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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32회 작성일 2007-04-06 08:57
[김대호의 옛날야구]동대문야구장 키드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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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의 옛날야구]동대문야구장 키드의 생애
김대호기자 dhkim@joynews24.com 0703_email.gif
동대문야구장을 처음 간 게 초등학교 4학년때인 1972년이었다. 아니 야구장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수업을 마친 뒤 같은 반 친구 3명과 함께 찾은 동대문야구장의 겉모습은 흉물스러웠다. 시퍼런 시멘트가 군데군데 뜯겨져 나간 채 올라서 있는 외벽은 어린 마음을 움추려 들게 했다.
하지만 야구장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의 풍경은 더할 수 없이 포근했다. 한일은행과 제일은행의 실업야구연맹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파란 잔디위로 노란빛의 조명등이 비추고 있는 것이 마치 우주선에 탄 기분이었다. 관중들 분위기도 너무 자연스러웠고 편안해 보였다. 여기저기서 선수들 이름을 부르며 웃고 떠드는 모습이 이웃집 아저씨들 같았다.

눈이 휘둥그레져 야구장안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관중석이 떠들썩해졌다. 다른 선수들보다 덩치가 두배쯤 커 보이는 한 명이 한일은행 덕아웃에서 어슬렁거리며 걸어나오고 있었다. 한 관중이 “야! 김응룡, 배 좀 집어넣어라”라고 소리치자 주변이 웃음바다가 됐다.

이 덩치 큰 선수는 대충 배트를 휘두르곤 삼진으로 물러났던 것 같다. 나중에 알았는데 김응룡은 당시 한일은행의 코치 겸 선수로 은퇴를 앞두고 있었으며, 몇 달 뒤 감독으로 승격했다.

동대문야구장은 어린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줬다. 세련된 야구 유니폼은 동경의 대상이 되었으며,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하얀 공은 희망의 메시지였다.

그뒤로 틈만 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동대문야구장을 찾았다. 1972년은 고교야구의 전성기였다. 특히 우리 또래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선수는 단연 중앙고의 윤몽룡이었다. 배명고와 봉황대기 결승전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찌릿해진다. 투수에 4번을 쳤던 윤몽룡은 진통제를 맞아가며 던졌지만 배명고에 5-7로 역전패했다. 조그마한 체구에 무뚝뚝한 표정이 얼마나 멋있었던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배정때 윤몽룡이 졸업한 중앙중학교에 입학하게 해달라고 속으로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불행히도 야구부가 없는 학교에 배정되고 말았지만.

중학교에 올라간 뒤론 아버지 손을 잡고 동대문야구장에 다녔다. 자연스럽게 아버지 고향인 대구의 경북고, 대구상고의 팬이 되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야구부가 있는 학교의 역사와 야구전통에 대해 들려줬다.

중학교 시절엔 여름방학때면 고교야구를 보려고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끼니를 굶어가며 동대문야구장에서 살았다. 교복 하의 엉덩이 부분이 닳아 너덜너덜해질 정도였다.

대구상고의 천재타자 장효조, 배재고의 고무팔 이광은, 경남고의 금테안경 최동원, 군산상고의 투수 겸 유격수 김성한 등등. 모두 동대문야구장과 함께 한 추억의 이름들이다.

1988년엔 야구기자가 돼 처음으로 동대문야구장을 찾았다. OB와 해태의 경기였는데 경기장이 관중으로 꽉 들어차 홈구단인 OB에서 ‘만원사례’를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때의 동대문구장엔 ‘야구키드’의 기억이 많이 퇴색해 있었다. 시멘트 바닥이었던 관중석은 등받이 의자로 바뀌었고, 듬성듬성 파여있던 정감있던 잔디는 딱딱한 인조잔디로 변해 있었다. 투박했지만 넉넉한 웃음을 아끼지 않았던 이웃 아저씨들의 모습도 사라졌다.

1959년 개장된 동대문야구장이 올 11월이면 48년의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한다. 무릇 모든 사물은 처음과 끝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고 한다. ‘성동원두’의 기억도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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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4월 02일 오전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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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h_expert02.jpg profile_dot.gif 김대호의 옛날야구
1988년 주간야구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세계일보, 스포츠조선, 스포츠투데이를 거치면서 야구를 비롯한 체육 각 종목을 담당해 왔습니다. 특히 국내 프로야구에 있어선 오랫동안 각 구단을 출입하면서 깊숙한 얘기들을 많이 기사화해 야구계에 높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지난 2003년엔 한국야구기자회 회장을 맡아 언론과 선수들간의 통로 개척에도 많은 기여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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