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어선 불법조업 중단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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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어선 불법조업 중단 촉구 | |
활빈단, 해양수산부에서 시위 | |
* 한국수산신문 기자 / webmaster@susantimes.co.kr [신문게재 일자] 2006-06-05 [기사입력 시간] 2006-06-05 09:43 | |
이를 통해 활빈단은 “중국의 불법조업에 대해 어업인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여도 정부는 마이동풍”이라며, “쌍끌이 저인망으로 꽃게와 잡어를 훑고 북한 수역으로 달아나는 중국어선을 몰아내고 어업인 생계대책을 마련할것”을 촉구했다. 이와 함께 활빈단은 바다환경 오염제거 및 해양수산 비리 추방을 요구하는 한편 지난 99년 독도를 중간수역에 포함시켜 차관 도입과 맞바꾼 신 한·일 어업협정을 즉각 파기하고 재협상할 것을 요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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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날/금탑산업훈장] 왕기주 ㈜대현농수산 대표이사 : [서울경제 2006.05.25 19:52:47] ㈜대현농수산 왕기주(사진) 대표이사는 35년간 수산업에 종사하며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신어장을 개척하고, 원양어업을 통한 외화획득과 고용창출로 국가경제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 : 그는 1975년 아프리카 나미비아 트롤 어장을 한국 선장으로는 최초로 개척해 가오리 등 저서어류를 상품화 했고, 1977년에는 미국 서부 지역에 진출해 주변 해역에서 가자미, 대구 등 저서어류 어업 활로를 개척했다. : : 1990년 대현농수산을 설립한 그는 대형 원양트롤선을 뉴질랜드에 투입해 매년 약 10,200톤의 어류를 생산하며 년간 1,700만불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 : 2003년부터는 지중해 터키 어장에 진출, 2004년 참다랑어 700톤(수출금액 350만불), 2005년 993톤(수출금액 490만불)을 어획하는 등 우리나라 원양수출산업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 : 2003년부터 한국원양어업협회 소속 뉴질랜드 트롤어업 위원장을 맡은 왕씨는 다른 원양업체들을 헌신적으로 지원하고 노사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2006년에는 해양연맹 부총재로 위촉돼 해양수산업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등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위상을 높이는 데 공헌한 바가 크다. : : 이밖에도 왕씨는 뉴질랜드, 미국, 칠레, 알제리 등의 어장에 진출하면서 해외 수산자원 확보는 물론, 해당국가의 수산업 발전과 고용창출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선봉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 받고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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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열 한번째를 맞는 ‘바다의 날’ 기념식이 26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다. : : ‘깨끗한 바다, 밝은 미래’란 주제로 개최된 이날 기념식에는 한명숙 국무총리, 김성진 해양부수산부장관을 비롯해 해양수산계 인사, 해군, 해양경찰청 등 관련 정부기관장, 해양수산 유공자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 :
: : 한총리는 치사를 통해 “21세기 들어 바다의 중요성과 가치가 더욱 높아지면서 세계 각국은 바다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우리도 명실상부한 해양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드넓은 바다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가야 하고, 정부도 우리의 해양경쟁력을 갖춰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 : 그는 이어 “정부는 해양주권을 넘보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의 권리와 권익을 철저히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국민, 특히 해양수산인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 : 김장관은 환영사에서 “앞으로 해양수산부는 보전과 개발이 조화를 이루는 ‘지속가능한 해양이용’을 해양수산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사전예방적 해양정책 체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 그는 이어 “해양정책보전 노력이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 뿐 아니라 국민들의 자발적 동참과 협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
: : 이날 기념식에서는 해양수산업 발전에 공이 큰 어업인과 기업인에게 훈장과 포장 각각 10명, 대통령표창과 국무총리표창 각각 19명, 해양수산부장관표창 137명 등 총 195명에게 훈·포장과 표창장을 수여했다. : : 이날 최고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에는 인천항이 수도권 교역의 중추항이자 대중국 교역의 중심항만으로 부상하는데 중심적을 역할을 한 이기상 (사)인천항발전협의회 회장과 1970년대 중반부터 지중해 등 해외 신어장 개척에 선도적 역할을 해 온 왕기주 대현농수산(주) 대표이사가 받았다. : :
: : 또 40여년간 연근해 어업현장에서 수산업 발전에 기여해 온 우양수산(주) 정기석 어로장이 동탑산업훈장을, 연안해운업계 최초로 RO-RO선을 도입하는 등 연안물류 발전에 기여해온 여성 기업인인 최영자 세창해운 대표가 대통령상을 받았다. : :
: : 한편 바다의 날을 맞이하여 5~ 6월 두달 동안 서울, 부산, 인천, 여수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항만, 선박, 등대 등 해양수산시설 공개, 바다그림그리기, 글짓기 등 다양한 바다행사가 펼쳐진다. : : 이번 제11회 바다의 날과 관련한 행사계획은 해양수산부(www.momaf.go.kr)와 해양수산부 소속기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안내받을 수 있다. : |
“요즘 TV뉴스 안봐… 왜 싸워? 포로들 데려와야 진짜 나라” | ||||||
아직 서먹한 자본주의 “돈을 잘 몰라” : 두고온 2남1녀 “재회약속 지켜야지…” : : [조선일보 채성진 기자] : 지난 22일 저녁 경기도 용인시 조창호(趙昌浩·74) 예비역 중위의 자택에 가족 10여명이 모였다. 1951년 6·25전쟁 당시 포로로 잡혀 북한에 억류돼 있던 조씨는 1994년 10월 23일 43년 만에 극적으로 탈출, 북한 내 국군 포로의 실상과 탈북자 문제를 국내에 생생하게 알렸다. : ‘생환(生還) 10년’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 모임에는 창숙, 창옥, 창윤, 창애씨 등 조씨 형제를 비롯, 이종사촌인 최필립·자립씨 등 1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당시 조씨 탈북을 주도한 인물들이다. 가족 외에도 2명의 손님이 자리를 함께했다. : “이렇게 아리따운 아가씨였나? 그때는 정신없어서 몰라봤네.” 조씨는 인천의 한 백화점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손휘수(여·45)씨의 손을 잡았다. 화교 출신인 손씨는 북한에서 막 탈출한 조씨를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에 있던 시댁에 숨겨준 인물. 10년 만의 만남이었다. 이날 모임에는 당시 조씨의 밀항을 지휘한 왕기주(59)씨도 참석했다. : 조씨는 10년 전의 일을 어제의 일처럼 기억했다. “서해를 떠가는 배에서 인천이 어슴푸레 보이는데 얼마나 가슴이 벅차던지. 사람의 운명이 이토록 질긴 건지 다시 생각해봤어.” : 조씨의 누나 창숙(84·전 건국대 가정대학장)씨는 조씨가 지난 92년 북에서 보내온 편지를 꺼내들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동생의 생존 사실을 처음 알렸던 글이다. A4용지 절반 크기의 메모엔 ‘먼 기억의 실마리를 더듬어 사랑하는 혈육의 이름을 적는다. 조창숙, 창수, 창원, 창억, 창윤, 창애…’ 글귀가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 자본주의 사회로 돌아온 지 10년. 조씨는 아직도 물건값을 계산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아내 윤신자(64)씨도 “이 사람 아직 돈을 잘 몰라요. 근데 돈에서 자유로운 건 좋은 거 아녜요?”라고 거들었다. 조씨의 갈색 가죽 지갑은 얄팍했다. ‘대상구분: 보국수훈, 훈격: 통일장’이라고 새겨진 국가유공자증이 맨 앞에 꽂혀 있었다. 주민등록증과 지체장애6급인 복지카드, 참전용사증도 있었다. 한 친지가 “10년 전의 형님은 각계에서 답지한 성금을 원호성금으로 기탁한 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배급받으면 된다’고 답했던 사람”이라고 회고하자 거실엔 웃음꽃이 피었다. : 그가 북에 두고 온 자녀는 2남1녀.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는 일이 있는 것 같네. 탈북을 결심하고 집을 떠나기 전 아들과 술 한잔 나눠 먹었지. ‘통일될 그날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 : : : : 왕기주선배님(맨왼쪽) : : 43년 동안 그가 생각한 남한의 모습은 대립과 갈등이 없고 모두가 서로 화합하는 자유 대한민국이었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해도 북한에서의 소름끼치던 기억에서 해방된 것 같아 행복했다고 했다. 그런 그가 요즘 느끼는 감정은 적잖은 실망감이다. “처음 남한에 왔을 땐 TV 뉴스를 빼놓지 않고 봤어. 스펀지처럼 남한을 빨아들였어. 그런데 요즘은 뉴스를 거의 안 봐. 왜들 그렇게 갈라져 사생결단하고 싸우려고만 드는지.” : 그는 북한에 생존해 있을 동료 국군 포로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국군 포로는 조씨 이후 40여명이 귀환했으나 아직도 500여명이 북한에 생존해 있을 것으로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 “자신을 위해 목숨 걸고 헌신한 사람들을 구하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짜배기 나라지. 언제 정부 차원에서 국군 포로 송환해달라고 진심으로 이야기 한 적 있나. 수십년 전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들의 뼛조각 하나라도 찾기 위해 엄청난 돈과 정성을 쏟아붓는 미국을 봐. 이 문제를 덮어두고 진정한 화해를 말하려 해선 안돼. 이젠 시간이 없는데….” : 그의 거실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었다. ‘順으로 흘러 바위를 뚫은 물방울의 지혜와 忍耐力과 成就意志를 배울지니.’ : “나를 생각하며 누군가 써준 글이야. 북한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국군 포로 동료들에게 바치고 싶어. 끝까지 살아 남아 밝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고….” : (용인=채성진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dudmie.chosun.com]) :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 : 북한 자유의 날 미국 의회 앞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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