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로버트 브라운 미국 태평양육군사령관은 한 토론회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을 생각하면 밤잠을 못 이룬다고 말했다. 우리가 얼마나 어려운 지정학적 여건에 살고 있는지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발언이었다.
그럼 먹고사는 것이 달린 경제학적 여건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를 흔히 '소규모 개방경제'라고 부른다. 영어의 'small open economy'를 번역한 것인데, 경제 규모는 작지만 시장 개방도가 높은 나라의 경제라는 뜻이다. '소규모'라는 것은 국토의 절대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규모가 작아서 '국제금융시장에서 형성된 금리를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소규모 개방경제는 태생적으로 외부 환경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의 어려움은 이런 제약에서 비롯된다. 수출입 총액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비율인 무역의존도는 세계적으로도 아주 높은 수준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00%를 웃돌기도 했으나 2015년에는 85% 수준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미국(28%)이나 일본(37%), 심지어 중국(41%)과 비교해 봐도 높다. 결국 우리는 무역을 잘하지 못하면 살아가기 어려운 국가인 것이다.
무역의존도를 낮추려면 내수를 늘려야 하는데 과다부채 등으로 가계의 소비 확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더 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하고 외국인도 많이 찾아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지난 설 연휴 기간 중 돈을 쓰기 위해 외국으로 나간 여행객이 사상 최대였다는 뉴스는 큰 걱정거리다. 엎친 데 덮친 격인 '청탁금지법' 시행은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많다. 고가(高價) 의료 서비스가 가능한 영리의료법인 설립도 의료 양극화에 대한 우려로 진척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10여년 유치에 공을 들였던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중국으로 넘어갔고 관광 명소에 설치하려던 케이블카가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소식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이렇듯 우리가 잘할 수 있고 고용 효과도 큰 서비스산업이 이해관계나 이념 갈등으로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내수가 이러면 수출로 많이 벌어들여야 하는데 무역 부문도 경고음을 낸 지 오래다. 수출과 수입을 합친 무역 규모가 1조달러를 넘어섰던 2011~2014년과 달리 2015년과 지난해에는 이를 밑돌았다.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의 선전으로 버티고 있지만 그간 우리 경제를 이끌어 왔던 자동차, 조선 등 많은 분야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이렇듯 대외관계가 중요한 우리나라에 새해 벽두부터 커다란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다. 사드 문제로 긴장 관계에 접어든 최대 무역국 중국은 한류, 관광 등 전방위적인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또 막 출범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그 자체로 엄청난 불확실성이 되어 우리는 물론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아울러 최장수 총리가 확실시되는 일본 아베 총리의 자국이익 우선정책은 특별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우리를 여러 면에서 더욱 힘들게 할 것이 분명하다. 미사일을 계속 쏘아 올리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불확실하다는 북한 정권은 빼놓고도 말이다.
여기에다 국내에서는 길어지는 국정 공백과 기업에 대한 조사 등으로 많은 전문가가 외환 위기 때보다 더 어려운 비상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지금은 우리 모두 환경 변화에 치밀하고 발 빠르게 대응할 때다. 진영 논리에 갇혀 우리가 처한 엄중한 상황을 잊는다면 쇄국정책을 고집하다 나라를 잃었던 구한말과 다를 게 없다. 우리끼리 적당히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소규모 개방경제'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 '경제초점'은 오늘부터 윤용로씨가 맡습니다. 한국외국어대 영어과 졸,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기업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