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호랑이는 가죽을, 사람은 이름을, <font color=blue>김병일</fo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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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호랑이는 가죽을, 사람은 이름을 | |
기사입력 2016.06.10 15:59:06 | 최종수정 2016.06.10 16:44:59 |
`김성일 방` 안내문에는 "퇴계 이황의 학맥을 잇는 유학자이며, 나주목사로서 선정을 베푼 학봉 김성일의 정신을 기념하기 위한 방. …송사를 잘 해결하며 억울한 백성이 없도록 하여 칭송이 자자하였다. …현명한 김성일 목사 방에서 머무르는 모든 분들은 삶을 지혜롭게 사는 힘찬 기운을 얻어 출세가도를 달리게 되실 것이다"고 적혀 있었다. `유석증 방`에도 선정을 베풀어 사랑과 존경을 받은 유석증 목사(1570~1623)를 기념하는 문구가 아름다웠다. 이튿날 새벽 산책길에는 시내 한복판에 정수루(正綏樓)라는 이름의 2층 누각에 큰북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거기도 비슷한 안내문이 있었다. "정수루 큰북은 학봉 김성일이 나주목사로 재임하면서 설치하였다. …나주목사로 부임하면서 민정(民情)이 막힐까 두려워하여 북을 하나 내걸도록 하였다. `만약 원통한 일을 하소연하고 싶은 자는 반드시 와서 이 북을 쳐라` 하였다. 그러자 백성들이 의견이 있으면 반드시 진달해 일이 막히는 법이 없어 위아래가 서로 화합하니 온 고을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이 건물들과 큰북 그리고 안내문은 최근 나주시에서 복원하고 설치한 것이다. 그러나 기록된 내용은 수백 년 동안 나주 사람들의 가슴속 깊이 새겨져 있는, 그래서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훌륭한 목민관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 그리고 존경심 그 자체였다. 안동에 돌아와 학봉 종가 종손을 비롯한 문중 분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더니 후손들도 학봉 선생이 나주목사 재임 시 선정을 베풀고 서원을 창설해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나주시민과 행정당국이 건물을 복원하고 재조명한 것은 전혀 몰랐다. 나주시에서 종손에게도 알리지 않고 선양을 한 것이다. 얼마나 값지고 아름다운가? 조상을 빛내려고 애쓰는 후손들을 많이 보았다. 여유도 생긴 터에, 그래야만 자기들 위상이 오른다는 생각에서다. 이에 비춘다면 나주처럼 지역주민이 먼저 나서 오래전 먼 타향에 와서 선정을 베푼 분을 못 잊고 기리는 마음은 정말로 되살려야 할 미담이요, 모범사례다. 쉼 없이 터져나오는 전·현직 고위층의 비리와 부패사슬을 바라보면서 진정으로 존경받는 리더, 청렴한 지도자를 갈구하고 있는 우리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그러면 어떤 이름으로 남을 것인가? 옛날에도 그릇된 방식으로 이름을 남기려는 천박한 풍속이 있었다. 산천의 바위에 자기 이름을 새기게 해 자연을 훼손시켰던 일각의 풍습이 그런 경우다. 또 조선시대 가장 부패했던 19세기에 역설적으로 고을마다 선정비가 요란하게 세워졌으니 낯 뜨거운 행태요, 부끄러운 이름일 뿐이다. 돌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남기는 것보다 사람들 마음에 새겨 우러름을 받는 것이 진정으로 오래가는 명예임을 역사는 말해준다. 이제 지도층과 공직자의 청렴을 끌어내기 위해 `김영란법`도 시행된다. 그러나 법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부작용도 크다. 가장 확실한 길은 지도층과 공직자부터 자신의 이름이 국민과 후세에 아름답게 새겨질 수 있도록 참선비로 살아가는 것이다.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