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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中)
댓글 5건 조회 631회 작성일 2006-04-21 00:00
정릉 (역사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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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동문들에게

오늘은 역사공부 해보시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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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회 공준수로부터

*****************

***정릉***

- 2006년 04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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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 - 사적 제208호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이 정릉을

원래 황화방(지금의 중구 정동)에

있던 것을

1409년(태종9년)에 양주 남사하리

(지금의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겨 놨다.

장명등과 상석을 받치는 고석등의 석물만

옛 능에서 옮겨 온 것이고 나머지 석물은

현종 대에(1660-1670) 새로 조영된

것이라고 한다.

***********************





**정릉**


한국사대사전에 의하면

조선조 태조 이성계(1335-1398)는 개성에서 조선조를

창업당시 향처(고향에서 사는 처) 한씨(왕비) 사이에

여섯 명의 아들 방우(1), 방과(2), 방의(3), 방간(4),

방원(5), 방연(6)과

경처(서울에 사는 처) 강씨(계비) 사이에 두 명의

아들 방번(7), 방석(8) 및 딸 등 모두 합해

아홉 명의 자녀를 두었었는데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왕자들 사이의 두 번의

골육상쟁의 비극을 치렀다.

이를 왕자의 난이라 한다.


1. 1398년(태조 7년-63세 때))에

일어난 방원(5)(31세 때)의 난 -


다섯째 아들 방원(5)과 여덟 째 아들 방석(8)과의 싸움.

(방석(8)의 난, 정도전의 난 또는 무인정사라고도 한다.) -

당시 정도전 일파를 방원(5)일파가 쓰러뜨리고 권력을 잡은

사건이지만 협의적으로 보면 이복형제 간의

왕위 쟁탈을 위한 골육상쟁이다.


이성계는 세자책봉을 계비의 뜻에 따라 7남 방번(7)을

택하려 했으나 위인이 왕위에 부적당하다는 공신들의

주청으로 8남 방석(8)을 세자로 삼았다.


그러자 한씨 소생 왕자들의 불만을 사게 되고

5남 방원(5)은 부왕의 창업을 도와 공로가 크고

자질이 영매한 인물이라 이에 대한 불평이 대단하였고

개국공신으로서 세자 방석(8)을 도와서 잘 인도할

책임을 지고 있는 정도전 등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데 대해서도 물만을 품고 있었는데


한양으로 서울을 옮기는 공사가 완료 된지 2년 뒤인

1398년(태조 7년) 8월에 방원(5)(31세 때)은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이 밀모하여 태조의 병세가

위독함에 제 왕자를 궁중으로 불러들였음을 기회로

일거에 방원(5)을 위시한 한씨 소생의 왕자들을

살육할 계획을 하고 있다고 트집 잡아 이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분을 세워 마침내 정도전 등을 습격하고

변란의 책임을 세자와 정도전 일파에게 돌림으로서

숙원을 풀었다.


즉 방원(5)은 사병을 동원하여 친히 이를 이끌고

정도전과 그 일당의 거처를 습격하여 이들을 죽이고

세자 방석(8)은 폐위하고 귀양 보내는 도중에

방번(7)과 같이 죽여 버렸다.


이 변란으로 세자 방석(8)이 폐위되니 다음 세자는

방원(5)을 받들게 된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러나 방원(5)은 이를 굳이 사양하고 세자의 위를

2자 방과(2)에게 넘겨주었다.


이것은 야심이 없는 방과(2)에게 양보함으로 당장의

혐의를 벗고 또 후일을 기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조 이성계(63세 때)는 그해(1398년) 9월에

제 2자 방과(2)가 41세 때에 왕위를 물려주니

그가 곧 정종이다.


2. 1400년(정종2년- 43세 때)에 일어난


방간(4)의 난(제2왕자의 난 또는 박포의 난) -

왕위를 둘러싸고 일어난 방원(5)과 방간(4) 사이의 싸움. -

방원의 난이 이복형제간의 싸움인데 대하여

이는 동복 형제간의 싸움이며 방간(4)의 방원에 대한 시의심

때문에 일어난 싸움이다.


태조의 4남 방간(4)은 왕위계승에 대한 야심과 호기도

있었으나 인격, 공훈 위세가 방원(5)에 미치지 못하여

항상 시의와 불안 속에 있었다.

그런데 박포는 방원(5)의 난 때의 공을 과소 평가받아

이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에 방간(4)을 충동해서 군대를 동원하였다.

이에 방원(5)도 군을 일으켜 양군은 개경에서의

고전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전세가 방간(4) 군에 불리하게 되자 패주하기 시작하고

방간(4)은 방원(5)군에게 체포되어 유배되고

박포는 사형되었다.


이 방간(4)의 난으로 1400년 2월에 방원(5 - 33세 때))을

세자로 삼고 11월에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어 방원(5))이

즉위 하게 되니 이가 제 3대 태종이다.



아래에 27 커트의 정릉 사진을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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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계비 강씨가 1396년

(태조 5년)에 승하하자

1397년(태조 6년- 62세 때)에

태조는 그녀를 위하여 지금의 정동에

정릉을 만들고 바로

그 동쪽에(지금의 덕수궁 서쪽)

흥천사를 세우고 원당(願堂)으로 하는

한편 조계종의 본산으로

삼고 상덕(尙德)을 주지로 하여

강씨의 명복을 빌고 국가의

발전을 빌게 했고

그녀의 소생 방석(8)을 후계자로 정하자

5남 방원(5)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계모의 소생 동생들을

죽이고 왕위를 이어받아 태종이 되고

1409년(태종 9년-42세 때)에

그의 계모의 능인 정릉을 지금의

정릉동으로 옮기고

정릉의 병풍석을 청계천의

광교 밑에 거꾸로 처박아

교각으로 썼다.


참고: 願堂 -

죽은 사람의 화상이나 위패를 모시고

그 원주의 명복을 아침저녁으로 기원하던 법당.


흥천사는 정릉의 능사로 흥천사의 범종이

현재 덕수궁 안에 있다.


참고: 陵寺 - 능을 지키기 위하여 세운 절.

이 제도는 고려 시대부터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도

계승되었다.

개경사는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의 능사로

봉선사는 세조 광릉의 능사이며

신륵사는 세종영릉의 능사다.

태종은 유언에 따라 능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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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문 -

이 무은 덕수궁 안의 왕의 침전인

함령전의 정문으로

1904(광무8년)에 큰불에 타버린 것을

같은 해에 다시 지었다.

1938년 석조전 서관을 개관하면서

창덕궁 보루각에 있던 자격루와

흥천사의 종을 지금의 자리로 옮길 때

같이 옮겨 세웠다.

문안에 신기전기 화차(왼편)

흥천사의 범종(가운데) 그리고

보루각 자격루(바른편)가 보관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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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 종(보물 1460호) -

1462년(세조 8년) 만들어 내 걸은 종이다.

1510년(중종 5년)에 흥천사가 불타면서

1747년(연조23년)에 경복궁의 광화문으로

옮겼다가 창경궁을 거처 광명문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명문에 의하면 효령대군 등이 참여하여

왕실에서 발원한 것으로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범종에 속한다.



(1) 능상(봉분이라고도 한다.) -

지대석, 난간석 및 병풍석이 없다.

1409년에 양주 사을한록

(지금의 정릉 2동 산 87-16)

으로 옮기고

능의 목재와 석재의 일부는

태평관과 광통교 복구에 썼다고 하는데

방원이 계모 강씨의 막내아들

방석을 왕자로 삼아서

왕자의 난을 일으켰는데

계모에게 감정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병풍석을 광통교 밑에

거꾸로 처박았음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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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의 정릉의 병풍석(1) -

2005년 10월에 복구된 청계천의

광통교 밑에 1405년에 한성부

서부 한화방에 있던 정릉을

양주 사흘한록으로 옮길 때

병풍석을 광통교 밑에 거꾸로 처박아

놓은 걸 그대로 복원해 놨다.


복원할 당시 신천강씨종문회에서

원래의 자리에 복원하고자

반환을 요구했으나 서울시에서

그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정능의 정문에서 배포하는 문화재청

서울지구관리소에서 발간한 안내서에는

강씨의 본관이 곡산이라고 표기해놨는데,

곡산은 신덕왕후 강씨의 고향이다.

(한국사대사전). -

1977년 일신각 발행 한국인의 족보에 보면

강(편안강자)씨는 본이 황해도 신천이고

강씨의 부친 강윤성은 이성계의 장인이고

상산부원군에 봉해지고 경안백에

추봉되었다고 한다.

강씨의 시조는 강후이고 후의 80세손인

지연이 신천에 세거하면서 고려 명종 때

신성(신천)부원군에 봉해지면서부터

후손들이 본관을 신천으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북제주조천서원에 제향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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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홍살문과 오른 쪽 막료위

(제향을 올린 뒤에 축문을 태우는 것을

확인하거나 능을 출입 할 때 참배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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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돌다리

조선조 왕릉의 제도를 보면 홍살문을 지나

돌다리를 건너서 정자각에 이르는데

정릉은 돌다리를 건너 홍살문에 이르고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에 이르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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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정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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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정자각 내부 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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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정자각과 신도비각 -

신도비 옆에 수복방이 있으며

멀리 능 앞에 무인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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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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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수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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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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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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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곡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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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곡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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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오른쪽 석양(돌양)과 석호(돌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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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왼쪽 석양과 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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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문관석 -

신덕황후의 슲음을 아는 것일까?

애조 띈 표정을 하고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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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봉분과 상석(혼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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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명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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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문관서과 석마와 망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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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정자각 뒤로 무인석이 없다. -

왼편 나무 밑으로 돌계단을 만들어

좀더 능 가까이 올라가서 볼 수 있게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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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비각 안의 비 -

전서로 대한신덕황후정릉이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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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비문 -

태조의 계비 강씨의 능이

원래 황화방에 있던 것을

1409년(태종9년)에 양주 남사하리

(지금의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겨놨다는 비문과

1900년(광무4년)에 비를 세웠다는 비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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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왼편은 신도(신이 걸어 들어가는 길)

오른편은 어도(임금님이 걸어 들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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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신도(왼편)와 어도(바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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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원래의 정릉의 병풍석(2) -

북원된 청계천의 광통교 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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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원래의 정릉의 병풍석(3) -

북원된 청계천의 광통교 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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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원래의 정릉의 병풍석(4) -

북원된 청계천의 광통교 밑에 있다.


댓글목록

(中) 작성일
역사공부를 많이 하게 됩니다...공준수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中) 작성일
간만에 조상의 족보 공부 잘하였음니다.
(中) 작성일
강상욱님, 요즘 젊은이들 중에 편안강씨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관이 편안이 되는 셈이지요. 글자가 '편안강' 자인데...그래서 일부러 신덕왕후 강씨의 본관에 관한 글을 넣었습니다. 본관에 관한 공부가 되었다니 고맙습니다. 아래 그림을 좁게 다시 수정하였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中) 작성일
잘 보았습니다.
(中) 작성일
허락되신다면 조선보다는 고려이전의 역사에 대한 소개를 해주시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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