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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리더 검증 | |
1969년 7월 18일 늦은 밤, 매사추세츠주 채퍼퀴딕 섬에서는 온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이었던 에드워드 케네디가 여비서인 메리 조 코페크니를 태우고 차를 몰다 다리난간을 들이받아 물속에 추락한 사건이었다. 케네디상원의원은 차문을 열고 헤엄쳐나와 극적으로 살아났지만 여비서는 차속에서 숨졌다. 문제는 케네디 의원의 처신이었다. 비서를 남겨둔 채 자기 혼자만 살아난 데다 사건이 알려질 것을 두려워해 경찰에 늑장 신고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비서와 부적절한 관계로 구설에 올라 있던 상황에서 위기에 처하자 자기만 살아나려 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그것으로 미래 대통령을 꿈꾸던 케네디의 야망은 무너졌다. 지금까지 여덟 번에 걸쳐 상원의원으로 뽑아준 국민들도 그가 80년 민주당 대통령 예비선거에 나오자 "절대 안 될 일"이라며 거부했다. 상원의원이라면 몰라도 세계를 관리하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도덕성이 결핍되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8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유력후보였던 게리 하트 역시 거짓말과 여성편력이라는 도덕성의 잣대에 밀려 중도하차한 케이스다. 당시 그는 젊고 유능한 상원의원 출신이라는 이미지로 상대적으로 '올드보이'인 공화당의 아버지 부시 후보를 누를 수 있는 기대주로각광을 받았다. 그는 혼외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지적하는 언론에 대해 "절대 그런 일 없다"고 끝까지 잡아뗐다. 하지만 요트에서 연인이었던 도나 라이스를 무릎 위에 앉히고 찍은 사진이 신문에 공개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부적절한 처신과 함께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이 확산됐고 결국 대권의 꿈을 접어야 했다. 사실 미국 대선후보 검증은 다소 심하다할 정도다. 어린시절 시험부정 문제에서부터 대학시절 주차위반까지 우리 기준에서 보면 시시콜콜한 모든 것을 검증대상으로 삼는다. 장난삼아 피워 본 마리화나나 음주문제는 자기통제와 정신건강 차원에서 상당히 심각한 문제로 간주한다. 음주를 즐겼던 현 부시 대통령이 선거운동 기간 내내 언론의 추적에 시달렸던 것도 그 때문이다. 도덕성 문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차원에서 철저하게 파헤친다. 앞서 언급한 케네디와 하트의 예는 물론 닉슨 전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끝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떠난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대선주자들에 대한 후보검증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특히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간 신경전이 뜨겁다. 결론적으로 기자는 후보검증은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부에서는 시대적 상황이 변한 만큼 현재의 도덕적 기준으로 과거를 재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에 오르려는 사람에게는 일반인들보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 한 가지 더 능력과 정책에 대한 검증도 같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종래 시행했던 정책에 대한 평가는 물론 주요 사회적 이슈에 대한 후보 개인 의견 등도 철저하게 따져봐야 한다. 미국에서는 선거 때만 되면 동성애, 낙태, 총기소지 합법화 등에 대한 후보의견을 묻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후보시절에 좀 더 진지한 정책과 노선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졌다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능력검증과 관련해 최근 미국 대통령 중 상하 의원보다는 직접 행정을 경험했던 주지사 출신들이 대거 선출되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거짓 문제제기에 대한 사회적 제재도 필수적이다. 미국의 대표적 공중파 방송인 CBS는 2005년 24년간 회사 간판 뉴스프로그램 'CBS 저녁뉴스'를 맡아왔던 앵커 댄 래더를 퇴진시켰다. 그가 2004년 대선기간에 제기한 부시 대통령 병역특혜 관련 보도가 오보로 판명됐다는게 그 이유였다. 2004년 그레그 다이크 영국 BBC 사장이 전격 퇴진한 것도 같은 차원이었다. BBC는 2003년 "블레어 정부가 대량살상 무기에 대한 정보를 조작해 이라크 참전 명분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다소 논란이 있었지만 허튼 보고서가 이를 부인함에 따라 다이크 사장이 책임을 진 것이다. 이제 대선까지는 8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지나친 검증이 대선국면을 혼란으로 몰아갈 것이라는 염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 하지만 도덕과 능력 면에서 좀 더 나은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국민과 언론의 철저한 검증작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병준 정치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