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2
본문
딸이 셋있습니다.
큰 딸이 조금 나이가 많기는 해서 가끔 하늘을 넘보기는 해도,
참 행복한 날들입니다.
어제는 작은 딸이 등을 밀어주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때 저도 서울로 올라와서 뚝섬에 있는 국민학교에 다녔었습니다.
지금도 1년에 두어번씩은 거기 솟은 우리집엘 갑니다.
갈 때에는 가능하면 계동 골목에서 걸어갈려고 합니다.
79년 처음 계동골목에 들어섰을 때에는
휘문고등학교에서 현대 본사를 지을 때의 어수선함이었습니다.
초입의 승리스포츠사에서는 회수권 한장과 아이스크림을 바꾸어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그 길을 걸으면
푸른 모자에 빵떡모자를 눌러쓴 물결들은 볼 수도 없습니다.
100원짜리 떡뽁기 대신 직장인들을 상대로 한 술집과 음식점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아스라한 우리의 젊은 청춘 역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그 계동 골목의 끝에 가면 여전히 살아 숨쉬는 우리의 추억은 있습니다.
그 추억을 보며, 혹은 방송이나 컴퓨터 화면에서
'아. 아빠 학교다!'하며 딸들과 기억을 함께 하고는 합니다.
'어. 내가 지금 있는 학교는 하남고등학교인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랑하는 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을 준
거기 솟은 우리 집
참
감사합니다.
큰 딸이 조금 나이가 많기는 해서 가끔 하늘을 넘보기는 해도,
참 행복한 날들입니다.
어제는 작은 딸이 등을 밀어주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때 저도 서울로 올라와서 뚝섬에 있는 국민학교에 다녔었습니다.
지금도 1년에 두어번씩은 거기 솟은 우리집엘 갑니다.
갈 때에는 가능하면 계동 골목에서 걸어갈려고 합니다.
79년 처음 계동골목에 들어섰을 때에는
휘문고등학교에서 현대 본사를 지을 때의 어수선함이었습니다.
초입의 승리스포츠사에서는 회수권 한장과 아이스크림을 바꾸어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그 길을 걸으면
푸른 모자에 빵떡모자를 눌러쓴 물결들은 볼 수도 없습니다.
100원짜리 떡뽁기 대신 직장인들을 상대로 한 술집과 음식점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아스라한 우리의 젊은 청춘 역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그 계동 골목의 끝에 가면 여전히 살아 숨쉬는 우리의 추억은 있습니다.
그 추억을 보며, 혹은 방송이나 컴퓨터 화면에서
'아. 아빠 학교다!'하며 딸들과 기억을 함께 하고는 합니다.
'어. 내가 지금 있는 학교는 하남고등학교인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랑하는 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을 준
거기 솟은 우리 집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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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이 밀려 오는... 그리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