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세계曆을 써야할 이유 -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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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세계曆을 써야할 이유
朴星來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보면 동지에는 관상감에서 달력을 올리고,임금은 그것을 관리들에게 나눠 주었다. 이런 하사품 외에도 조선 시대에는 여러 형태로 달력이 제작 배포됐다. 조선 초에는 약 4000부를 찍었는데,후기로 들어가서는 1만부 이상을 인쇄했다는 기록이 있다. 1791년에는 1만8000부를 찍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오는 22일은 동지인데,요즘은 양력 시대여서 동지 훨씬 전에 달력은 배부가 끝난다. 옛날에도 황장력(黃粧曆),백장력(白粧曆) 등 장식에 따라 여러 이름이 붙여졌지만,지금은 그 종류도 수천 가지가 넘고 그 제작비 또한 1부에 1000원에서 10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올해 만들어낸 달력은 모두 5000만 또는 7000만부 정도라고 한다. 그 평균 제작비를 3000원 정도로 잡아 2000억원 전후가 된다. 이 큰 돈이 해마다 달력 만드는데 쓰이고 있다. 만약 같은 달력을 해마다 그대로 쓸 수 있다면 큰 돈을 절약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게다가 이 낭비는 한국에서만의 일이 아니고 보면,세계가 해마다 달력 만들기에 쓰는 돈만 절약해도 세상은 배고픈 사람 없는 더 평화로운 곳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어떻게 똑같은 달력을 해마다 쓸 수 있겠는가 하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달력은 가능하다. 가능할 뿐만 아니라,이 '세계력'(World Calendar) 운동은 이미 76년 전인 1930년에 시작됐고,반세기 전에는 유엔에서 채택될 뻔한 기회도 있었다. 1954년 유엔이 각국에 그 찬반을 물어 보았는데 20개국이 찬성,20개국이 반대,그리고 20개국이 무응답이었다. 1955년 3월 미국이 정식으로 반대하고 나서면서 이 개력안(改曆案)은 휴지가 되고 말았다. 그와 함께 평생 독신으로 자비를 들이며 이 운동에 매달렸던 미국의 여성 부호(富豪) 엘리자베스 아킬레스(1880∼1973)는 실망 속에 세상을 떠났고,그와 함께 '세계력' 운동은 사라진 듯했다.
그러나 그 불꽃이 지금 자그맣게 부활하고 있다. 인터넷 덕택에 미국 등에서 '세계력' 캠페인이 다시 조용하게 일고 있다.
'세계력'은 이치(理致)가 간단하다. 1년을 4분기로 나누되 91일씩으로 하고,각 분기 3개월은 첫 달은 31일,둘째와 셋째 달은 30일씩으로 한다. 그리고 각 4분기의 첫날을 일요일로 고정한다. 즉 해마다 1월1일,4월1일,7월1일,10월1일은 일요일이 된다. 한 분기는 91일씩이어서,꼭 13주일이므로 요일과 날짜가 늘 함께 가게 마련이니 해마다 달력을 새로 만들 필요가 없다. 초등학교 때 한번만 배워두면 달력이 머리 속에 새겨질 터이니 달력을 보지 않고도 요일까지 알고 지내게 된다. 얼마나 경제적이고도 편리한가! 게다가 4분기가 똑같이 91일씩이어서 지금 우리가 쓰는 그레고리력의 분기별 차이를 극복하게 된다. 지금은 제1분기는 90일이지만,3분기와 4분기는 각각 92일씩이어서 분기별 날짜 수가 달라 경제 예측 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눈썰미 있는 사람은 당장 이 달력은 1년 길이가 364일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맞다. 그래서 '세계력'은 연말에 하루를 넣되,이 '세계일'(世界日)은 요일 배정을 하지 않는다. 또 윤년에는 6월 말에 다시 요일 없는 날을 하루 넣어 1년을 366일로 한다. 지금 '세계력' 운동가들은 오는 2012년에 '세계력'을 쓰기 시작하자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해에는 1월1일이 일요일로 '세계력'과 일치하므로,달력 변경에 의한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가 고도로 조직화된 지금,새 역법이 얼마나 큰 혼란을 부르게 될지는 연구를 많이 해봐야 될 것이다. 1954년의 유엔 조사 때 한국은 '세계력'을 지지했다. 네루의 인도나 중국 일본 등이 모두 '세계력'에 찬성했지만,미국 등 소위 기독교 선진국들의 반대로 그 채택이 저지됐다. 때마침 한국인 반기문씨가 유엔사무총장이 됐으니,그의 재임 중에 유엔이 '세계력'을 채택(採擇)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그런 생각이 든다.
입력시간: 12/1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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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星來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보면 동지에는 관상감에서 달력을 올리고,임금은 그것을 관리들에게 나눠 주었다. 이런 하사품 외에도 조선 시대에는 여러 형태로 달력이 제작 배포됐다. 조선 초에는 약 4000부를 찍었는데,후기로 들어가서는 1만부 이상을 인쇄했다는 기록이 있다. 1791년에는 1만8000부를 찍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오는 22일은 동지인데,요즘은 양력 시대여서 동지 훨씬 전에 달력은 배부가 끝난다. 옛날에도 황장력(黃粧曆),백장력(白粧曆) 등 장식에 따라 여러 이름이 붙여졌지만,지금은 그 종류도 수천 가지가 넘고 그 제작비 또한 1부에 1000원에서 10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올해 만들어낸 달력은 모두 5000만 또는 7000만부 정도라고 한다. 그 평균 제작비를 3000원 정도로 잡아 2000억원 전후가 된다. 이 큰 돈이 해마다 달력 만드는데 쓰이고 있다. 만약 같은 달력을 해마다 그대로 쓸 수 있다면 큰 돈을 절약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게다가 이 낭비는 한국에서만의 일이 아니고 보면,세계가 해마다 달력 만들기에 쓰는 돈만 절약해도 세상은 배고픈 사람 없는 더 평화로운 곳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어떻게 똑같은 달력을 해마다 쓸 수 있겠는가 하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달력은 가능하다. 가능할 뿐만 아니라,이 '세계력'(World Calendar) 운동은 이미 76년 전인 1930년에 시작됐고,반세기 전에는 유엔에서 채택될 뻔한 기회도 있었다. 1954년 유엔이 각국에 그 찬반을 물어 보았는데 20개국이 찬성,20개국이 반대,그리고 20개국이 무응답이었다. 1955년 3월 미국이 정식으로 반대하고 나서면서 이 개력안(改曆案)은 휴지가 되고 말았다. 그와 함께 평생 독신으로 자비를 들이며 이 운동에 매달렸던 미국의 여성 부호(富豪) 엘리자베스 아킬레스(1880∼1973)는 실망 속에 세상을 떠났고,그와 함께 '세계력' 운동은 사라진 듯했다.
그러나 그 불꽃이 지금 자그맣게 부활하고 있다. 인터넷 덕택에 미국 등에서 '세계력' 캠페인이 다시 조용하게 일고 있다.
'세계력'은 이치(理致)가 간단하다. 1년을 4분기로 나누되 91일씩으로 하고,각 분기 3개월은 첫 달은 31일,둘째와 셋째 달은 30일씩으로 한다. 그리고 각 4분기의 첫날을 일요일로 고정한다. 즉 해마다 1월1일,4월1일,7월1일,10월1일은 일요일이 된다. 한 분기는 91일씩이어서,꼭 13주일이므로 요일과 날짜가 늘 함께 가게 마련이니 해마다 달력을 새로 만들 필요가 없다. 초등학교 때 한번만 배워두면 달력이 머리 속에 새겨질 터이니 달력을 보지 않고도 요일까지 알고 지내게 된다. 얼마나 경제적이고도 편리한가! 게다가 4분기가 똑같이 91일씩이어서 지금 우리가 쓰는 그레고리력의 분기별 차이를 극복하게 된다. 지금은 제1분기는 90일이지만,3분기와 4분기는 각각 92일씩이어서 분기별 날짜 수가 달라 경제 예측 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눈썰미 있는 사람은 당장 이 달력은 1년 길이가 364일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맞다. 그래서 '세계력'은 연말에 하루를 넣되,이 '세계일'(世界日)은 요일 배정을 하지 않는다. 또 윤년에는 6월 말에 다시 요일 없는 날을 하루 넣어 1년을 366일로 한다. 지금 '세계력' 운동가들은 오는 2012년에 '세계력'을 쓰기 시작하자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해에는 1월1일이 일요일로 '세계력'과 일치하므로,달력 변경에 의한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가 고도로 조직화된 지금,새 역법이 얼마나 큰 혼란을 부르게 될지는 연구를 많이 해봐야 될 것이다. 1954년의 유엔 조사 때 한국은 '세계력'을 지지했다. 네루의 인도나 중국 일본 등이 모두 '세계력'에 찬성했지만,미국 등 소위 기독교 선진국들의 반대로 그 채택이 저지됐다. 때마침 한국인 반기문씨가 유엔사무총장이 됐으니,그의 재임 중에 유엔이 '세계력'을 채택(採擇)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그런 생각이 든다.
입력시간: 12/1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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