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중앙학교</font>와 분교(필경재)
본문
중앙학교와 필경재
“한편 본교의 교세를 떨치고 교육사업의 확충을 기하는 목적에서 본교외에 기호각군내에 지교설립을 권유하여 최초로 본회원 이윤종씨는 광주군 대왕면 수서리에 있는 자택에, 또 회원 이영우씨는 파주군 임진면 문산리에 각각 초등학교를 설립하고 본교의 지도를 받아 후진양성에 진력하였다.”(중앙80년사, 기호흥학회와 기호학교의 창설, 제20 쪽)
“내 외조부의 큰형님이신 이윤종 할아버지(고종의 비서승을 지냄)는 1910년 무렵 중앙학회의 분교를 지금의 수서에 있는 큰집 사랑채(지금은 고급 한정식집 ‘필경재’ 자리이다)에 자비로 개설해 인근의 젊은이들을 가르치셨는데...”(계우회보 121호, 중앙과 나, 이상혁, 제6쪽)
2006년 10월 17일(회) 공종원, 유광렬, 손창수 편집위원들이 위의 필경재를 찾아가서 종손인 이병무 씨를 만났습니다.
“한편 본교의 교세를 떨치고 교육사업의 확충을 기하는 목적에서 본교외에 기호각군내에 지교설립을 권유하여 최초로 본회원 이윤종씨는 광주군 대왕면 수서리에 있는 자택에, 또 회원 이영우씨는 파주군 임진면 문산리에 각각 초등학교를 설립하고 본교의 지도를 받아 후진양성에 진력하였다.”(중앙80년사, 기호흥학회와 기호학교의 창설, 제20 쪽)
“내 외조부의 큰형님이신 이윤종 할아버지(고종의 비서승을 지냄)는 1910년 무렵 중앙학회의 분교를 지금의 수서에 있는 큰집 사랑채(지금은 고급 한정식집 ‘필경재’ 자리이다)에 자비로 개설해 인근의 젊은이들을 가르치셨는데...”(계우회보 121호, 중앙과 나, 이상혁, 제6쪽)
2006년 10월 17일(회) 공종원, 유광렬, 손창수 편집위원들이 위의 필경재를 찾아가서 종손인 이병무 씨를 만났습니다.
댓글목록
중앙교우회는 개교 100년 사업의 일환으로 중앙100년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인용된 중앙80년사의 문산에 있었다는 분교에 대한 정보를 찾고 있습니다.
이윤종씨의 형제분이신 이광종선생,여동생이 저의 증조모가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