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인 신달자씨가 지난 9월 말 펴낸 시집 '북촌'을 열어 보았다.
70편의 詩作 모두가 눈과 귀에 익었다.
우리가 뛰놀던 중앙학교 그것도 50년 전의
계동, 가회동, 삼청동의 옛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신달자 시인은 몇해전, 지금은 북촌이라 불려지는
계동골목의 인형과 같은 자그마한 한옥집으로 이사를 한 모양이다.
70대 중반의 대 시인은 지금은 홀로 살면서 우리 모두의 어렵던
그러나 아련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을 시에 담았다
이 중 2편만 올리겠습니다.
-계동 백년
계동은 골목으로 시작된다.
골목이라는 고소한 양념이 북촌을 특촌으로 만들어 내는데
이 골목 저 골목이 모두 역사의 현장이다.
어느 한 골목도 놓치면 안 되는 다정한 골목
그 골목 안에 역사의 부리부리한 눈이 있다.
1914년
계동이라는 명칭이 등록되었다.
계동에서
계동 아낙들이 왕이 세수를 한 궁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빨래를 하는
빨래터를 지나
다시
일제시대가 흐르고
한국전쟁이 흐르고 새마을 운동 산업화시대가 흐르고
알파고 시대가 왔다.
창덕궁 1길 대로변에는
몽양 여운형의 집터가 있다.
그 옆 보현빌딩은 1945년 해방 후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가 창립한 곳이다.
다시
중앙고등학교 계동 1번지
거기도 조국을 지키는 모임이 비통했다.
1919년 3.1운동은 중앙고보 숙직실에서 불붙었다.
바로 이웃인 유심터가 그랬고 계동이 나라 지킴으로 숨가빴다.
지금은 카페 천국이 돼 버렸지만
계동을 밟는 사람들은 계동의 피가 지금도 뜨거운 것을 안다.
지금도 스치면 불붙는 것을 안다.
계동 백 년은
한국의 푸른 피요 붉은 역사 아닌가?
-계동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10리도 못 가서 발병 나네
좁은 한옥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지개 펴며 목욕하는 목욕탕이 사라진다네
50년 40년 매일 다니던 목욕탕은 그냥 목욕탕이 아니네
하루를 살아 내는 의지며 위안이었네
할머니들이 서로 등 밀며 마음도 밀어 주던 남루한 목욕탕은
좀 가난한 친구였네
가난하지만 온몸을 녹여 주는 목욕탕이 사라지는 건
영감이 눈감는 만치나 서럽고 아쉽네
철물점이 사라진다네 딱하게 보이는 이발소도 곧 사라진다네
약국도 사라지고 없네
위태로운 세탁소는 그저 고마운 것이고
계동 골목까지 쳐들어오는 개발 붐이
중국 사람들의 관광 환호는 한국이 좀 커지기나 할 것인가
삼청동 환한 신록도 의심 찬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창덕궁 큰 나무들도 서로 어떻게 돼 가느냐고 물어보곤 한다
계동은 새 옷 입느라 분주하지만
무엇이 아쉬운 채로 입 다물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아침 골목에서 인사를 하네
계동은 서울이 아니라 계동이라고
불안하게 잠들고 의구심으로 눈뜨는
옹기종기 한옥들이 서로 부딪치며 의지하는 계동
야채왔엉요!!! 과일이 왔엉요오!!!
아침이면 트럭이 사람을 불러 모으는
시골 정서가 살아 있는 곳
겨울밤에는 차압살떠어억을 외치는 소리가 정겨운
계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날마다 사람들이 온몸으로 변화의 냄새를 맡는
계동 아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