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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돌 김선기 박사 탄생 100주년 |
"한글전용했으므로 박정희를 용서하노라"
국어학ㆍ언어학자 김선기 탄생 100주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무돌 김선기(金善璂)는 식민지시대에는 조선어학회 사전편찬위원으로 참여한 국어학자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서울대 언어학과 창설(1950년)을 주도했고, 환갑이 되어서야 향가연구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이승만 정권 말기인 1958년 서울대 언어학과 주임교수직을 사직하고 문교부 차관으로 옮긴 그는 당시 서울 시내 간판이 한자 천지인 데 분개하고는 한글간판 정화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4.19혁명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그는 성신여대에 출강하던 1966년 무렵에는 한글전용론과 국한문혼용론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게 되자 한글이 있으므로 한국은 세계 10대 강국이 될 것이라는 말로써 한글전용론을 열렬히 주창했다.
박정희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김선기는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한다.
"나는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를 했으므로 아주 싫어했다. 그러나 한글전용을 시행했으므로 그의 모든 것을 용서해 줄 수 있다."
1907년 3월31일 전북 옥구군 임피면 읍내리에서 태어나 한글운동과 향가해독, 그리고 한국어 어원론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1992년 11월11일 서울 둔촌동 보훈병원에서 향년 85세로 타계한 김선기가 31일로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이에 그의 유가족과 제자들이 31일 한양대 서울캠퍼스 백남학술정보관에서 10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서울대에서 고인이 길러낸 제자 성백인 이현복 서울대 언어학과 명예교수를 비롯해 김주원 동 학과 교수, 리의도 춘천교대 교수, 양희철 청주대 교수가 음성학과 비교언어학, 국어정책, 향찰연구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무돌 언어학'을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성백인 교수는 스승이 후일 국어사와 언어학 연구의 길에 들어선 데는 중앙고보 시절 은사인 권덕규와 연희전문 스승인 최현배의 영향이 컸다고 지목했다.
나아가 김선기가 남긴 각종 글을 모은 전집 '무돌 탄신 100돌 기념 무돌 김선기 선생 글모이'(전 5권) 또한 그의 기일인 11월에 즈음해 발간할 계획이다.
전집에는 1967-1969년 '현대문학' 잡지에 연재된 '향가의 새풀이'와 1976-79년 같은 잡지에 게재된 '한국어의 어원'을 비롯해 '가라말의 덜(한국어의 어원)', 1937년 영국 런던대학 석사학위 논문인 'Phonetics of Korean' 등을 망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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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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