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5월30일, 趙南浩(조남호·69) 서초구청장의 일과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관내를 둘러본 후 청사에 출근했고, 오전 업무를 마친 후 외부 손님을 청사 구내식당에서 만나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지난 12년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청사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 한다. 서초구청 구내식당의 한 끼 식대는, 직원은 1000원이고 외부인은 2500원이다. 구내식당 이용을 고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입에 비해서 무리한 식사를 하다 보면 간혹 민원인들에게 손을 벌리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대 民選(민선) 구청장으로 부임했을 때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사람은 여직원들과 「힘없는 부서」의 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 趙구청장의 구내식당 이용은 이런 상황을 반전시켰다. 그가 벌인 「부패와의 전쟁」은 작은 곳에서 시작됐다.
그는 공직생활 40여 년 가운데 15년을 서초구와 인연을 맺었다. 1988년 서초구 창설준비단장으로 「서초구」를 만들어 냈다. 民選 서초구청장을 세 번 지내면서 그는 우면산 환경보호를 위한 우면산 트러스트 운동, 장애인 전용 치과·야간치료센터 개설, 자원봉사 통장제 도입, 가정간호센터 운영, 금요음악회 등 「히트상품」을 양산했다. 장애인 전용 치과 개설 사업은 서울시에서 벤치마킹했다.
서초구는 1996년 조선일보와 현대경제사회연구원에서 실시한 지방자치단체 평가에서 「전국에서 가장 살기 편한 구」로 선정됐고, 한국공공자치연구원이 주최한 「2005 자치행정혁신 전국대회」 환경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趙구청장은 5·31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못했다. 3選연임 금지 조항에 걸렸기 때문이다. 趙구청장은 헌법재판소에 3選연임 금지 조항이 위헌이라며 위헌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그는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 온 서초노인요양원 건립의 끝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아쉬워했다.
첫 직업은 KBS PD 지난 5월30일 오후 서초구청장실에서 훤칠한 키의 趙南浩 구청장을 만났다.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서인지 사무실이 다소 어수선해 보였다.
趙구청장은 첫 직업은 KBS 프로듀서였다. 1960년대 초반 임택근 아나운서가 진행해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 「퀴즈열차」의 연출자가 바로 趙구청장이다. 고려大 법대 졸업 후 고시를 준비하다가 방송사 프로듀서직 시험을 치르게 됐다고 한다.
―방송 인기 프로그램의 프로듀서였던 분이 어떻게 하다가 공직자의 길을 가게 됐습니까.
『제가 방송사에 합격하고 첫 출근하는 날이 5·16이 일어난 1961년 5월16일이었어요. 5·16이 일어난 것도 모르고 당시 남산에 있는 KBS로 출근을 하는데 회사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쫓겨났어요. 「한 달 후에 출근하라」고 연락이 오데요. 합격자들을 조사했는데 소위 「백」으로 합격한 게 아니라는 게 밝혀졌나 봐요.
정권교체가 되면서 회사 고참들이 다 회사를 떠나게 되니까 제가 가끔 최고위원회에 가는 일이 생겼어요. 최고위원회에 학교 선배가 계셨는데 「서울시장실에서 공보비서가 필요하다」며 저보고 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잠깐 가서 일한다는 것이 1년 반이 지났어요. 방송으로 복귀하려는데 여러 가지 사정이 발생했어요. 그래서 「이곳(공직)이 내가 숙명적으로 있을 곳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갖게 된 게 지금까지 이어진 거죠』
우연히, 그러나 숙명적으로 공직자의 길에 들어선 趙구청장은 民選 구청장이 되기 전 서울시 공보관, 보건사회국장, 환경녹지국장, 마포구·동작구·성동구·서초구에서 임명직 구청장을 지냈다.
친절·신속·정직 ―民選과 官選 구청장을 다 해보셨는데 장단점을 비교해 주시죠.
『官選 때는 임기가 보통 1년에서 1년 반이었어요. 신임 구청장으로서 구상했던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죠. 일을 하러 구청장으로 오는 게 아니라 사람 사귀러 오는 거예요.
民選 구청장은 자기 나름대로 창의적인 계획을 세워 사업을 추진해 나갈 수 있어요. 임명권자가 서초구의 40만 주민이기 때문에 그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하고, 그 욕구를 채워 주는 행정을 펼쳐 나가야 하죠. 말로만이 아닌 진짜 爲民(위민) 행정을 하게 되는 거죠. 장기적 안목과 소신을 갖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이 民選 자치단체장의 장점이죠』
―지방자치제가 자리를 잡아 가고 있고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그렇죠』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제가 民選 구청장으로 취임하면서 제일 먼저 내건 구호가 공무원들의 백화점 직원 같은 친절이었어요. 과거와 비교해 우리 서초구뿐만 아니라 다른 자치단체들도 공무원들의 친절성과 신속성, 정직성 이 세 가지가 긍정적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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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경 KBS PD 근무 시절 동료들과 함께. 셋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趙南浩 구청장, 둘째 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부인 윤병태씨. |
기초단체장 정당 공천은 부정부패의 연결고리 ―民選 구청장을 세 번 연임한 분으로서 자치단체장이 갖추어야 기본적인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눈을 감으면 자기 관할 구역의 골목골목이 레이더망처럼 펼쳐질 정도로 발로 뛰고, 주민들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죠. 지휘관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유능한 참모가 필요합니다. 참신한 아이디어, 물불을 안 가리는 추진력과 책임감이 있어야 하지만 유능한 공무원의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유능하고 실력 있는 참모를 발탁하고 중용해야 합니다』
―광역단체장은 몰라도 기초단체장까지 정당에서 공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경험해 보니까 기초자치단체장의 경우는 정당 공천이 불필요해요. 다만 정당 표시제는 할 필요가 있어요. 유권자들이 출마자의 성향이 「左」인지 「右」인지는 알아야 하니까요. 정당이 공천권을 쥐고 있으니까 출마자가 실력이 조금 달리면 국회의원의 눈치를 보죠.
예를 들어서 「이거 형질 변경 좀 해줘라」 하면 거절하기가 어려워지죠. 국회의원 눈 밖에 나면 공천받기 어려워지니까. 정당 공천제는 부정부패의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다고 봐요. 저는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한나라당 당원이기는 하지만 한나라당 소속이 아닌 「서초당」 소속이라는 생각으로 일해 왔어요』
―정당 표시제를 한다면 후보가 난립할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까.
『같은 당에서 여러 명의 후보가 나온다고 해서 당락을 좌우할 정도로 표가 갈릴 것으로 보지는 않아요. 아주 평범한 진리이지만 경험상 저는 「일하는 구청장만이 또 선택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어요』
―서울시장 출마설이 있었는데 왜 접으셨습니까.
『아뇨, 오해예요. 강남구와 서초구 주민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자존심 싸움이 있어요. 서로가 최고라는 거죠. 서울시장 출마 문제는 거기서 파생된 이야기였어요. 강남구청장이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니까 우리 지역 주민들이 「강남구청장도 서울시장에 나온다는데 서초구청장도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말들이 와전된 거예요』
趙南浩 구청장은 지난 2월 자신의 공직생활 소회를 담은 「당신이 있어 세상은 더 아름답습니다」는 에세이집을 냈다.
우면산 트러스트 운동으로 32억 모금 |
2003년 5월 서초구內 각계인사들과 함께 우면산 트러스트 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趙南浩 구청장(맨 오른쪽). |
―서울시장에 출마하려고 책을 내신 거 아닙니까.
『전혀 아니에요. 3選 구청장으로서 임기 마지막 해를 맞으면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며 내 느낌과 생각들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펴낸 겁니다』
―구청장으로 재직하면서 장애인 전용 치과 개설, 양재천 수질 개선 등 많은 사업들을 성공시켰는데, 사업추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뭐였습니까.
『제가 한 사업들은 대개 아이디어 사업이었어요. 아이디어 사업을 하려면 첫째는 우리 직원이 이해를 해야 하는데, 직원들은 편한 게 좋죠. 일을 굳이 벌이려고 안 하는 게 속성이죠. 그래서 직원을 설득하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었는데, 직원이 「오케이」라고 사인을 하면 그건 순풍에 돛단배식으로 사업이 추진됩니다』
―제일 힘들었던 사업은 뭐였습니까.
『우면산 트러스트 운동이었어요. 우면산 도시자연공원 조성을 위해 民官 합동으로 「땅 한 평 사기 운동」을 벌이는 거였는데, 총면적 155만 평 가운데 88%인 136만 평이 사유지였어요. 자연히 개발 요구가 잇따랐죠.
자연을 보호하고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서초구민 1인 1계좌 갖기 운동」, 「환경음악회 개최」 등을 통해 지금까지 2만여 명이 참여했고 서초구청이 출연한 17억원을 포함해 32억여원을 모금했어요.
첫 결실로 운동 시작 3년 만인 지난 3월 1차 우선 매입 대상지인 우면산 초입 토지를 소유주인 GS칼텍스와의 협상 끝에 토지매매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운동은 6월2일 「서울사랑시민상 환경부문」 본상을 수상합니다』
서초구는 관내인 청계산에 서울시가 조성하려던 원지동 추모공원을 놓고 마찰을 빚어 왔다. 원지동 추모공원은 납골당과 화장장 등의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원지동 추모공원 조성은 어떻게 돼 가고 있습니까.
『잠복기에 들어가 있어요. 제가 서울 시장을 한다면 그런 어리석은 일은 안 합니다. 추모공원을 조성하려는 위치를 직접 가서 보면 알게 됩니다. 그 아름다운 청계산 한복판에 화장장을 건립하겠다는 건 말이 안 돼요』
―그거야말로 지역이기주의 아닙니까.
『아니죠. 직접 가서 현장을 보세요. 제가 화장장 건립을 반대할 때 외국의 힘도 빌렸어요. 제가 그곳에 파리 대학 교수 두 분을 모시고 가서 현장을 보여 주었어요. 그때가 봄철이었는데 그중 한 교수가 대뜸 「야, 샹젤리제에 납골당을 만들어야겠구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곳에서는 구청을 市라고 보는데, 이렇게 대답하는 거예요.
「市에서 5분도 안 걸리는 곳에 이렇게 명산이 있는 줄 몰랐다. 이거 국립공원 아니냐. 우리 프랑스에서 이렇게 좋은 국립공원을 하나 만들려면 몇 조가 들어가야 한다. 이런 걸 훼손한다는 것은 행정의 순서를 모르는 것 아니냐」는 거예요. 물론 청계산이 국립공원은 아니지만 그 말을 듣고 저는 「아, 이게 지역이기주의는 아니구나」 하는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民選 구청장으로서 여러 가지 일을 하셨는데 「이런 사업은 정말 잘한 일이다」고 생각하는 사업 세 가지만 말씀해 주시죠.
『참 어려운 얘긴데요(웃음), 첫째로 꼽는다면 우면산 트러스트 운동입니다. 정부나 관공서는 개발 위주 정책으로 인해 자연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 운동은 그와는 반대되는 정책이었는데 주민들의 호응이 높았죠.
둘째는 중복 장애인 특수학교인 다니엘학교를 서초구로 유치한 일이에요. 보통 그런 시설은 기피하게 마련인데 해당 지역의 주민들을 설득해서 유치한 건 보람 있는 일이었어요. 서초구민의 더불어 살고자 하는 높은 시민의식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는 13년째 해오고 있는 「금요음악회」라는 거죠. 주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해 주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기도와 설득으로 이룬 장애인 특수학교 이전 다니엘학교의 서초구 유치는 趙구청장이 가장 곤욕을 치른 사업이었다.
다니엘학교는 원래 성동구 관내인 워커힐 호텔 부근에 있었다. 趙구청장이 취임한 후 다니엘학교는 서초구 관내인 헌인마을에 땅을 구입해 이전하려고 했지만 주민들의 반대가 거셌다. 헌인마을은 당시 「한센씨병」 환자들이 주로 살았다.
趙구청장은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주민 200명 중에 단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다니엘학교 이전을 허가하지 않겠다. 다만 다섯 명 또는 열 명씩 짝을 지어서 다니엘학교를 직접 가서 보고 마지막 200번째 주민이 「예스」를 하거나 「노」 하면 그 결과를 따르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다니엘학교 학부모들이 찾아와 『어떻게 반대하는 주민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겠느냐』며 항의했다. 趙구청장은 『하나님을 믿는 분이 있다면 기도하십시오. 지금은 그 길밖에 없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趙구청장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헌인마을 주민들에게 설득을 계속했다.
워커힐 부근에 있던 다니엘학교를 견학한 헌인마을의 마지막 주민팀들이 서초구청을 찾아왔다. 헌인마을 주민 전원 찬성이었다. 다니엘학교 준공식에서 헌인마을 주민대표는 이런 축사를 했다고 한다.
『우리보다 더 불쌍한 여러분이 우리 품안에 들어왔으니까 우리 한번 잘 살아봅시다』
측은지심에 호소한 趙구청장의 설득이 성공한 것이다.
장애인 전용 치과로 「가톨릭 봉사대상」 |
2000년 10월 訪韓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
趙南浩 구청장은 가톨릭大 대학원에서 사회복지정책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초구의 사업 가운데 「청각장애 아동 소리찾아주기 운동」, 「장애인 전용 치과 개설」, 「가정간호센터 개원」 등 복지 관련 사업이 유독 많다. 趙구청장의 관심이 반영된 사업들이다.
치과의사들이 장애인을 치료할 경우 일반인에 비해 몇 배의 힘이 들기 때문에 장애인 치료를 기피한다고 한다. 5분이나 10분이면 충분한 치료가 장애인의 경우는 2시간 이상 소요되는 일이 적잖기 때문이다. 일반 치과에 비해 특수 시설도 필요하고 인력도 더 들어간다고 한다.
1996년에 문을 연 「서초구 장애인 전용 치과」는 치아가 썩어 들어가 수십 년간 음식맛을 알지 못한다는 한 장애인 부모의 호소에서 시작됐다. 자원봉사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서초구 장애인 전용 치과는 그동안 전국 각지에서 1만4000여 명이 다녀갔다. 2005년에는 「가톨릭 봉사대상」을 수상했다. 이 장애인 전용 치과의 성공은 서울시가 성동구에 장애인 치과를 설립하는 계기가 됐다.
―임기를 마치면서 아쉬운 점은 없습니까.
『제가 이건 꼭 마치고 물러나려고 했는데, 치매환자 등을 위한 노인센터 건립 문제예요. 그게 아쉽네요』
―후임 구청장이 계속 이어 주었으면 하는 사업은 어떤 게 있습니까.
『통장들 자원봉사제도예요. 통장들에게 수당을 안 주고 모으면 연간 30억원을 모을 수 있어요. 그 돈을 각종 복지사업에 투입할 수 있는 거죠. 「금요음악회」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고요.
또 하나는 구내식당을 계속 활성화했으면 해요. 저는 「공무원들이 청렴하려면 외식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외식 빈도는 청렴성과 반비례하는 거예요』
1999년 전국에서 최초로 서초구청이 실시한 통·반장 자원봉사제도는 선거 때마다 상대 후보들이 趙구청장을 공격하는 소재였다. 『趙南浩 구청장은 나쁜 사람이다. 법에 통장들에 대한 수당을 주게 돼 있는데 그 돈을 안 주고 있다. 내가 당선되면 지급하겠다』는 게 공격의 요지였다.
이 자원봉사제도를 통해 서초구청은 지난 7년간 123억원의 예산을 절약, 유스센터 두 곳을 서초동과 방배동에 건립했다. 이 유스센터 입구에는 「이 시설은 서초구 통장들의 자원봉사로 절약된 예산으로 건립된 건물입니다」 하는 문구와 함께 자원봉사자와 통장 1285명의 이름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통·반장 자원봉사제 |
반포체육공원 공사현장의 趙구청장. |
―그래도 일부 통장들의 반발이 있을 법한데요.
『그렇지 않아요. 서초구민들 대다수가 중산층으로 안정적인 주거여건과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주민들 스스로가 자원봉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지역적 여건이 우리 서초구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죠』
―골프는 왜 안 치십니까.
『예전에는 쳤는데 구청장이 되면서 그만뒀어요. 청장이 골프를 치면 저 아래 8급, 9급 공무원들도 골프를 치게 돼요. 구내식당 이용 문제와 마찬가지로 분에 넘치는 소비와 오락은 부패를 불러오게 돼 있어요. 서초구청의 국장급 이상 인선 기준은 첫째 골프를 안 칠 것, 둘째 포커를 하지 말 것, 셋째 사우나를 가지 말 것, 넷째는 직원들 데리고 술집에 가지 말 것이에요. 저는 이런 것들이 공직사회 만병의 근원이라고 보거든요』
―구청장님은 행정가 출신의 자치단체장입니다. 요즘의 우리 사회는 CEO형 단체장을 원하는 추세입니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보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저를 「행정력을 경영철학에 접목시킨 CEO형 행정가」라고 하더군요. 자치단체장의 요건으로서 흔히들 원하는 CEO라는 개념은 대개 사업가 출신만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사업가 출신이더라도 최소한 남의 밑에서 월급을 타본 사람이어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행정의 흐름을 빨리 알 수 있죠. 저는 예산만 넉넉하다면 행정가형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봐요. 행정에 뛰어난 사람은 경영 측면에 대해서 금방 눈을 뜨게 돼요. 물론 가장 좋은 것은 행정형과 CEO형이 잘 결합된 인물을 뽑는 거겠죠』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거죠. 지금 우리 사회는 「콩으로 메주를 쑨 대도 안 믿는」 사회가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분의 말씀을 따를 수 있는 존경스러운 사람이 없는 거예요』
『강남사람들을 마피아 단원으로 본다』 ―盧武鉉(노무현)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화두처럼 내세우고 있습니다.
『저는 「양극화」라고 하는 말 자체가 국민을 양분화하고 있다고 봐요. 중간층이 많아야 좋은 나라인데, 양극화라는 말은 중간은 없애고 이쪽에 붙느냐, 저쪽에 붙느냐만 강요하고 있어요』
―양극화 문제제기의 기제로 사용되는 것 중에 하나가 서초를 포함한 강남 지역의 부동산 문제인 것 같습니다. 「버블세븐」 지역이라든가, 「세금폭탄」이라든가, 하는 감정적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강남지역의 구청장으로서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엊그제 투기지역에서는 주택구입자금 출처를 신고해야 한다는 발표를 보고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초·강남의 극히 소수 사람 때문에 전체를 마약 장사나, 마피아 단원으로 보는 거나 다름없죠. 하여튼 강남·서초에 세금 폭탄을 터뜨리고 부동산을 그런 식으로 잡는다고 하는 것은 모든 선량한 국민들을 범죄자로 보는 거나 다름없어요』
―부동산 시장이 정부가 뜻하는 대로 잡히리라고 보십니까.
『그게 잡히겠어요?』
―구청장님의 집값은 많이 올랐습니까.
『지역 특성상 서초구청장은 청교도 적인 길을 가야 해요. 집 늘렸다 하면 끝나는 거예요. 다행히 저는 어떻게 운이 없는지 샀다 하면 내려요(웃음)』
―이번에 쉬시고 다음 구청장 선거에 또 나오실 겁니까.
『한 번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돌릴 수 있나요. 이젠 저보다 잘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쳐야 하고, 모자라면 제 경험 같은 걸 던져 주는 그런 사회가 돼야겠죠. 드골 장군이 복귀한다고 하면 그런 나라는 불행한 나라죠』
―독특한 아이디어가 많은데, 사업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습니까.
『첫째는 신문을 열심히 읽습니다. 대부분의 신문을 다 읽죠. 신문이나 잡지를 읽다 보면 뭔가가 솟아요. 그래서 우리 간부 직원들한테 신문의 사설이고 뭐고 가리지 말고 꼭 보라고 해요. 이권에 관계된 사람들이나 나하고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하고 자꾸 만나면 아이디어가 안 나와요. 이권과 관계 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도 아이디어를 얻는 한 방법이죠』
태극기에 대한 존경심 |
趙南浩 서초구청장이 부인 윤병태 여사와 산행하는 모습. |
인터뷰 말미에 자칭 「保守(보수)우익」임을 주장하는 趙구청장은 韓美동맹의 와해 분위기와 우리 사회의 親北(친북) 분위기에 대해 많은 걱정을 털어놓다가 태극기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사회는 지금 국기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요. 가끔 김수환 추기경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추기경님도 국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시고 걱정하세요. 우리의 국기가 뭐냐. 지금 우리는 우리나라가 한반도旗(기)를 다는 나라가 될 것인가, 태극기를 다는 나라가 될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 있어요』
서초구에서 신축 빌딩 허가를 낼 때는 반드시 옥상에 대형 태극기를 달 수 있는 국기 게양대를 설치해야 한다. 물론 서초구청 옥상에도 특수 주문·제작한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다. 밤에는 조명을 비추게 한다. 趙구청장은 태극기에 대한 이야기를 긴 시간 이어 갔다.
『서초구에 들어오면 태극기가 휘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반도기는 영원히 서초에서 볼 수 없게 될 겁니다』
태극기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趙구청장의 모습에서 퇴임 후 그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