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font color=blue>이승철(66회)</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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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 |
입력: 2007년 05월 07일 17:50:22 | |
〈이승철 논설위원〉 | |
어버이날을 앞두고 지난 주말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갔다. 70대 중반의 어머니와 함께 나선 낙동강변은 갖가지 야생화들로 가득차 있었다. 어머니께 토끼풀처럼 생긴 조그만 꽃의 이름을 묻자 “풀씨”(자운영의 경상도 방언)라면서 일제강점기 얘기를 어제 일처럼 떠올리셨다. “일본놈들이 풀씨를 나누어 주면 논에 뿌렸다”면서 “먹을 것이 없어 몰래 풀씨를 베어 나물을 해먹다 사람들이 혼찌검을 당하곤 했다”고 말씀하셨다. ‘일본놈’들이 풀씨를 배급한 것은 나중에 갈아엎어 거름으로 쓰라고 준 것이라는 어머니의 설명이었다. 자줏빛 꽃 군락을 이룬 ‘풀씨’들이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일본 사람을 언급할 때마다 꼭 ‘일본놈’이라고 부르신다. 얼마전 일본 관광을 다녀오신 뒤 일본 사람들이 “참 친절하고 검소하더라”고 칭찬을 늘어 놓으시면서도 주어는 ‘일본놈’이었다. 해방 때 갓 10세를 넘었던 어머니의 머릿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일본 사람들로부터 당한 아픈 기억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광복이 된 지 6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일본은 적어도 우리에게는 ‘과거’라는 감옥 속에 갇힌 존재다. 일본은 독도·군대위안부·교과서 왜곡·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 과거의 어두운 기억들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하다. 한·일 간에 인적·물적 교류가 늘어나고 있지만 일본은 우리에게 ‘과거’라는 멍에를 진 죄수일 뿐이다. -과거속에 갇혀버린 對日외교- 특히 외교적으로 일본은 현재 한국 정부에 성가신 존재일 뿐이다. 과거사 문제도 그렇지만 우리의 최대 현안인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일본이 자국의 납치 문제를 내세워 훼방꾼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게 우리 정부의 인식이다. 한 마디로 일본을 성가신 존재로 여기는 분위기가 한국의 권력 심층부 내에 팽배하다. 그러면 일본에 지금 한국은 어떤 존재일까. 일본 국민에게는 ‘배용준’이 있지만 일본 정치인들에게는 북한만 있을 뿐 한국은 없는 듯하다. 박용채 도쿄 특파원은 “현재 일본에서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어떤 노력도 느낄 수 없다”면서 “정계 원로들 사이에 한·일 관계에 대해 향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은 외교 순위에서 후순위로 처져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중국을 의식해 미·일 동맹을 축으로 미·일·호주의 3각 동맹, 나아가 인도까지 포함하는 4각 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과 일본 사이에 현안들이 그대로 존재했지만 지금처럼 서로의 존재를 무시할 정도로 냉랭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현 정부의 끝장내기식 대일 외교가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다. 물론 고이즈미 전 총리 이후 일본의 극우 분위기가 여기에 빌미를 제공했지만 전혀 외교답지 못한 대응으로 오히려 우리가 ‘과거’ 속에 갇혀 버린 느낌이다. 그 결과 동북아에서 우리의 존재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난 4월초 원자바오 총리가 한국을 거쳐 일본을 방문해 양국 관계를 복원했다. 정확히 말해 일본을 방문하는 길에 한국을 잠시 들른 것뿐이다. 우리 정부는 한·중 군사 핫라인 설치 등을 선전했지만 신문 뒷면에 자리잡았다. 지난 해 10월 북한의 핵실험 직후 아베 총리가 중국, 한국순으로 순방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디까지나 핵심은 중국이었다.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견제할 것은 견제하는 중국과 일본이 그저 자신들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징검다리로 한국을 이용했다. 한반도를 중간 통과지로 이용하려 했던 몽골의 한국 침략이나 임진왜란을 연상한다면 지나칠까. 왜소화될 대로 왜소화된 한국의 외교 현주소다. -관계회복 외교역량 발휘할 때- 지난 3월 유명환 외교부 차관이 주일대사로 부임했다. 1946년생인 그는 일본으로 출발하기 직전 만난 자리에서 “해방 후 출신 외교장관은 있는데 주일대사는 자신이 처음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면서 한·일간의 새 이정표 마련에 대한 의지를 표시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유대사의 노력만으로는 안 될 일이다. 우리 외교가 외교답게 이루어질 때 한·일 관계, 나아가 동북아에서 우리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다. 외교는 밑에서는 숨 막히게 서로 치고 받고 하면서 겉으로는 서로 손을 맞잡고 웃는 것 아닌가. 우리 외교가 뒤늦었지만 기본으로 돌아가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