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中) 댓글 1건 조회 627회 작성일 2006-04-16 00:00 동망봉 본문 동망정 - 숭인공원 안 동망봉에 정자를 짓고 '동망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정업원 옛터를 알리는 비각 동문들에게서울에 살아도 남대문 문턱이 없는 걸 모르고 산다고 합니다.동망봉이 어디 있는지 무슨 사연으로 동망봉이라고 부르는지를모르고 사는 서울사람들이 많습니다.오늘은 동망봉 구경을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제목: 동망봉글 / 공준수서울의 흥인지문(동대문)에서 청량리 쪽(동 쪽)을 향해 가다가 지하철 동관묘(동묘공원) 앞에서 도로 건너 북쪽을 바라보면 높은 산꼭대기에 팔각정 하나가 서있는데 이 팔각정이 서있는 산봉우리를 '동망봉'이라고 한다. 이 팔각정이 서있는 곳이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 산 3번지 소재'흥인 공원'인데 이 공원에서 북쪽으로 200여 메타를 내려가면'청룡사’라는 절이 있다. '정업원구기'라고 쓰인 비가 하나 서있다.이곳이 단종왕 비인 정순왕후 송씨가 80평생 단종의 명복을 빌면서살았던 곳이라 한다.단종이 숨을 거둔지 314년 뒤인 1771년(영조 47년)에 지금의 자리에 송씨를 추모하기 위하여 정업원이 있었던 터라는 뜻의 '정업원구기'라고 쓴 비석을 세웠다 한다.단종과 눈물의 이별을 한 송씨가 영월 쪽을 바라볼 수 있는 ‘청룡사’부근에서 세 시녀와 ‘정업원’에서 지냈다 고한다. 이에 조정에서는 근방에 집을 지어준 뒤 이곳을 '영빈정동'이라 부르게 하고 송씨를 그 집에서 살라고 했으나 송씨는 끝내 그 집에 들지 않고 '정업원'에 머물렀다 고 한다.송씨는 아침저녁으로 '동망봉'에 올라 동쪽(영월 쪽)을 바라보며 단종이편안하기를 빌었다 고 한다.그러나 헤어진 지 4개월 뒤인 세조 2년(1457년) 단종이 숨을 거두었지만그 뒤로도 송씨는 계속 '동망봉'에 올라 단종의 명목을 빌었다 고 한다.비석의 뒤에 쓰인 글과 비각현판의 정업원구기 신묘 9월6일 飮涕書와前峯後巖於千萬年의 글씨는 英祖의 친필이라고 한다.송씨는 사후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의 '사릉'에 모셔졌다.***동망봉 찾아가는길*** 지하철 6호선 창신 역 3번 출구를 나와 곧장 좁고 가파른 길을따라 올라가면 아스팔트길이 나온다. 평평한 아스팔트길을 바른편으로 돌아 3,40여 메타를 가다 왼쪽으로 꼬부라져 10여 메타 올라가면 왼편에 '정업원구기 비각안내문'이 보이고그 바른편으로 청룡사 정문이 있다. 청룡사에 들어가 스님에게 정업원 비각을 구경하겠다고 하면 친절히 안내해준다. 정업원 비각을 구경하고 청룡사를 나와 고개마루턱에 올라서면 십자로가 나타난다. 앞으로 아남아파트가 보이고 그곳에서 바른편으로 돌아 5.600메타 쯤 올라가면 숭인공원이 나타난다. 이 숭인공원이 동망봉이고 저쪽 끝에 동망정이 서있다.동망정에 올라 앉아 영월 쪽을 바라다보며 600연 년전 단종비 송씨의애절한 심정을 헤아리며 한나잘을 보냄직하다.천일의 앤 / Paul Mauriat동관묘(동묘공원) 전철역 입구에서 본 동망정 정업원 비각 (1) 정업원 비각 (2) 청룡사 서북쪽 (개발이 한창이다 청룡사와 북한산이 보인다.) 서남쪽 (남산1) 정업원비(뒷면) 서남쪽 (남산2) 동남쪽 왕십리 쪽(개발이 한창이다.) 정업원구기 비 동쪽 (용마산) 서쪽 낙산(멀리 안산이 보인다.) 남쪽 (동관묘(동묘공원)가 보인다.) 수정 삭제 신고 목록 댓글목록 (中) 작성일 2006-04-17 00:00:00 신고 역사의 안목으로 좋은 자료를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의 안목으로 좋은 자료를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