니까 91세였어요. 집에서 녹화한 것인데....다 종합해보니 80대 후반 90가까이까지는 연장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2인생은 60~75세까지 성장하고 유지하는데, 90까지는 마음놓고 살아도 되는 것 같습니다. 60에 제2마라톤을 시작해서 90까지는 달려보자는 것입니다. 그게 제2인생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생각이지 다른 사람들도 공감해주느냐 아직은 문제입니다. 사실은 따져보지 않아서 그렇지 다 공감대는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75세쯤 되었을 때 우리 나이또래 교수들이 앉아 얘기하다가 영문과 어느 교수가 아직 강의하고 있는데 회갑이 되었데하니까 같은 영문과 이근철 교수가 그 얘기를 듣더니 그 친구가 철도 안들었는데 회갑부터 되었네라고 했습니다.,,, 물론 자기 얘기였지요.
한번은 92~3세인 철학과 정석희교수님이 얘기하다 나를 보더니 김교수가 연세가 어떻게 됐더라 그래요... 76세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 좋은 나이올씨다 그래요. 그런걸 보면 65-75세가 제일 좋은 나이같아요. 돌이켜보면 75~6세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으니까요. 그 다음 연장하면 언제까지 가느냐가 문제인데 90까지는 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90이상은 아직 얘기를 못하겠습니다.
60부터는 내가 나를 키워야 한다
60부터는 내가 나를 키워야합니다. 젊어서는 학교에 다녀야 하고 직장을 다녀야하는데 60부터는 자신이 키워야하는 책임이 부과됩니다. 그 책임을 쉽게 말하면 콩나물에 물주듯 항상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인간관계도 성숙할 줄 알아야하고 사회에 대한 관심도 가져야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 인생관과 가치관을 확립해가지고 살 때 내가 나를 키우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키우는데 가장 소중한 것은 보편적인 것이 역시 공부하는 것. 공부 안하면 끝나고 맙니다. 공부 중 가장 일반적인게 뭐냐하면 역시 책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독서 능력을 키우기 바랍니다.
지구상에서 문화적 혜택을 주는 5개 나라
지구상에 많은 나라들이 문화적인 혜택을 받고 사는데 혜택을 주는 나라는 5개 나라밖에 없습니다. 그 나라가 없으면 우리가 지금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데 다섯나라가 영국, 프랑스, 독일, 그 다음 러시아가 아니고 미국 그리고 일본입니다.
불행하게도 러시아가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서 100년을 잃어버렸습니다. 서구에 비교하면 정말 후진국가입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후진국입니다. 올림픽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지난번 올림픽에서 국가에서 선수들에게 약을 먹이지 않았습니까? 미국망명선수가 폭로해서 알게됐지요. 그래서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출전 금지를 시키지 않았습니까? 올림픽에는 러시아 국기를 가지고 나오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가야하는데 역시 약물먹으면 못나갑니다. 러시아에 귀화한 안현수 쇼트랙선수도 출전 못합니다. 그런 걸 보면 대한민국이 러시아보다 뒤떨어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국가가 개입해 약물을 먹이고 나가는 것은 불행합니다. 그래서 미국이 올라간겁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이 5개국 때문에 지구상의 인류가 문화 혜택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여행을 해봐도 그렇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 북에서부터 캐나다, 미국, 멕시코가 있는데 멕시코에서 브라질까지 가는데 독서하는 나라는 한나라도 없습니다. 아시아에도 없습니다. 아프리카는 더욱 말할 게 없구요.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이 사실 영국보다 먼저 올라갔었는데 독서를 안해 미끄러졌습니다. 역시 여행을 해보면 압니다.
그 다섯 나라는 국민 80% 이상이 100년 이상 독서한 나라입니다. 그것 때문에 문화의 선도국이 된 것입니다. 독서를 한다는 것은 문화라는 밭에 씨를 뿌리게 준비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화의 열매를 맺어주는데 그 밖의 나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국은 1900년대 초에 일본 통해 독서 배워
한국은 독서를 뭔지 모르고 살다가 그래도 춘원 이광수(1892~1950) 선생, 육당 최남선(1890~1957)선생 때 쯤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왜냐면 일본에 유학하면서 일본 사람들이 전부 독서하는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일본에서 대학생은 전부 독서를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나도 일본에서 대학 다녔는데 교수가 지정한 책 4~5권을 읽어야 한다. 그러니까 강의 듣는 것은 1/5~1/7밖에 안됩니다. 그래서 독서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다음부터 독서인구가 많이 올라갔습니다. 해방되니 미국, 구라파에서 유학하다 독서를 배우게 됐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아시아에서 일본만은 못하고 중국보다 앞서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독서 50년만 계속되면 일본 다음으로 계속 두 번째를 유지할 것입니다.
모택동 사상밖에 없는 중국도 실패
중국은 실패했습니다. 여러해 됐습니다. 독일 대학생이 장학금을 얻어 북경대에 유학을 와 중국 인문학을 공부하는데 모택동사상밖에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실망해서 돌아가려다 누가 타이완으로 가라고 해 타이완 가는 중 서울에 들러 나를 만났습니다. 타이완에 가면 공부할 수 있냐고 물어 중국고대사상을 연구하기 위해서 대만에 가라고 조언했습니다. 그 학생보고 일본말 언어장벽이 있기는 한데 타이완보다 앞서 있는 게 일본이라고 했습니다. 중국고대사상을 가장 많이 연구하는 게 일본이기 때문이지요.
공부 안하는 그리스
구라파도 그렇습니다. 서양 고대철학 공부하기 위해 그리스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독일 아니면 영국에 갑니다. 그리스 철학을 그리스사람이 만들었는데 그들의 문화가 없어졌습니다. 그리스 역사나 문화를 가르치는 곳이 영국이나 독일이지 그리스가 아닙니다. 그래서 문화를 만들기 위해 독서를 많이 하길 바랍니다. 여러분 나이는 정신적 성장이 빠른 시기입니다.
저는 교회에 다닙니다. 중3쯤 되니까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목사님 설교가 다똑같고 10년이 지나도 변화가 없습니다. 설교들을 게 없어 신학책을 읽어보고 기독교 사상도 읽어보니까 신앙이 독서와 더불어 올라간 것입니다. 지금은 목사님한테도 가고, 교단 대표, 천주교에서도 강의를 하기도 합니다. 독서가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문제. 행복은 인간관계에서 옵니다. 인간관계가 깨지면 행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도 후진국가다 하는 것은 가정도 깨졌지요, 정치도 깨졌지요, 인간관계를 너무 소홀히 여기는 것 같아요. 모르고 사는 것 같아요.
인촌 김성수 선생 밑에서 인간관계 배워
제가 본격적으로 직장을 시작한 게 서울에 있는 중앙고등학교였습니다.
27살 때 교사로 갔는데 교수되시는 분이 인촌 김성수(1891-1955)선생이었습니다. 그 분 밑에서 7년 동안 살았는데 철없이 사는 내가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인간관계를 실패하면 행복도 안되고 사회생활도 안되고 아무것도 안됩니다. 제가 일찍 교감돼 그 분 모시고 살았는데 그 기간 많이 배웠습니다. 그 기간이 없었으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우리나라에 그런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좋은 스승을 받들 수 있었을 겁니다.
아첨하지말자
직장생활, 사회생활하는데 절대 아첨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됩니다. 사회악입니다. 크든 작든 지도자가 됐을 때 아첨하는 사람을 절대 가까이 두지마세요. 아첨하는 사람은 인간관계를 다 깨뜨리는 자입니다.
그리고 내가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 동료를 비방하거나 흉보거나 욕하지 마세요. 선의의 경쟁을 하지 절대로 이기적인 목적 때문에 다른 사람을 헐뜯지마세요.
편가르기 하지 말자
그리고 그분을 모시고 살면서 배운 것이 직장과 사회생활에서 편가르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집단이기주의입니다. 집단이기주의가 있는 사회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분은 동아일보를 만들어 당신이 사장하지 않고 유능한 송진우(1887~1945)선생에 맡겼고, 중앙학교 인수해 교장 안하고 최두선(1894~1974) 선생에 맡겼으며 고려대는 정성을 다해 만든 정통한 유일한 사립대였는데 현상윤(1893~1950)선생에 맡겼습니다. 경성방직도 거기서 나왔습니다.
그 분이 많은 일에 성공한 이유는 한 가지 일을 하면 유능한 사람에 맡기고 뒤에서 도와주니까 가능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분만큼 많은 인재를 데리고 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보다 오래 모신 분중 고려대 역사학자 김성식(1908~86) 교수가 나보고 “한 분의 덕스러운 뜻이 역사에 그렇게 영향을 주는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인촌 선생 때 야당 분열한적 없어
인촌선생이 살아계실 때에는 야당이 분열한 적이 없었고 언제나 하나였는데 그분이 돌아가시고는 야당이 합쳐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연세대학교로 가면서 그렇게 몇 가지만을 지키며 살자고 결심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무능해서 보직을 못맡았는데 때때로 보직 얘기하면 다른 유능한 사람을 천거했습니다. 그래도 행복했어요. 학교측이나 교수들이 자신을 위해서 판단하지 않는다는 평이었습니다. 언제나 학교위해서 판단했기 때문에 동료교수들이 좋아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총장이 차기총장 물어오는 경우도 여러번이었습니다.
이승만 박사의 실패는 아첨꾼들 때문
이승만(1875-1965)박사 실패 이유는 아첨꾼이 옆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4.19 때 이대통령은 한사람도 충고해준 사람 없다고 푸념했습니다. 그래서 허정(1896-1989) 선생을 모셔오길레 이박사가 한 번도 얘기를 해주지 않았느냐고 나무랐답니다.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허정은 여러번 왔는데 비서들이 거절하니까 못 뵈었다고 말했답니다. 아첨꾼을 가까이 두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지도자는 그의 비서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편가르기 너무 많이 해
편가르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박근혜대통령은 너무나 편가르기를 많이했습니다. 함께 일 할 사람 내쫓고 반대한 사람 내쫓았습니다. 지금 정치는 여야가 전부 편가르기만 하고 있습니다. 편가르기는 집단 이기주의입니다. 정권이 바뀌면 과거보다 높이 올라갈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정치인들이 정권이 아니고 국가를 위해 일해야하는데 자기 당과 자신만을 위한 편가르기만 합니다. 편가르기 하는 사람은 1:1로만 싸우지 올라갈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관계는 다 깨졌습니다. 외국사람이 와보면 선진국 가기는 아직 멀었다고 합니다. 인간관계가 정말 소중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릅니다.
정치에 관심 가져야
60넘어 첫째 독서, 둘째 인간 관계, 그 다음 세번째는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후배들이 잘하겠지하면 안됩니다. 일은 젊은 사람들에게 맡겨도 지도력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선배라고 하지요, 어른들이라고 하지요, 그에 걸맞게 관심을 가져야 해요. 지도력을 못가진 사람은 인생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민족과 나라 걱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친의 말씀
제가 옛날 평양 시골 초등학교 6학년 때, 학생 13명으로 학생수가 적어 5,6학년은 함께 배웠습니다. 그런데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뤘는데 떨어졌겠지 했는데 발표날 20리 걸아가보니 합격됐기에 아버지에게 말씀드렸어요. 부친께서 수고했다고 그래요. 그 다음날 아버지가 중학생이 됐으니까 말하는 것인데 이제 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나와 내 가정만 일생동안 생각하면 가정만큼만 성장하지 못한다. 항상 내 직장에서 직장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이웃을 위해 노력하게 되면 직장의 주인이 되고 지역사회 지도자로 커질 수 있단다. 그런데 똑같은 사람이 항상 민족과 국가를 걱정하며 살게 되면 그 자신이 그만큼 더 커진단다. 명심해라. 부친은 옛날 분이라 학교교육은 못받은 것 같은데 기독교 정신이었던 것 같아요.
인생을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아버지 얘기를 다 잊어버렸는데 연세대 와서 느낀 건데 우리 아버지 말씀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관심을 갖느냐가 중요해요. 60여년전 연세대 교수 시절 거의 많은 교수가 연세대로부터 무엇을 얻고 살았나, 얻을 것인가를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김형석 박사는 1954년 연세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31년간 재직했다.)
많이 얻을 수만 있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등록금 없어 고생하는 학생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감투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65세 정년퇴직하고 나면 대학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대학에서 기억을 못합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버림을 받습니다. 고생한 교수, 양보한 교수는 65세 쯤 되면 총장도 되고, 처장도 되고, 대학 자랑스럽게 하는 학자도 됩니다. 연세대학교와 함께 영광스러워져요.
안병욱, 김태길 교수 항상 민족과 국가 생각해
그런데 대학생활 하다보면 많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항상 민족, 국가, 사회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럿이 있어요. 내 친구 안병욱, 김태길 선생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60까지는 항상 학문 얘기하다 60넘어서는 정치 걱정을 하고 가치관을 얘기했습니다. 21세기를 살기 위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하나? 이런 사람들은 퇴직후에도 전부 사회에서 일을 합니다. 세상 떠날 때까지 일해요. 그 관심이 일을 불러온 것입니다.
그 때는 연금 없었으니 어떻게 사나 걱정했는데 정년퇴직 후 일이 더 많아 대학때보다 수입이 괜찮아요. 일이 있으니까 대가가 있게 되고 대학때보다 수입이 괜찮아요. 안교수 부인은 일찍 그만두고 교회일이나 보고 그럴걸 그랬네 그래요. 그리고 사회적으로 존경도 받는다는 등 그런 방향을 얘기했습니다. 셋이 동갑내기에다 같은 분야에서 일했으니까요. (철학계 3총사).
세 철학자의 우정
그런데 너무 바쁘게 일만하니까 셋이 함께 만나 재미있게 얘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한번은 안선생이 80넘게 열심히 일했는데 셋이 만나 즐거운 시간 못가져 늦기전에 시간 갖자는 제의가 왔습니다. 차마시고 점심 먹고 우리끼리 즐거운 시간 갖자는 거지요. 저도 같은 생각이라서 김태길 교수에게 전화를 해 1년에 몇 번 만나자고 했지요. 전화받고 한참 동안 대답을 안하더니 한가지만 생각하고 또 다른 생각은 못하는 것 같다는 거에요. 세상 사람들이 항상 같이 살 것으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셋이 열심히 일하다 한사람이 가면 그렇구나 하면 좋은데 정을 쌓다가 옛날 우정으로 돌아가 한사람 가면 가는 사람이야 모르지만 보내는 사람 생각은 해봤냐는 겁니다. 마지막 누가 남을지 모르지만 남은 사람 어떻게 해, 난 못해. 들어보니 그렇더라구요. 그래서 그만두었지요.
유언 말한 안병욱 교수
한번은 안교수가 또 전화가 왔었답니다. 얘기 할 시간 있냐는 거였답니다. 안교수는 “김태길선생이 갔는데 한사람 가도 두 사람이 남았는데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많이 해보는데 암만 해도 김선생 혼자 남을 것 같아” 왜 건강이 안좋아요. “김선생하고 다정하게 얘기 못했는데 못하고 가면 허전할 것 같아 전화했어.”
솔직히 말하면 친구도 다들 가고 우리도 가게 될텐데 힘들어 하지마세요. 김선생이 나보다 정신력이 강하니까 마무리 잘 해주세요. 그런 부탁 할려고 전화했어 하며 끊었습니다. 유언 두 번 들었는데 어머니 유언과 안병욱교수 유언이었지요. 그렇게 듣고 나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지금 혼자 남았는데, 어디 가든지 안병욱 교수, 김태길 교수 고마웠다고 제자들로부터 인사 받습니다. 두 분 감사하다는 말을 내가 받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위해 한 것은 남는게 없어
내가 나를 위해 한 것은 남는 게 없습니다. 목적 자체가 나를 위해 살면 남는게 없습니다. 더불어 살면 행복해요. 여러분이 직장이나 사회생활할 때 이 정도로 더불어 살면 행복해요. 그런데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남아요. 업적이 아니고 그 마음이 중요해요. 세상 사람들이 다 각박한 것 같아도 그 마음은 다 알아요.
죽으면 북에서 가까운 양구 안교수 옆에 묻힐 예정
미안한 말씀입니다만 제가 93세 시절 강원도 양구에 계신 분들이, 양구 외진골 아녜요?, 김태길 선생, 나, 세사람이 60,70년데 사회에서 일 많이 하신분들인데 김태길 선생은 고향이 충청도니까 괜찮고, 안병욱, 김형석 교수가 고향이 없는데 우리가 모시면 어떨까한다는 거에요. 안병욱 선생 아드님을 통해 아버지 한테 물어보라고 했어요. 이북 고향이 제일 가까운 곳이라며 같이 오시라고 하더라구요. 고향에 제일 가까운 곳인데 기념관도 만들어드리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간다고 그랬어요. 지금 안교수 옆에 제가 갈 자리가 있어요. 나는 생각해보면 나라를 위해 아무것도 한일이 없는데, 나라 걱정하는 마음뿐이었는데 그런 분들이 있더라구요. 나라 걱정하는 마음은 항상 있지요. 60쯤 되면 사회 등 걱정이 있어야 돼요. 민주주의에서는 버림받지 않아요. 나라 바로 잡아야겠다는 애국심은 가져야 돼요. 이 생각을 하면 두 사람 생각이 납니다.
손기정 선수의 나라 사랑
한번은 종로 세무사 최사장을 찾아갔습니다. 손기정(1912~2002) 옹이 다녀가셨는데 들어오시면서 못만났느냐고 묻는 거에요. 어긋난 모양이라며 연세가 높은데 어찌오셨냐고 물었어요. 손옹은 바쁘지않냐며 자신을 좀 도와달라고 하더랍니다. 내가 상금을 탔는데 그냥 쓰는 것보다 세금으로 먼저 내고 쓰는게 좋겠다는 거랍니다. 그래서 원천과세로 뗐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니까 나도 아는데 이제 공짜 돈 생길일 없잖어. 마음으로 내고 싶다는 거라고하시더래요. 그러시면 도와드리겠다고 계산을 해 드렸더니 그것밖에 안되냐며 좀 더 많이 떼게 하라고 하시더랍니다. 대한민국에서 많은 덕과 혜택을 보고 살았는데 많이 내는 것으로 해 달라는 거랍니다. 나중에 쓱 보더니 됐어하며 다 정리하더니 홀가분하게 즐겁게 가시더라는 겁니다. 세무사 최사장은 선생님도 나라가 어려운 일제시대 사셨으니까 그 마음을 아시겠네요라고 말을 해요. 그런데 나는 그 일제시대 살았지만 공산치하에서 1년 살다 왔지요. 그 때 대한민국이 품에 안아주지 않았다면 지금 세계 어디에서 떠돌아다닐지 모르지요. 대한민국이 나를 품안에 안아줘 오늘 내가있지 그렇지 않으면 어디서 뭐할지 몰라요. 그래서 항상 도움은 못줘도 대한민국이 잘돼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조만식 선생의 나라 사랑
한번은 조만식(1883~1950)선생 기념 가게를 가서 사모님 만났는데 김일성이 북한에서 정권을 잡았는데 북한동포들이 믿지 않고 공산당이 싫어서 조만식선생 말은 다 듣습니다. 그래서 김일성이 조만식을 제거해야겠는데 죽일수는 없고 평양도심지 고려호텔에 연금시켜놓고 일체 밖에 나가지고 못하고 면회 안시켜줬답니다. 사모님만 한달 2번씩 1시간정도 면회를 허용해주었답니다.
조만식 선생이 한번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테니까 각오해라며 세상이 자꾸 변하는데 지금같은 세상 오래가는게 아니다. 마지막 각오하고 오라고 하더라는 겁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찾아갔는데 사실 마지막날이었답니다. 그날 오늘 긴 얘기 못하고 두 가지 부탁하는데 나는 여기서 끝나고 말겠지만 어린애들은 자유 없는 이 땅에 둘 수 없어 빨리 준비해 38선 넘어 서울로 가서 많은 사람 만나겠지만 고생돼도 다른 사람들에게 폐끼치지 말고 고생도 좀 해달라면서 흰봉투 꺼내 주길래 뭐냐고 하니 가보면 안다고 하더라는겁니다.
작별하고 왔더니 머리카락을 깎아 넣어준 거였답니다. 죽었다는 소식 들으면 이 머리카락을 관에 넣어라는 거였답니다. 그래서 머리카락 가지고 3.8선 넘어 와 세상 떠난뒤 머리카락을 관에 넣어 장레식을 치뤘답니다.
그래 그런 분들 때문에 나라가 됐는데 애국심이다 뭐다 보다 나라걱정을 먼저 하면됩니다. 모든 게 가정단위가 아니라 나라단위가 됐습니다. 나라 걱정을 먼저 하라. 그런데 지금도 정치인들은 정권걱정이지 나라걱정은 안해요. 그러면 정치는 모든 게 허사입니다.
어떤 수상 소감
몇 해전 대학에서 수상자로 제가 결정됐어요. 나에게는 받냐 안받냐 문제만남았어요. 고맙게 받겠다고 하고 상받으러 갔는데 교수들이 많이 오셔 솔직하게 상을 준다고해서 오긴 왔는데 상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지요. 암만 생각해도 나보다 훌륭한 업적남긴 사람 많고, 좋은 직책 맡은 분이 많아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아 받을자격 있나 곰곰 생각하니 작으마한게 하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오래 사느라 고생 많이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랑있는 곳에 행복입니다.
자녀 키우는 행복
나는 6자녀를 두었습니다. 몇 해전 미국에 한번 더 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갔습니다. 세 딸이 살고 있지요. 딸들이 한 열흘 여행 같이 하자고 해서 여행을 떠났답니다. 호텔에서 막내딸이 아버지 엄마 생각 많이 하는데 엄마는 조금만 더 지혜로웠으면 고생 안했을텐데하는 생각이라고 하더라구요. 무엇 때문에 가난하게 살면서 전쟁통에 6씩이나 애를 낳았냐는 거랍니다. 고생 안했으면 너희들은 못 낳은거 아니냐고 했더니 지금 애들 키워보니까 그런 생각이 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때가 가장 행복했는데 고생해도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했기 때문이지요.
다시 교단에 서면 정말 제자 사랑할터
교단에 가 다시 교수를 한다면 꼭 이것 하나는 해야겠는 생각입니다. 정말 내 제자들을 사랑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지식전달도 좋지만 제자를 사랑하면 행복하고 사랑해보지 못한 사람은 스승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환자를 사랑해보지 못한 의사는 진정한 의사가 아니고 늙어서도 자랑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교육계는 우리가 씨를 뿌리면 사회가 열매를 거둡니다. 그런데 오래 살다보니 내가 거두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사랑했던 것 그 이상 행복이 없어요. 눈물이 날정도록 행복해요. 두 가지만 얘기할게요
제자의 스승 사랑 3가지 에피소드
▲ 상받는 연세대 제자
한번은 연세대 제자가 사회 업적이 많아 상을 받게 되었어요. 축하하러 갔는데 내 제자가 바바리코트 받아 걸어주고 내 자리에 안내해줘요. 상 받고나서 수상소감 말하면서 자신이 연세대 4년 다닐 때 김형석 교수님 말씀이 제 일생을 그대로 이끌어 갔다는 거에요. 제일 영향을 주셨던 분이라고 소개하는 거에요. 선생님 말씀을 생각하면 행복해진다는 겁니다. 저렇게 제자가 나를 사랑했구나하는 생각이었어요.
다 끝나고 제자가 내 귀에 대고 선생님 제 얘기 들리세요. 바바리코트에 봉투 하나 넣어드렸는데 용돈으로 쓰세요. 드리고 싶은 생각은 많이 있었는데 쑥스러워 못했습니다. 고맙게 받았습니다. 집에서 보니까 두툼한 봉투더라구요, 인생이 별거 아니구나... 어려서는 세배 돈 받는 재미로, 요새는 용돈 받는 재미로 사는 거로구나. 90넘어 살면 용돈 받는 것 밖에 없어요. 그렇게 살다끝나는구나. 내가 제자를 사랑했던 것보다 제자가 나를 더 사랑했어요. 그 때는 전 몰랐어요. 그래서 교단에 다시 서면 꼭 제자들을 사랑해주고 싶어요.
▲ 귀가 안들리는 오세탁 교수의 30년 문안 전화
청주 충북대 법과대학장을 지낸 오세탁(‘30년생)교수는 30년전부터 정월 초하루와 스승의날 아침 9시만 되면 문안전화가 꼭 와요. 10년 아래인데 나보다 귀가 더 빨리 나빠져 들리지 않으니까 마지막 부인한데 부탁해요. 선생님 확인하고 서울 가면 한번 뵙게요. 내 말도 못들으니까 자기 말만 하고 끊어요. 한번 가봐야겠다해서 청주에 갔는데 89세인데 쳐다보는 모습이 어린애 같아요.
▲ 미국에서 TV 보고 필자 살아있다는 생각에 서울에서 상봉한 제자
미국에 사는 의사 Dr. 박은 내가 죽었다 생각했는데 TV에 나오는 걸 보고 살아계시는구나하고 고등학교 동기들한테 다 연락해 점심 대접하려고 날짜 잡으라고 하고 귀국했답니다. 63빌딩에서 점심하는데 83세 쯤 되니 머리도 희고 누가 선생이고 누가 제자인지 모르겠어요. Dr. 박 하는 말이 고3때 토요일 오후마다 선생님 말씀 죽 들었는데 그 말씀 가지고 평생 살 줄 몰랐습니다. 미국 와서 살면서 어려울 때 선생님말씀 생각하고 살아요. 목적은 없습니다. 큰 절 한번 하고 갈께요. 절 받으세요라고 하니까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시 교단에 돌아간다면 정말로 제자들 사랑하고 싶은데하는 생각었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정치인, 의사, 교사가 되어야
정치를 암만 많이 했어도 국민을 정말 사랑한 정치는 후회가 없어요. 나 위해서 정치한 사람은 남는게 없어요. 의사는 정말 환자를 사랑해야돼요. 스승은 제자를 사랑해야하구요. 고생있는 사랑 다음이 행복입니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