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마다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왜 결혼기념일은 남자가 여자에게 챙겨줘야만 하는가`다. 한 해 한 해 무난히 결혼생활을 하며 행복을 엮어나가고 있음을 서로 자축하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위로하는 날로서 그 의미는 물론 매우 중요하다. 결혼생활중 남녀 어느 쪽이 더 고생하고 더 힘들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결혼기념일은 고생하는 아내를 남자가 위로하는 날로 인식되어 있다. 과연 맞는지 의문이다. 결혼기념일에 가졌던 엉뚱한 의문이 연수원 사은회날에도 들었다. 사법연수원도 2년간 예비 법조인 교육과정을 마치고 수료를 앞둔 시점에서 사은회를 한다. 인생의 중요한 한 과정을 마무리하면서 스승과 제자가 한자리에 모여 과거를 정리해 보고 미래를 다짐하는 분명뜻 깊은 일이다. 그런데 교육과정을 마무리하는 자리가 왜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사은회`여야 하는가. 공부로 말하면 공부는 `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교수들이 공짜로 가르쳐 준 것도 아닐 터인데 스승의 `은혜` 운운은 과연 합당한지 의문이 든다. 교수가 무엇을 베풀었다는 것인지 반성해 본다. 어려운 한 과정을 무사히 마쳤음을 서로자축하고 미래를 다짐하는 매듭의 장으로서 치르는 행사는 분명히 의미 있겠으나 과연 `사은회`라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사법연수원 주인이 교수냐, 연수생이냐는 질문에 대해 `교수 없는 연수생은 상상할 수 있지만 연수생 없는 연수원은 상상할 수 없다`고 답한다면 역시 사법연수원 주인은 연수생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은회는 연수생이 교수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라, 교수가 연수생들에게 감사해야 하거나 서로 감사해야 하는 자리가 마땅하지 않을까. 그 동안 연수생들을 가르치면서 교수로서 오히려 얼마나 많이 배웠던가. 비록 법조 실무에 미숙한 연수생들이지만 평소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법조실무관행에 대한 문제점이나 국민 관점에서 본 불편함들을 지적할 때면 가끔 교수들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일선 실무에복귀하면 한번 시도해 볼 만한 참신한 아이디어도 많았다. 중학교 때 배운 영어문장 하나가 사은회장에서 머리에 맴돌았다. `To teach is to learn(가르치는 것은 배우는 것이다).` [임정혁 사법연수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