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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은 우리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인물로 구주대첩에서 10만의 거란군을 수장시킨 민족의 영웅이다. 최근에는 ‘강감찬함’이라고 이름 붙여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구축함까지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위대한 영웅의 이름을 읽는 방법에 문제가 있어서 이 글을 쓴다. 왜냐하면 姜邯贊은 ‘강감찬’으로 발음하는 것은 틀린 것이며, ‘강한찬’으로 발음하는 것이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잘못 읽어온 것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 모르지만 틀린 것이라는 사실은 최소한 알고 있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邯’이라는 글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글자는 ‘감’으로 발음할 수 없는 글자라는 사실이다. 이 글자는 ‘한’으로 발음하는 것이 정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함’ 정도의 발음은 가능하다. 이제 이 ‘邯’이라는 글자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중국의 자전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어느 사전을 찾아봐도 모두 ‘한’으로 발음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의 모든 사전에 ‘han' 혹은 'harn'으로 발음 표기가 되어 있었다. 중국어 사전을 보면 이 글자는 땅이름, 사람의 성 등의 의미로 사용되는데, 어떤 경우에도 발음이 ’한‘이었다.
이 글자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地名 중에 ‘邯鄲之步’, ‘邯鄲之夢’ 같은 고사성어 등을 통해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곳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전국시대 조나라의 도읍지였던 ‘邯鄲’이다.
교역의 중심지였던 이 지명을 읽는 발음은 ‘감단’이 아니라 ‘한단’이라는 사실은 가장 기초적인 상식 정도로 생각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邯鄲之步’이나 ‘邯鄲之夢’이라는 사자성어를 배울 때 ‘감단지보’나 ‘감단지몽’으로 읽은 적이 없다. 아마 학교 시험에서 그렇게 썼다면 오답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발음과 우리나라의 발음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에 중국의 사전만으로는 ‘邯’을 반드시 ‘한’으로 읽어야 한다는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나라의 한자사전까지 조사해 보았다.
그 중 대표적인 자전으로 ‘동아한한대사전’을 들 수 있는데, 사전은 이가원, 유창돈, 임창순 등이 감수한 것인데, 이 세분은 흔히 일컬어지기를 정통으로 한문을 배운 마지막 세대라고 한다.
이 사전을 보면 ‘邯’에 대한 음으로는 ‘한’만이 있음을 분명히 밝혀 놓고 있었다. 이처럼 ‘邯’은 ‘한’으로 발음될 수밖에 없는 글자인데, 왜 역사적 영웅인 ‘姜邯贊’에서만 ‘감’으로 발음된 것일까?
그것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왜냐하면 ‘邯’에 대한 일본어의 발음이 ‘감’인데다가, ‘邯’의 앞에 있는 것이 ‘甘’이기 때문에 그 음 역시 당연히 ‘감’으로 읽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자를 제대로 공부했던 분들이 만들거나 감수한 자전에서는 ‘감’이란 발음 자체가 없는데 반해 다른 사전을 많이 참조했거나 한문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약한 분들이 만든 자전에서는 ‘사람 이름 감’으로 표기해 놓은 것이 상당히 있었다.
이 점을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하여 일본어 사전을 살펴보도록 하자. 한자어에 대한 일본어 발음을 보면 우리말에서 ‘한’으로 발음 되는 것은 모두 ‘강,간,감’을 합친 발음인 ‘かん’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한국’은 ‘칸(간)코구’로 발음되고, ‘한파(寒波)’는 ‘칸(간)파’ 등이 있다. 한편 일본어에서 ‘한’으로 발음되는 것은 우리말에서는 ‘반’으로 발음된다. 우리말의 ‘반대’는 ‘한타이’로, 반분(半分)은 ‘한분’으로 발음되고 있는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어는 문장의 순서나 표현 등에서 우리말을 근본으로 하면서도 발음에 있어서는 남방으로부터 들어온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 중국어 발음을 대폭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일본어의 발음에 맞도록 한자음이 생겼는데, 이 과정에서 ‘한’을 ‘감’으로 발음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우리 역사에 대한 근대식 서술이 체계화되었는데, 이 때 정리된 우리 역사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식민사관에 기초를 둔 왜곡된 역사였고,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것을 배우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역사가 왜곡되는 과정에서 ‘姜邯贊’의 발음 역시 일본어의 발음을 따라가게 되었을 것이고, 그 후에는 일부 자전에서 ‘사람 이름 감’이라는 훈과 음을 그대로 싣게 된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邯’을 ‘감’으로 발음하는 것은 일본어 발음에서 온 것이 거의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식민정책과 그것을 맹종하는 사람들의 친일적인 행동과 무식으로 인하여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사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한자를 잘못 읽어서 굳어진 경우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고구려’, ‘고려’라고 발음하고 있는 ‘高句麗’와 ‘高麗’는 ‘고구리’, ‘고리’로 읽어야 맞지만 고구려 혹은 고려로 완전히 굳어져 버린 것이다.
이처럼 잘못되었지만 이미 굳어진 언어현상을 원래대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이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언어를 잘못사용하게 되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정신 역시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언어는 그 자체로 생명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일지라도 뜻만 통한다면 굳이 고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언어가 의식을 규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발언에 불과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