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가난하다] 서울 학생 박예지양, 시골 학교에 가보니
본문
[학교는 가난하다] 서울 학생 박예지양, 시골 학교에 가보니
남녀공용 화장실? 아휴! 석유난로 냄새
우리 학교는 온돌바닥인데…
우리학교 도서실 시설을 여기 나눠주고 싶어요…
음악실도 미술실도요…
정혜진기자 hjin@chosun.com
입력 : 2007.03.05 02:11 / 수정 : 2007.03.05 11:19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남녀공용 화장실? 아휴! 석유난로 냄새
우리 학교는 온돌바닥인데…
우리학교 도서실 시설을 여기 나눠주고 싶어요…
음악실도 미술실도요…
정혜진기자 hjin@chosun.com
입력 : 2007.03.05 02:11 / 수정 : 2007.03.05 11:19
- 학교는 우리 아이들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기를 보내는 곳이다. 불행히도 그 학교가 여전히 가난하다. 좀 나은 학교나 그렇지 못한 학교 모두 시설과 내용에서 부족한 것이 많다. 학교를 돕겠다는 손길도 뜸하다. 조선일보는 창간 87년을 맞아 가난한 학교 현장과 우리 사회의 무관심을 고발하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 ▲ 시골학교를 찾은 박예지양이 교실 뒤쪽의 책장 앞에 앉아 표지가 뜯긴 낡은 책을 꺼내 보고 있다. 박양은“같은 나라에서 학교 환경이 왜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안호영 객원기자 hoyoungan1@chosun.com
- “곧 무너질 것 같아요!”
지난 2월26일 전북 M초등학교에 농촌학교 체험학습을 온 박예지(13·서울 잠원초 6학년)양은 학교에 들어서자 눈이 동그래졌다. “이렇게 다른 환경에서 공부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학교를 2시간 넘게 돌아본 뒤 나온 예지의 말이다.
오후 1시쯤 학교에 도착한 예지는 또래 친구들이 공부하는 교실이 보고 싶다며 곧장 2층으로 향했다. 나무로 된 복도에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 삐걱’ 소리가 요란하다. 복도 벽마다 금이 가 있고 페인트칠도 벗겨져 있다. “이거 얼마나 오래된 거예요?” 칠이 벗겨져 빛 바랜 나무 마룻바닥은 예지 눈에도 심하다 싶었던 모양이다. 50대 후반의 이모 교감은 “마룻바닥은 30년은 족히 넘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도 끝 6학년 교실에 들어서자 예지의 손가락 끝이 교실 뒤 천장 모퉁이를 향한다. 거기엔 물이 샌 자국이 얼룩덜룩 남아 있었다. 이 교감은 “옥상에 방수 작업을 못해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샌다”고 말했다. “비가 새요?” 예지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학교시설을 담당하는 엄모(56)씨는 “비 새는 거야 양동이로 받으면 되지만 옥상과 천장 합판 사이에 물이 고여 있다가 전기 배선과 접촉해 누전사고가 일어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5학년 교실. 연통이 길게 붙어 있는 난로를 보며 예지가 신기한 듯 “이게 뭐예요?” 하고 교감 선생님에게 물었다. “석유난로인데, 냄새 때문에 학생들과 선생님이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연기 빠지는 통로를 만들어 놓은 거야.” 학교 측은 겨울이면 학생들이 내복을 입고 등교하도록 학부모들에게 안내하고 있다고 한다. 내복 입고 견디는 것이 냄새나는 난로를 켜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예지는 “제가 다니는 학교는 바닥이 따뜻해서 양말만 신고 노는데 이곳 아이들에게 미안하네요”라고 말했다. 예지네 학교는 지난해 한 기업의 도움으로 교실마다 바닥 온돌공사를 했다. 학생들이 안방처럼 실내화 없이도 춥지 않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 ▲ 박양이 교실에 설치된 난로 연통을 신기한 듯 보고 있다. /안호영 객원기자
- 예지는 1층으로 내려오는 길에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멈칫했다. 남녀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데다 대변기가 있는 곳은 경계 칸막이가 천장에 닿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 교감은 “이 때문에 가끔 짓궂은 남학생들이 옆 칸을 들여다보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수세식 화장실의 변기는 들어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낡을 대로 낡아 있었다. 세면대 물을 틀었더니 찔끔 나오거나 아예 안 나오는 것도 있었다. “우리 학교는 작년에 화장실을 다 고쳐서 이제 따뜻한 물도 잘 나오고 휴지도 늘 있고 깨끗한데….” 예지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학교 이모(13·6학년)군이 1층 교무실에서 예지를 만나 특별실로 안내했다. 컴퓨터실에는 컴퓨터가 30대 있었다. 모두 2000년에 구입해서 사용연한이 끝난 것들이라고 한다. 이 군은 “인터넷에서 화면 한 번 바꾸려면 20, 30초 기다려야 해. 조금만 빨랐으면 좋겠는데….”라고 했다.
이 학교는 행정구역상 도시에 있지만 전교생 60명의 전형적인 농촌형 학교다. 학생들 대부분이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교육청에서 내려오는 예산 중 상당액을 지원받고 있다. 작년에는 학생들의 체험학습 비용과 방과 후 학교 강사비도 전액 학교예산으로 부담했다고 한다. 시설 개선에 투자하는 것은 꿈도 꿀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이다.
예지는 서울과 지방의 환경이 이렇게 다르다는 데 대해 내심 몹시 놀라는 표정이었다. “우리 학교 도서실 시설을 여기에 나눠주고 싶어요. 미술실, 음악실도요. 아, 우선 컴퓨터실부터 가져와야겠네.”
예지는 “우리 학교엔 영어체험 마을도 있는데…”라며 “한국 땅에서 같이 살면서 왜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