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中) 댓글 0건 조회 631회 작성일 2006-07-31 00:00 <marquee scrollamount=1><IMG src="http://www.podopia.com… 본문 중앙 동문들에게여기 지난 4월 18일에 지인들과 같이 가서 찍은재동의 백송사진을 편집해서 올립니다.느긋하게 커피 한잔 하면서...읽어보기 바랍니다.45회 공준수로부터 燕巖 朴趾源((1737-1805) - 30歲에 實學者 洪大容에게 地球의 自轉說을 비롯한 서양의 신학문을 배우고 1780(정종4) 進賀使(朝鮮時代에 中國 皇室의 慶事가있을 境遇 派遣하던 使臣) 朴明源을 따라 淸나라에 갔다가 實學에 뜻을 두었다.北學派의 영수로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했다.1636-7年 丙子胡亂 때 女眞族인 누르하치가 세운 後金의 2대 淸나라 太宗에게 屈辱的인 降伏을 하고서도 淸나라를 오랑캐가 세운 나라라고 輕蔑하고 儒敎思想이 팽배해 明나라를 崇尙하던 朝廷의 對淸外交를 非難하고 正宗(1777-1800) 때 淸나라의 新文物을 紹介한 熱河日記를 비롯한 10권의 漢文諧謔小說을 써서 無能한 爲政者들을 諷刺했던 改革派.參考: 熱河省 - 中國 東北部에 있는 漢族과 蒙古族이 混居하는 省으로 1955年에 河北省 遼寧省으로 分割되어 내몽고자치구로 編入되었음.熱河 - 옛 淸의 首都 承德의 옛 이름承德 - 熱河省에 있는 都市로 淸朝의 避暑山莊인 熱河異宮이 있다.朴珪壽(1807-1876) - 박지원의 손자, 1866년(고종3년) 평안도 관찰사로 있을 때 미국 상선 The General Sherman호가 대동강에서 행패하므로 이를 불질러버렸다. 그랬음에도 불고하고 고종에게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자며 개혁을 주장한 改革派.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개혁파 朴珪壽의 집터에 齋洞白松이 있고그 앞에 憲法裁判所가 자리하고 있다. **"My New Age Music Collection"** 재동의 백송 앞에서2006년 4월 18일헌법재판소(옛 창덕 여고 자리) 헌법재판소 북쪽 박규수 집터의 백송박규수 생가터 표지석 - 조선조 말에 근대화를 주장한 우의정이였다고 표기되어있다.백송의 유래 표지석 - 원산지는 중국의 북경이며 우리나라 사신이 씨를 가져다심었을 거라고 한다. 수정 삭제 신고 목록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