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레바논과 폴 앵커, <font color=blue>이승철(66회) </font>-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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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레바논과 폴 앵커 | |||
입력: 2006년 07월 18일 18:11:53 | |||
‘나는 너무 어리고 당신은 너무 늙어서’(I’m so young and you’re so old) 수년 전 취재과정에서 폴 앵커가 레바논계라는 사실을 알고부터 ‘레바논’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저절로 이 곡조가 떠오른다. 레바논인들의 복잡하고도 슬픈 역사가 이 노래의 분위기와 너무나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아랍계인 레바논인들의 슬픈 역사는 19세기 중반 식민지 확보에 혈안이던 프랑스가 오스만 튀르크 치하의 이 지역에 들어오면서 비롯됐다. 프랑스는 지역의 마론파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세력이 커지자 반작용이 일어났다. 아랍인들의 민족감정에 불을 댕기면서 모슬렘들이 힘을 얻은 반면 기독교인들은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됐다. 이때부터 20세기초까지 많은 레바논의 기독교인들이 미국이나 캐나다로 탈출했다. 폴 앵커, 소비자 운동의 선구자 랠프 네이더,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 등의 선조들이 미국으로 넘어간 시기도 이 무렵이다. 1차 대전에서 오스만 튀르크가 패하면서 레바논인들의 역사는 더욱 비참해졌다. 영국과 프랑스는 종교의 차이나 민족감정 등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유일한 관심사인 석유만을 고려해 중동지역을 나눠 가졌다. 프랑스는 다양한 종파의 기독교인들과 모슬렘들이 섞여 있었지만 이 지역을 하나로 묶어 ‘대 레바논’이라고 명명했다. 오늘날 레바논이 겪고 있는 비극이 이미 그때 잉태된 것이다. 레바논 위기가 다시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지만 근원적 책임이 있는 국가들은 G8 정상회담에서 남의 말 하듯 하고 있다. 폴 앵커의 목소리가 오늘 따라 더욱 애잔하게 귓전에 울린다. 〈이승철 논설위원〉 |
댓글목록
20세기는 서양세력들에 의한 비 서양세력의 착취기? 21세기는 서양(기독)의 반성기가 되야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