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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90회 작성일 2006-09-21 00:00
태국쿠테타를 보며 5.16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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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나라 정권도 망명꼴 날 수 있다"
활빈단, 주한태국대사관 앞 기자회견가져
[2006-09-21 19:00:41]인쇄
시민단체 활빈단(대표 홍정식)은 21일 오후 서울 한남동 주한태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도자의 부패로 터진 태국 쿠데타를 상기해 노무현 대통령도 남은 임기내내 부패와 비리없는 바른 정도선정(正道善政)을 펼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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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빈단은 쿠데타 병사들에게 방콕시민들이 꽃을 나눠주고 만세를 부르며 환영하는 것을 두고 "부패가 정치·사회 곳곳에 만연하고 국민들 편가르기, 품격잃은 언행, 낙하산인사, 국론분열을 일으킨다면 어느나라 정권도 탁신총리 망명꼴처럼 똑같은 몰락의 늪으로 빠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활빈단은 자유를 갈망하며 사선을 넘어 태국에 체제중 현지경찰에 체포된 탈북동포 180여 명에 대해 "태국 쿠데타 지도자 손티 분야랏글린 장군이 인도적 차원에서 우방국인 한국으로 송환 조치해 달라"고 요구했다.

[황현성 기자]hhsofdaum@hanmail.net

5.16군사혁명
 
1961년 5월 16일 소장 박정희의 주도로 육군사관학교 8기생 출신 군인들이 제 2공화국을 폭력적으로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군사정변이다. 5.16군사정변은 당시의 정치·사회적 문제와 군 내부의 문제라는 두 가지 배경을 갖는다. 5·16 군사 쿠데타의 근본원인은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 집권과 독재 및 자유당 정권의 부정 부패와 제2공화국의 무능에 있었다. 4·19의거 후 성립한 제2공화국의 민주당 정권은 4·19의거 전후의 정치적, 사회적 불안과 무질서를 안정시켜 반공, 국방, 안보 체제를 확립하여야 했으나, 집권 초부터 민주당 내 신. 구파가 파쟁을 일으켜 정치적 혼란을 가져오는 등 국민의 기대를 외면하고 말았다. 더욱이 크고 작은 시위가 잇달아 일어나 사회 혼란이 심화되었으나, 민주당 정부는 사회 질서를 유지할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6·25전쟁 이후 한국사회에서의 사회적 지위 신장과 더불어 권력에 대한 욕구가 충만 하던 군부 내에서는 육사 8기생을 중심으로 고급 장성의 부정부패와 승진의 적체현상을 공격하는 하극상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소장 박정희와 중령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8기생들은 1960년 9월 쿠데타를 모의하였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제2군 부사령관인 소장 박정희와 8기생 주도세력은 장교 250여 명 및 사병 3500여 명과 함께 한강을 건너 서울의 주요기관을 점령하였다.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여 전권을 장악하면서 군사혁명의 성공과 6개항의 혁명공약을 발표하였다.
군사정변은 초기에 난관에 부딪히지만, 미국 정부의 신속한 지지표명, 장면 내각의 총사퇴, 대통령 윤보선의 묵인 등에 의하여 성공하였다. 군사혁명위원회는 국가재건최고회의로 재편하여 3년 간의 군정통치에 착수하였다. 군정기간 중 군사혁명세력은 특수범죄(반혁명, 반국가행위)처벌법, 정치활동정화법 등 법적 조치를 통하여 정치적 반대세력과 군부 내의 반대파까지 제거하였다. 또한 핵심권력기구로서 중앙정보부,를 설치하고 민주공화당을 조직한 후 대통령제 복귀와 기본권 제한, 국회에 대한 견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개정을 시행하였다. 한편, 폭력배의 소탕, 밀수품의 단절, 농어촌 고리채의 정리, 부실 기업 및 사학의 정비 등 사회 모순과 구악을 과감히 제거하였으며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여 경제 자립을 꾀하였다. 그들이 국가 주도의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하나 군사문화의 사회확산, 군의 탈법적 정치 개입의 선례를 남겼으며, 민주적 정권교체의 지연, 산업화의 지역·계층 간 불균형 등의 부정적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1. 배경 (원인)

<사회적 측면>

①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과 독재, 그를 떠받들고 있는 자유당 정권의 부정 부패와 실정.
② 민주당 정권의 구태의연한 부패적 정치형태와 무능, 무기력성.
③ 격분화된 신구양파의 분열.
④ 사회적 혼란과 민생의 궁핍.
⑤ 국민들의 반공사상의 해이와 국가안보의 약화.
⑥ 정치적 혼란으로 인한 물가의 인상으로 어려워진 국민 생활.

<군부적 측면>
*군부적이란? (정부나 국민에 대하여 군인을 중심으로 하는 성격)
① 국군의 비약적 성장과 발전 및 그에 따른 군부세력의 비대.
② 국부내의 누적된 불신요소.
③ 4.19의거 후 군 내부의 부패요소에 대한 자가 숙정을 위한 정군 운동의 실패.

2. 목 적
① 통일운동으로 발전하는 급진적 학생운동과 혁신계의 활동 봉쇄.
② 이승만 이래의 친미 반공체제를 유지.
③ 국가 주도하의 계획경제를 통하여 자생력을 갖춘 한국자본주의의 재편을 기하려는 것.

3. 진행 과정

● 거사계획 (5.16에 관련된 사건들) ●

<5.8 계획>
▶ 60년대초 3.15 부정선거 음모 등의 실증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자 김종필 중령을 중심으로 군사혁명을 계획함.

부산지구의 군수기지사령관인 박정희 소장을 추대해 3.15선거의 귀추를 주시하다가 거사하기로 계획함.
⇒ 실패이유 - 4.19의거로 명분과 조건이 사라지자 스스로 거사를 단념.

<4.19 계획>
▶ 정부는 군에 대한 데모진압을 실시하였으므로 데모 발생시 군의 동원이 확실시 됨.
이들은 데모진압의 구실로 정부를 전복하고 정권을 장악할 계 획을 가지고 있었다.
⇒ 실패이유 - 학생 데모나 민중봉기가 발생하지 않았음.

<5.12 계획>
▶ '행정반'과 '작전반'으로 책임 부서를 재배치하고 거사 계획을 세움.
⇒ 실패이유 - 비밀이 누설되어 군 내부와 항간에 혁명모의의 풍설이 나돌음.

<5.16 계획>
▶ 비밀 누설로 인해 혁명모의자 색출 때문에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이들은 5.16거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구체적으로 작전계획을 해나감.

● 5.16혁명 과정 ●

1) 박정희 육군소장을 지도자로 하고 김종필 육군중령등이 혁명계획을 세움.
2) 혁명결행 불과 몇 시간을 앞두고 다시 비밀이 누설, 육군참모총장이 혁명 주동자의 체포를 명령함
(15일 10시40분 경).
3) 혁명군 체포에 나와있던 이광선 대령이 혁명주동 장교들의 설득으로 혁 명 대열에 참여.
4) 한강어구에 다다른 해병대, 공수단, 제23사단은 서울 진압을 저지하는 헌병들과의 총격전에서 승리.
서울 입성 성공(16일 오전 3시경).
5) 방송을 통해 6개 항목의 혁명 공약 발표(오전 5시 첫 방송).
<군사혁명위원회> 포고령으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오전 9 시).
정권인수 발표(오후 7시).
6) 유엔군 사령관 매그루더 대장의 군사혁명 반대 성명 발표.
7) 집권 책임자인 장 면 총리의 잠적 및 윤보선 대통령의 군사혁명의 필요성 인정과
매그루더 장군의 혁명 저지요구 거절(미국 정부도 기정 사실로 받아들임).
8) 장 면 총리가 내각 총 사퇴와 혁명위원회에의 정권이양을 의결, 윤보선 대통령도 혁명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협조를 호소함 (혁명이 공식적으로 확인).

● 혁명 공약●(군사혁명 위원회 조직)
①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할 것.
②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공고히 할 것.
③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청렴한 기품을 진작시킬 것.
④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 경제의 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
⑤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할 것.
⑥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군은 본연의 임무로 복귀할 것.
⇒ 5월 22일에는 군사 혁명위원회를 국가 재건 최고 회의로 이름을 바꾸고 모든 정당·사회단체를 해체시킴.

4. 결 과
⇒ 혁명정부는 군정을 펴고 과감하게 혼란했던 사회질서를 바로잡고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 1963년에 2년 7개월간의 군정을 끝내고 민정으로 돌아가게 되고 박정희 는 1963년 10월
3일에 실시한 총선거에서 제 5대 대통령으로 선출됨.
⇒ 뒤이어 제6,제7,제8,제9대 대통령에 선출됨으로써 '제 3공화국'이 탄생됨.

5. 평 가
① 정치참여가 제한된 전제정치를 유도함.
⇒ 전쟁과 독재의 폐해에 시달리던 저개발국가의 무질서 정치에 대처.
② 우리민족의 자립적 근대화의 ***점
⇒ 민족사적 일대전환의 계기 마련.
③ 국방·경제·문화면에서 많은 업적과 발전을 가져옴.
④ 군의 정치개입이라는 나쁜 선례와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를 뿌리 내리게 함.
⑤ 새로운 사회문제 발생
⇒ 인권탄압, 언론의 부자유, 빈부격차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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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10월26일 서거당일 박정희대통령의 생애 마지막 공식행사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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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시기주관조사 내용 및 결과
98. 7. 15조선일보, 한국갤럽 공동조사 정부수립 50주년 기념
「대한민국 50년의 50대 인물」조사에서
〈정치분야〉
· 1위 : 박정희 (66.9%)
· 2위 : 김 구 (26.3%)

※ 교수 50인이 뽑은「50대 인물」조사에서는
· 1위 : 김 구
· 2위 : 박정희
· 3위 : 정주영
98. 8. 16미국 시사주간지「타임지」조사「20C 아시아 인물 20걸」조사에서
·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박정희” 선정됨
※ 한국 1명 (박정희)
일본 6명, 중국 3명, 인도 3명 등
99. 10. 21 KBS 길중섭의 쟁점토론(ARS) 「박대통령 재평가」여론조사에서
  · 박정희 지지율 79.9%
99. 10. 25 ~11. 4 MBC 「박 전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6,040명중)
· 찬 성 : 3,482명 (57.6%)
· 반 대 : 2,317명 (38.4%)
· 잘 모르겠다 : 241명 (4.0%)
99. 11. 30뉴스피플, 한길리서치 공동조사「20세기 한국을 움직인 사람들」조사에서 (전문가 500인 대상)
※ 20세기 한국사회에 영향을 미친 인물 100명 선정
〈정치·사회분야〉
· 1위 : 박정희 (95.0%)
99. 12. 7월간중앙(12월호)「한국 최고 인물 10선」조사에서
· 1위 : 박정희 (50.3%)
· 2위 : 김 구 (16.8%)
99. 12월간조선(12월호)「금세기 대한민국 최고 인물은 누구일까」조사에서
· 1위 : 박정희 (52.1%)
· 2위 : 김 구 (16.6%)
· 3위 : 김대중 (10.7%)
99. 12. 3한겨레신문 20세기 20대 뉴스「한국의 인물」조사에서
· 1위 : 박정희
· 2위 : 김 구
· 3위 : 이승만
2001. 7월월간 신동아국민제안센터 보트코리아 공동조사

※ 7. 19 동아일보 보도
대통령 역할을 가장 잘한 대통령은? 전국 E.mail 조사 결과
(교수 13,314명 설문조사 )
· 1위 : 박정희 대통령(58.4%)
· 2위 : 김대중 〃(22.9%)
· 3위 : 김영삼 〃(7.2%)
· 4위 : 이승만 〃(3.5%)
· 5위 : 전두환 〃(3.3%)
2001.12.26국정홍보처

※ 2001. 12. 27 SBS 8시 뉴스
    2001. 12. 28 중앙일보, 연합뉴스 보도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 (성인 4,500명 대상 조사)
· 1위 : 박정희 (21,1%)
· 2위 : 세종대왕 (19,8%)
· 3위 : 이순신 (12,7%)
· 4위 : 김 구 (10,5%)
2002. 1. 23 ~ 2. 14월간조선(3월호) 「한국 역사상 최고의 인물」 인터넷 여론조사에서 (총 15,295명 대상)
· 1위 : 박정희 4,285명(28%)  
· 2위 : 광개토대왕 2,257명(14%)  
· 3위 : 세종대왕 1,93명 (11%)  
· 4위 : 이순신 1,303명 (8%)  
· 5위 : 김대중 807명 (5%)
2002. 2. 6월간중앙, “폴앤폴” 공동조사「역대 대통령 국정운영 능력 평가」 조사에서  
· 종합 평점 최고 : 박정희
※ 거의 모든 항목에서 압도적 최고평가

1. 국민을 위한 정치평가
· 1위 : 박정희 (56.0%)
· 2위 : 김대중 (20.0%)

2. 국정 운영능력 평가

· 1위 : 박정희 (55.4%)
· 2위 : 김대중 (15.7%)

3. 국민에게 희망을 준 대통령
· 1위 : 박정희 (60.6%)
· 2위 : 김대중 (18.4%)

4. 경제정책 평가
· 1위 : 박정희 (62.0%)
· 2위 : 김대중 (15.6%)

5. 역사발전에 대한 긍정적 기여  
· 1위 : 박정희 (52.3%)  
· 2위 : 김대중 (20.2%)

6. 가장 책임감 있는 대통령  
· 1위 : 박정희 (54.7%)  
· 2위 : 김대중 (18.9%)

7. 과감한 의사결정
· 1위 : 박정희 (54.5%)  
· 2위 : 김대중 (14.5%)

8. 인재기용 평가
 
· 1위 : 박정희 (30.1%)  
· 2위 : 김대중 (17.4%)

9. 남북관계 개선 평가  
· 1위 : 김대중 (64.4%)
· 2위 : 김영삼 (8.2%)
· 3위 : 박정희 (6.5%)

10. 국민의견을 존중한 대통령  
· 1위 : 김대중 (37.2%)  
· 2위 : 박정희 (11.9%)

11. 민주주의에 기여한 대통령  
· 1위 : 김대중 (36.5%)
· 2위 : 박정희 (13.5%)
2002. 2. 18월간중앙과 폴앤폴 공동조사

※ 2/18 연합뉴스 보도
1. 전현직 대통령이 올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경우 당선자
· 1위 : 박정희 (46.4%)

·
2위 : 김대중 (16.7%)
· 3위 : 전두환(9.6%)

2. 차 한잔 마시며 대화하고 싶은 친근감 있는 대통령

· 1위 : 박정희(37%)
· 2위 : 김대중(26.9%)
·
3위 : 전두환(7.9%)

3. 대통령 정책평가

· 박정희
  : 위민(爲民)정치, 국정운영 능력, 경제정책, 과감한 의사결정 분야에서 각각 1위
· 김대중

  : 남북관계 개선, 국민의견 존중, 민주주의 기여도에서 각각 1위
2002. 6. 27 ~ 7. 9한국갤럽

※ 2003. 8. 14 연합뉴스 보도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여론 조사
(전국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 1,500명 대상)

· 1위 : 박정희(20.1%)

· 2위 : 세종대왕(16.0%)
· 3위 : 이순신(15.3%)
·
4위 : 김 구(7.9%)
· 5위 : 유관순(2.5%)
2002. 8. 26 ~ 27 한국 대통령 평가위원회
(위원장 : 박동서)

※ 조선일보 보도
역대대통령 평가조사 결과
(해당분야 전문학자 320명)

1. 업무수행능력
· 1위 : 박정희(63.56%)
· 2위 : 김대중(58.64%)
· 3위 : 김영삼(50.96%)
· 4위 : 이승만(49.40%)
· 5위 : 전두환(49.30%)

2. 업적수행분야
· 1위 : 박정희(66.58%)
· 2위 : 김대중(65.08%)
· 3위 : 전두환(56.72%)
· 4위 : 김영삼(55.16%)
· 5위 : 노태우(52.84%)

3. 자질분야
· 1위 : 박정희(62.7%)
· 2위 : 김대중(58.45%)
· 3위 : 이승만(56.95%)
· 4위 : 김영삼(56.04%)
· 5위 : 전두환(51.90%)
2002. 10월서울대 교내신문 “대학신문”

※ 10. 14 연합뉴스 보도
역대 최고의 대통령은 누구인가?
(재학생 1,687명 대상 조사)

· 1위 : 박정희(46.0%)
· 2위 : 김대중
· 3위 : 이승만
2003. 2. 15코리아 리서치

※ 2. 16 연합뉴스 보도
현정부를 포함하여 어느 정부가 잘 했느냐 ? 조사에서
(전국 성인 남녀 1,037명 대상 조사)

· 1위 : 박정희 정부(51.1%)
· 2위 : 김대중 〃 (21.5%)
· 3위 : 전두환; 〃 (9.5%)
· 4위 : 김영삼 〃 (2.0%)
· 5위 : 노태우 〃 (0.5%)
2003. 7월 월간 현대경영 조사
(8월호 게재)

※ 2003. 7. 29 연합 뉴스 보도
국내 100대 기업 비서들이 본 CEO 인물 및 조건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61개 사 82명 참가)

1. 국가CEO 중 가장 존경하고 모시고 싶은 인물

· 1위 : 박정희 대통령 (68 %)
· 2위 : 김대중 〃 (18 %)
· 3위 : 노무현 〃 (10 %)

2 . CEO 중 가장 존경하고 모시고 싶은 인물
· 1위 : 이건희 (삼성회장)
※ CEO의 최대 조건 : 선견지명과 결단력
2003. 9. 22 ~ 11. 14 월간조선 5천년 한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 (총 3,937명 참가)

· 박 정 희 : 1,943명 (49.4%)
· 세종대왕 : 393명 (10.0%)
· 광개토대왕 : 290명 (7.4%)
· 이 순 신 : 229명 (5.8%)
· 단 군 : 129명 (3.3%)
2003. 11. 3 ~ 8 동아일보, 아이클릭 공동조사

※ 03. 11. 13 동아일보 보도
가장 마음에 드는 대통령?
(6대도시 30, 40대 남성 500명 대상 조사)

· 1위 : 박정희 (51.4 %)
· 2위 : 없 음 (20.6 %)
· 3위 : 노무현 (15.6 %)
· 4위 : 김대중 ( 6.4 %)
· 5위 : 전두환 ( 4.2 %)
2004. 01. 07 ~ 25 영화채널 ‘캐치온’과 영화전문 사이트 ‘엔키노’ 조사

※ 04. 02. 04 연합뉴스 보도
역대 대통령 중 누가 정치를 잘 했으냐?
(네티즌 5,883명)

· 1위 : 박정희 대통령(56.7%)
· 2위 : 김대중 대통령(29.0%)
· 3위 : 이승만 대통령(3.8%)
· 4위 : 윤보선, 전두환 대통령(3.3%)
· 5위 : 최규하 대통령(1.8%)
· 6위 : 김영삼 대통령(1.3%)
· 7위 : 노태우 대통령(0.8%)
2004. 2. 24 am7과 (주)아이클릭

※ 04. 2. 26 am7 보도
현재 대통령을 포함하여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대통령
(전국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

· 1위 : 박정희(41.7%)
· 2위 : 없음(28.9%)
· 3위 : 노무현(12.3%)
· 4위 : 김대중(11.1%)
· 5위 : 전두환(2.7%)
· 6위 : 이승만(1.2%)
· 7위 : 김영삼(0.9%)
2004. 3. 22 조선일보 산업부

※ 04. 3. 23 조선일보 보도
역대 정부 중 가장 기업하기 좋았던 시절은?
(조사 대상 : 이구택 포스코 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준 LG필립스LCD 부회장, 변대규 휴맥스 사장 등 국내 제조업, 금융업, 벤처업계의 대표적인 CEO 55명)

· 1위 : 박정희 대통령 시절(52.7%)
2004. 5. 8MBC-TV 「생방송 대한민국은 통화 중」 가장 효자였을 것 같은 역대 대통령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설문조사 (참여 인원 35,220명)

· 1위 : 박정희 12,276명(34.8%)
· 2위 : 김대중 9,425명(26.8%)
· 3위 : 김영삼 4,566명(13%)
· 4위 : 이승만 3,561명(10.1%)
· 5위 : 노태우 2,860명(8.1%)
· 6위 : 전두환 2,532명(7.2%)
2004. 5. 16한겨레신문
※ 2004. 5. 16 한겨레신문 홈페이지 보도
가장 좋아하는 국가지도자는?

· 1위 : 박정희 (50.0%)
· 2위 : 김구(12.3%)
· 3위 : 노무현(11.6%)
· 4위 : 김대중(8.6%)
· 5위 : 권영길(1.3%)
2004. 5. 21 ~5. 24MBC-TV
※ 2004. 5. 25 MBC-TV 홈페이지, 문화일보(5. 29) 등
이 시대 각 분야별 영웅은?
(응답자 : 네티즌 1,825명)

정치 분야

· 1위 : 박정희 888명(49%)
· 2위 : 노무현 443명(24%)
· 3위 : 김대중 388명(21%)
2004. 5. 13 ~5. 29 한국갤럽
※ 2004. 6. 17 조선일보 보도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은?
(15세 이상 1,728명 참여)

· 1위 : 박정희 前 대통령(47.9%)
· 2위 : 김대중 前 대통령(14.3%)
· 3위 : 노무현 대통령(6.7%)
· 4위 : 전두환 前 대통령(1.7%)
· 5위 : 이승만 前 대통령(1.0%)
· 6위 : 김영산 前 대통령(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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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 : John Barry의 The John Dunbar Theme]



    ▼ 육사 교장의 편지 전문

0205_kim.gif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 들이여!
여러분들은 5,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뒤에는
지난날 5,60대들의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해서 부쳐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이라고 불리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코리안 광부 만세!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 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 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 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 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 역만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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