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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고작 10분 책을 읽는다고 삶이 얼마나 바뀔까? 의구심은 일거에 날아갔다. 겨울방학 직전인 지난 달 말 대구 서부고. 남녀 공학인 이 학교는 2년 전 아침독서 10분 운동을 시작했다. 학생들은 매일 아침 수업시작 전 8시부터 10분간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다.
가장 바뀐 것은 교실의 풍경이다. 전에는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TV 연속극이나 컴퓨터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전부였다. 지금은 자기가 읽고 있는 책 이야기를 하며 서로에게 권하는 모습이 일상이 됐다.
새해 2학년이 되는 백수정(17)양은 작년 한 해 스무 권을 읽었다. 아침에 10분씩 읽다 보니 쉬는 시간이나 집에서도 읽는 습관이 붙었기 때문이다. 역사책을 좋아하는 수정양은 ‘여인 서태후’ ‘로마인 이야기’ ‘측천무후’ 등 책 이름을 줄줄이 댔다.
커서 검사가 되고 싶다는 홍봉기(17)군은 중학교 때는 전혀 책을 읽지 않았다. 홍군은 “뭐 필요하겠나 싶었다”고 했다. 지금은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홍군은 “한 권 한 권 읽다 보니 말하는 표현력과 글 쓰는 실력이 느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에도 큰 변화가 왔다. 아침독서 2년 만에 교사와 학생들이 학교에 대해 갖는 자부심이 몰라보게 커졌기 때문이다. 신다영(17)양은 “처음엔 억지로 읽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요즘엔 수업시간에도 책을 읽는 친구가 있을 정도”라며 “사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읽을 수 있도록 골라 주는 책의 종류로 따지면 우리 학교 도서관이 시립도서관에 못지 않다”고 자랑했다.
우낙현 교장은 의외의 성과에 자신도 놀랐다고 했다. 그는 “아침독서운동을 시작한 후 학교에 사고와 결석이 현저하게 줄었다”며 “금년 서울대 법대에 수시 합격한 학생이 처음으로 나온 것도 책을 읽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 큰 몫을 했다”고 말했다. 김언동 교사는 “학교 공부는 소수가 주인공이고 나머지 아이들은 자기가 ‘들러리’라고 생각하게 된다”며 “모든 일에 의욕이 없던 아이가 책을 읽고 울기도 하면서 자신이 주인공이란 자신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학부모들도 “아이들이 변했다”며 반가워했다고 학교측은 전했다.
이 학교뿐이 아니다. 지금 대구는 아침독서운동의 ‘성지(聖地)’가 됐다. 2005년 시작한 이 운동에 지금은 대구지역 유치원·초·중·고교 693개 학교가 모두 참여하고 있다. 아침독서운동본부(본부장 한상수)가 지난해 각 지역 학교에 보낸 4만 권의 학급문고 중 대구가 7000권을 차지할 정도다.
대구가 아침독서운동의 ‘성지’가 될 수 있었던 데는 대구시교육청 한원경 장학사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한 장학사는 3년 전 일본의 사례를 모은 책 ‘아침독서 10분이 기적을 만든다’를 읽고 무릎을 쳤다. 한 장학사는 대구의 학교들을 찾아 다니며 아침 독서의 ‘기적’을 전파했다. “책을 읽어서 성적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른들의 사고방식입니다. 단지 책을 읽는 것 자체를 즐기도록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아침독서운동으로 교사와 학생간의 ‘감동의 교류’가 일어나고 있다”며 “그러나 독서를 점검하고 확인하는 것은 아이들을 책에서 멀어지게 한다”고 말했다.
(대구=이한수기자 hs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