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발전기금? 그런 게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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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발전기금? 그런 게 있었나…
학교는 가난하다 <3> 초중고 40%가 ‘한푼’도 못받아
도입 10년째… 학교관계자도 내용 잘 몰라 교장들
“괜히 구설수 오를까 얘기도 안꺼내”
김남인기자 kni@chosun.com
입력 : 2007.03.07 00:27 / 수정 : 2007.03.07 09:03
학교는 가난하다 <3> 초중고 40%가 ‘한푼’도 못받아
도입 10년째… 학교관계자도 내용 잘 몰라 교장들
“괜히 구설수 오를까 얘기도 안꺼내”
김남인기자 kni@chosun.com
입력 : 2007.03.07 00:27 / 수정 : 2007.03.07 09:03
“한 번도 받아보질 않아서 잘 모르는데…. 차라리 교회에다 하시지 그래요?”
6일 찾아간 서울 목동의 A중학교 행정실. 기자가 학교발전기금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직원은 이렇게 답했다. 현재 개인이나 기업, 단체는 언제든지 ‘발전기금 기탁서’를 작성하고 돈이나 책·정수기 등 물품을 자발적으로 학교에 기부할 수 있지만, 지난해 이 학교 행정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행정실 직원들도 당연히 이 업무를 처리해본 경험이 없는 것이다.
서울 청운동 B중학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행정실 문에 종이로 ‘발전기금 접수처’라고 써붙여 놓았지만, 이 일로 행정실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한 직원은 “문의전화도 한 통 없다”면서 “학부모들도 기부를 안 하는데 일반인이나 기업이나 단체들이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학교 살림살이를 넉넉하게 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학교발전기금제도. 올해로 도입된 지 10년째이지만,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 학교는 그다지 많지 않다.
- ▲서울의 한 중학교 행정실 문에 붙여진 학교발전기금 접수처 안내문. 학교 관계자는“발전기금을 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은커녕 문의 전화도 없다”고 말했다. /정경열기자 krchung@chosun.com
본지가 학교발전기금 실태를 파악한 결과, 2005년 한해 동안 전국 초중고교 1만901개교 중 학교발전기금을 조금이라도 받은 학교는 61%인 6652개교였다. 10개 교 중 4개는 한 푼도 받지 못한 셈이다. 지역적으로 편차가 심하다는 것도 문제다. 서울·인천 지역은 각각 86%, 91%의 학교가 발전기금을 받았지만 전남과 경북은 21%, 25%에 그쳤다. 액수도 서울은 2005년에 503억원에 달했지만 전남은 21억원, 경북은 17억원에 불과했다. 30배 정도 차이가 나는 실정이다.
그나마 형편이 상대적으로 나은 서울에서도 지난해 상반기 동안 거둔 학교발전기금이 ‘0’원인 학교가 244개로, 서울전체 초중고교의 20%나 됐다. 취재팀이 확인해 본 결과 이 학교들 대부분은 5~6년 동안 학교발전기금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서울 지역 역시 강남·강북 간 격차가 심했다. 2005년 교육부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2001~2004년 4년간 강남구는 132억원, 강북구는 29억원이 모였다.
정부의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잘만 운영하면 학교를 한 차원 업그레이드(Upgrade)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학교발전기금 제도가 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할까?
학교 교장들은 한결같이 “불법 찬조금을 요구한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아예 얘기를 못 꺼내겠다”고 답했다. 지난해 발전기금이 전혀 들어오지 않은 서울 개운초 김천수 전 교장은 “발전기금제를 홍보하다가 자칫 ‘교장이 강제로 돈 걷는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게 현실”이라며 “기업이나 개인이 알아서 낼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혹시라도 오해를 살지 몰라 몸을 사린다는 얘기다. 한 중학교 행정실장은 “‘기업이 학교에 관심이 있겠나, 거지처럼 손 벌리고 싶지 않다’는 교장들도 많다”며 “이런 분위기에서는 뭘 해보자고 말을 꺼내기도 어렵다”고 했다.
학교발전기금제도가 운영하기 번거롭다는 지적도 있다. 자발적 기부를 제외하고,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자발적 금품조성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모금활동은 학교운영위원회가 사업계획을 세운 후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 서울 봉래초 김칠수 교장은 “얼마나 벌겠다고 행사 열어 모금활동을 벌이겠는가. 괜한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싫다”고 했다. K초등학교 강모 교장은 “정말 절박한 경우가 아니라면 학교운영위원회까지 소집해가며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다. 차라리 주어진 예산을 쪼개서 쓰겠다”고 했다.
물론 지역적인 사정 때문에 학교발전기금이 없는 학교도 많다. 작년 발전기금을 전혀 받지 못한 서울 경기기공고 이재근 교감은 “지역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곳이라 우리가 오히려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줘야 할 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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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등학교가 저조한 학교발전기금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있다. 이유가 뭔지 현직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다. /조선일보 정경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