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질주 - 황홀한 쾌감…이 맛에 달린다 -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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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한 질주 - 황홀한 쾌감…이 맛에 달린다
운동을 하면 즐겁다. 그래서 홀딱 빠진다.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고, 좀이 쑤셔 어쩔 줄 모른다. 이쯤 되면 ‘운동 중독’이다. 이 중에서도 단연 달리기가 으뜸이다. 아마추어 마라토너 중엔 다리를 절룩이면서도 끝내 뛰기를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 어느 마니아는 무릎 인대가 끊어졌는데도 어기적어기적 계속 달리다가 수술을 받기도 했다. 왜 이럴까?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혹은 ‘러닝 하이(Running High)’ 때문이다.
○ 나는 달린다: 극한 상황서 느끼는 무아지경
러너스 하이란 달리기를 할 때 느끼는 짜릿한 쾌감이나 도취감을 말한다. 일종의 무아지경 내지는 황홀경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내가 내 몸 밖으로 빠져나간 기분’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미국 마스터스 중엔 “코카인을 마신 것과 흡사하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다. 대부분의 학자는 러너스 하이의 원인으로 ‘엔도르핀설’을 지지한다. 사람은 운동을 하면 모르핀과 비슷한 천연물질인 엔도르핀이 인체에 생성되는데, 이 엔도르핀이 뇌에 가득 차면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 이런 현상은 주로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난다. 엔도르핀은 마라톤처럼 오랫동안 격렬하게 달리거나 기진맥진한 상태가 될 때까지 계속 운동을 할 때 많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물론 장거리 사이클 선수들에게도 발생한다. 심지어 물리학도가 며칠씩 밤을 새우며 무아지경으로 공부하다가 마침내 난제를 풀었을 때도 일어난다.
러너스 하이 맛을 한번 본 사람은 또다시 그런 상태를 느끼고 싶어서 미친다. 더욱더 운동에 빠져들게 되고 그것은 곧 ‘운동 중독’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까. 그 원인에 대해선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사람마다 그 느낌의 상태와 오는 순간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한 번 풀코스 완주에 2, 3번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수십 번 풀코스를 완주하는 동안 단 한번도 느끼지 못한 예도 있다.
국내 아마추어 남자마라톤 랭킹 4위 이동길(31·위아)은 “한마디로 몸이 붕 뜨는 기분이다. 러너스 하이가 오면 다리에 힘이 완전히 빠져 더 달릴 수가 없다. 대부분 훈련할 때 그런 느낌이 오는데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 평소보다 좀 더 강도를 높게 했을 때 그렇다”고 말한다. 국내 아마추어 여자마라톤 랭킹 1위 문기숙(44)도 “난 평소보다 훈련을 세게 할 때 10∼20km 지점에서 그럴 때가 잦다. 산 정상에 올랐을 때의 벅찬 환희라고나 할까. 1, 2km 그런 상태가 지속된다”고 말했다.
○ 나를 잊었다: 편안하고 즐겁게 달려야 도취
러너스 하이는 편안하고 즐겁게 달려야 온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 다른 선수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칠 때는 거의 러너스 하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헬스클럽 트레드밀에서 달리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오직 야외에서 즐겁게 달릴 때만 러너스 하이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녹음된 새나 바람 소리를 들으며 실내의 트레드밀에서 달리면 어떨까? 실험 결과 그런 경우도 전혀 러너스 하이를 느낄 수 없었다. 학자들은 일단 실내에서 달릴 경우 단조로움으로 자신에게 빠져들기 때문에 러너스 하이를 느낄 겨를이 없다고 분석한다. 실내에선 엔도르핀이 잘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 실험 결과 엔도르핀은 야외 햇빛 속에서 달릴 때 분비가 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헬스클럽보다는 야외 운동이 좋다는 증거다. 물론 해가 없는 밤에 달리면 러너스 하이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몬주익 영웅’ 황영조(36)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은 “가속도가 붙은 스포츠카를 탔을 때의 붕 뜨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현역 땐 대회를 마치고 회복 훈련을 할 때 주로 일어났다. 하지만 현역 때보다 은퇴한 뒤에 훨씬 더 많이 느꼈다. 아무런 부담 없이 자유롭게 달리기 때문일 것이다”고 말했다.
‘봉달이’ 이봉주(36·삼성전자)는 어떨까. “대회에 나가서는 그런 경우를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다.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자유훈련을 할 때나 대회가 끝난 뒤 회복기에 가볍게 조깅할 때 온다. 아마 수십 번은 경험한 것 같다. 머리가 맑아지고 경쾌한 느낌이 든다. 날아갈 듯하다. 5분 정도 지속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여자마라톤의 일인자 이은정(26·삼성전자)도 “자유훈련 때 주로 오는데 편안한 마음으로 70∼80%의 에너지로 달릴 때 느낀다. 이럴 땐 계속 달려도 전혀 지치지 않을 것 같고 또 계속 달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한번 오면 30분 이상 지속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 내가 미쳤다: 그 기분 못잊어 마라톤에 중독
엔도르핀은 모르핀과 비슷하다. 우리 몸에서 생산되는 ‘천연 진통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온몸에 쾌감을 주는 대신 그 부작용도 있다. 통증을 완화해 주지만 중독성과 오버워크 문제가 따른다. 문기숙은 “러너스 하이가 왔을 때 기분 좋다고 질주하면 큰일난다. 오버워크로 인해 후반에 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초보자들은 초반에 러너스 하이가 오면 마구 뛰쳐나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럴 때 다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황 감독도 “러너스 하이가 왔을 땐 더 빨리 나가고 싶은 느낌이 드는데, 이때 그 충동을 지그시 누르고 일정한 페이스로 달리다 보면 오랫동안 ‘충만감’을 만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운동을 하면 누구나 컨디션이 좋아진다. 그렇다고 그런 기분 좋은 상태가 반드시 러너스 하이는 아니다. ‘최적 컨디션’과 ‘러너스 하이’는 엄연히 구별돼야 한다. 완주를 하거나 우승을 했을 때의 성취감과도 또한 다르다. 황 감독은 “1등으로 골인했을 때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희열로 가득 찬다. 정신적인 기쁨이 훨씬 크고 오래간다. 잠깐 왔다 가는 러너스 하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달리기는 인간의 꿈이요, 본능이다. 하지만 러너스 하이는 어디까지나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 부분일 뿐이다. 자칫 거기에 빠져들다간 중독이 된다. 마라톤은 어디까지나 완주가 목적이다. 몸에 와 닿는 산들바람, 길가의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 천천히 즐기면서 신나게 달리다 보면 자연히 러너스 하이가 온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국내 풀코스 완주자 4만명… 서브스리 1200명 선▼
손기정 선생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기록은 2시간 29분 19초. 100m 평균 21.23초의 빠르기다. 당시 역대 올림픽 사상 최고 기록이자 2시간 30분 벽을 처음으로 깬 대단한 기록이었다. 하지만 요즘이라면 손 선생의 이 기록은 국내 마스터스 톱 10에도 못 든다(표 참조). 마스터스 세계 최고 기록은 2003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멕시코의 안드레스 에스피노사(43)가 세운 2시간 8분 46초. 한국 마스터스 최고 기록(도나티엔·2시간 20분 57초·부룬디 출신)보다 12분 11초나 빠르다. 물론 에스피노사는 엘리트 선수 출신이지만 서양에선 40세가 넘으면 출신과 관계없이 마스터스로 간주한다.
국내 서브스리(SUB-3·풀코스를 3시간 미만에 완주하는 것) 마스터스도 부쩍 늘었다. 서브스리는 100m를 25.6초의 속도로 42.195km를 달려야 달성할 수 있는 기록. 마스터스 세계에선 ‘지존’으로 대접 받는다. 2006년 10월 현재 국내 마라톤 풀코스 완주자는 4만 명 정도. 이 중 서브스리는 약 1200명(동아마라톤 명예의 전당 979명 포함)으로 추산된다. 100명에 3명꼴로 서브스리인 셈이다.
인간의 신체능력은 25세를 정점으로 매년 약 1%씩 떨어진다. 40, 50대가 대부분인 국내 마스터스의 신체능력은 20대 때보다 15∼35%까지 떨어져 있다는 얘기다. 만약 41세 때 3시간에 풀코스를 완주했다면 1년 뒤 41세 땐 똑같은 조건에서 달린다 해도 3시간 1분 48초에 결승선에 들어온다는 계산이다. 불과 몇십 초를 단축시키지 못해 서브스리에 들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내 각종 마라톤 대회는 한해 400회에 육박한다. 그렇지만 남자 우승은 10∼15명이, 여자는 5명 정도가 돌아가면서 차지한다. 그만큼 마스터스 상위층과 그 아래의 실력차가 크다. 아직 저변이 선진국들처럼 두껍지 못하다는 얘기다. 황규훈 육상연맹 전무는 “앞으로 3년 안에 한국 마스터스 마라톤도 급격히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이라며 “그 첫 신호탄은 내년 3월 2만5000명이 참가하는 서울국제마라톤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통적으로 봄 대회에서 좋은 기록이 나오는 데다 코스가 편평해 최상 조건이라는 것이다.
김화성 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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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달린다: 극한 상황서 느끼는 무아지경
러너스 하이란 달리기를 할 때 느끼는 짜릿한 쾌감이나 도취감을 말한다. 일종의 무아지경 내지는 황홀경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내가 내 몸 밖으로 빠져나간 기분’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미국 마스터스 중엔 “코카인을 마신 것과 흡사하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다. 대부분의 학자는 러너스 하이의 원인으로 ‘엔도르핀설’을 지지한다. 사람은 운동을 하면 모르핀과 비슷한 천연물질인 엔도르핀이 인체에 생성되는데, 이 엔도르핀이 뇌에 가득 차면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 이런 현상은 주로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난다. 엔도르핀은 마라톤처럼 오랫동안 격렬하게 달리거나 기진맥진한 상태가 될 때까지 계속 운동을 할 때 많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물론 장거리 사이클 선수들에게도 발생한다. 심지어 물리학도가 며칠씩 밤을 새우며 무아지경으로 공부하다가 마침내 난제를 풀었을 때도 일어난다.
러너스 하이 맛을 한번 본 사람은 또다시 그런 상태를 느끼고 싶어서 미친다. 더욱더 운동에 빠져들게 되고 그것은 곧 ‘운동 중독’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까. 그 원인에 대해선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사람마다 그 느낌의 상태와 오는 순간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한 번 풀코스 완주에 2, 3번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수십 번 풀코스를 완주하는 동안 단 한번도 느끼지 못한 예도 있다.
국내 아마추어 남자마라톤 랭킹 4위 이동길(31·위아)은 “한마디로 몸이 붕 뜨는 기분이다. 러너스 하이가 오면 다리에 힘이 완전히 빠져 더 달릴 수가 없다. 대부분 훈련할 때 그런 느낌이 오는데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 평소보다 좀 더 강도를 높게 했을 때 그렇다”고 말한다. 국내 아마추어 여자마라톤 랭킹 1위 문기숙(44)도 “난 평소보다 훈련을 세게 할 때 10∼20km 지점에서 그럴 때가 잦다. 산 정상에 올랐을 때의 벅찬 환희라고나 할까. 1, 2km 그런 상태가 지속된다”고 말했다.
○ 나를 잊었다: 편안하고 즐겁게 달려야 도취
러너스 하이는 편안하고 즐겁게 달려야 온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 다른 선수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칠 때는 거의 러너스 하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헬스클럽 트레드밀에서 달리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오직 야외에서 즐겁게 달릴 때만 러너스 하이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녹음된 새나 바람 소리를 들으며 실내의 트레드밀에서 달리면 어떨까? 실험 결과 그런 경우도 전혀 러너스 하이를 느낄 수 없었다. 학자들은 일단 실내에서 달릴 경우 단조로움으로 자신에게 빠져들기 때문에 러너스 하이를 느낄 겨를이 없다고 분석한다. 실내에선 엔도르핀이 잘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 실험 결과 엔도르핀은 야외 햇빛 속에서 달릴 때 분비가 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헬스클럽보다는 야외 운동이 좋다는 증거다. 물론 해가 없는 밤에 달리면 러너스 하이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몬주익 영웅’ 황영조(36)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은 “가속도가 붙은 스포츠카를 탔을 때의 붕 뜨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현역 땐 대회를 마치고 회복 훈련을 할 때 주로 일어났다. 하지만 현역 때보다 은퇴한 뒤에 훨씬 더 많이 느꼈다. 아무런 부담 없이 자유롭게 달리기 때문일 것이다”고 말했다.
‘봉달이’ 이봉주(36·삼성전자)는 어떨까. “대회에 나가서는 그런 경우를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다.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자유훈련을 할 때나 대회가 끝난 뒤 회복기에 가볍게 조깅할 때 온다. 아마 수십 번은 경험한 것 같다. 머리가 맑아지고 경쾌한 느낌이 든다. 날아갈 듯하다. 5분 정도 지속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여자마라톤의 일인자 이은정(26·삼성전자)도 “자유훈련 때 주로 오는데 편안한 마음으로 70∼80%의 에너지로 달릴 때 느낀다. 이럴 땐 계속 달려도 전혀 지치지 않을 것 같고 또 계속 달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한번 오면 30분 이상 지속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 내가 미쳤다: 그 기분 못잊어 마라톤에 중독
엔도르핀은 모르핀과 비슷하다. 우리 몸에서 생산되는 ‘천연 진통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온몸에 쾌감을 주는 대신 그 부작용도 있다. 통증을 완화해 주지만 중독성과 오버워크 문제가 따른다. 문기숙은 “러너스 하이가 왔을 때 기분 좋다고 질주하면 큰일난다. 오버워크로 인해 후반에 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초보자들은 초반에 러너스 하이가 오면 마구 뛰쳐나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럴 때 다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황 감독도 “러너스 하이가 왔을 땐 더 빨리 나가고 싶은 느낌이 드는데, 이때 그 충동을 지그시 누르고 일정한 페이스로 달리다 보면 오랫동안 ‘충만감’을 만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운동을 하면 누구나 컨디션이 좋아진다. 그렇다고 그런 기분 좋은 상태가 반드시 러너스 하이는 아니다. ‘최적 컨디션’과 ‘러너스 하이’는 엄연히 구별돼야 한다. 완주를 하거나 우승을 했을 때의 성취감과도 또한 다르다. 황 감독은 “1등으로 골인했을 때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희열로 가득 찬다. 정신적인 기쁨이 훨씬 크고 오래간다. 잠깐 왔다 가는 러너스 하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달리기는 인간의 꿈이요, 본능이다. 하지만 러너스 하이는 어디까지나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 부분일 뿐이다. 자칫 거기에 빠져들다간 중독이 된다. 마라톤은 어디까지나 완주가 목적이다. 몸에 와 닿는 산들바람, 길가의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 천천히 즐기면서 신나게 달리다 보면 자연히 러너스 하이가 온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국내 풀코스 완주자 4만명… 서브스리 1200명 선▼
손기정 선생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기록은 2시간 29분 19초. 100m 평균 21.23초의 빠르기다. 당시 역대 올림픽 사상 최고 기록이자 2시간 30분 벽을 처음으로 깬 대단한 기록이었다. 하지만 요즘이라면 손 선생의 이 기록은 국내 마스터스 톱 10에도 못 든다(표 참조). 마스터스 세계 최고 기록은 2003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멕시코의 안드레스 에스피노사(43)가 세운 2시간 8분 46초. 한국 마스터스 최고 기록(도나티엔·2시간 20분 57초·부룬디 출신)보다 12분 11초나 빠르다. 물론 에스피노사는 엘리트 선수 출신이지만 서양에선 40세가 넘으면 출신과 관계없이 마스터스로 간주한다.
국내 서브스리(SUB-3·풀코스를 3시간 미만에 완주하는 것) 마스터스도 부쩍 늘었다. 서브스리는 100m를 25.6초의 속도로 42.195km를 달려야 달성할 수 있는 기록. 마스터스 세계에선 ‘지존’으로 대접 받는다. 2006년 10월 현재 국내 마라톤 풀코스 완주자는 4만 명 정도. 이 중 서브스리는 약 1200명(동아마라톤 명예의 전당 979명 포함)으로 추산된다. 100명에 3명꼴로 서브스리인 셈이다.
인간의 신체능력은 25세를 정점으로 매년 약 1%씩 떨어진다. 40, 50대가 대부분인 국내 마스터스의 신체능력은 20대 때보다 15∼35%까지 떨어져 있다는 얘기다. 만약 41세 때 3시간에 풀코스를 완주했다면 1년 뒤 41세 땐 똑같은 조건에서 달린다 해도 3시간 1분 48초에 결승선에 들어온다는 계산이다. 불과 몇십 초를 단축시키지 못해 서브스리에 들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내 각종 마라톤 대회는 한해 400회에 육박한다. 그렇지만 남자 우승은 10∼15명이, 여자는 5명 정도가 돌아가면서 차지한다. 그만큼 마스터스 상위층과 그 아래의 실력차가 크다. 아직 저변이 선진국들처럼 두껍지 못하다는 얘기다. 황규훈 육상연맹 전무는 “앞으로 3년 안에 한국 마스터스 마라톤도 급격히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이라며 “그 첫 신호탄은 내년 3월 2만5000명이 참가하는 서울국제마라톤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통적으로 봄 대회에서 좋은 기록이 나오는 데다 코스가 편평해 최상 조건이라는 것이다.
김화성 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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