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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13회 작성일 2006-04-09 00:00
수벽치기 전인 육태안 0-10

본문

 
세상에서 예기하는 성공이란 무엇인지 또는 존경 할 만한 사람은 어떤사람들인지 곰곰히 생각할때 마다 63회 동기인 육태안선생이 생각난다.

잔머리로 가득 메꿔진 요즘세상속에서도 육태안선생의 삶 자체를 대할때 마다 나에겐 희망적인  멧세지로 다가온다.
잠시 한국에 들릴때마다 만나 주고받는 대화속에서 참지혜를 얻고 그모습에서 힘을 얻는다.
어제저녁 일본의 지인들과 우리문화에 관한 토론이 있었다.
그 중에 잠깐 수벽치기 맛을 본 재일동포회원들과 지난날 수련회때의 일을 떠올리며 [지킴이]육태안선생의 삶자체가 화제가 되었다.
사회구조가 물질만능인듯 보이는 현실이지만 육태안선생의 삶자체를 볼때 자갈밭에서 아름다운 보석을 보는 것 같다. 나에겐 제일 자랑스런 중앙인이다.마침 인터넷에 육선생에 관한 글이 있어 올려본다. From Toky0-10
 
수벽치기 전인 육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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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네가 아름답기를 갈구하듯,사내들은 무(武)를 숭상한다.호랑이와 사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풀을 뜯는 꽃사슴의 숫놈도 뿔을 갈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어릴 적 무협영화를 보고 꿈 속에서 월광에 검을 비쳐보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으며, 사춘기에
거울 앞에서 말랑말랑한 만두만한 알통일망정 인상쓰며 자세를 잡아보지 않은 소년이 어디
있으랴.

단순하게 비교하면,축구나 농구는 몸의 재주를 다투고 체조 등속은 몸의 미와 힘을 뽐내지만
무는 사생(死生)을 다룬다.때문에 스포츠가 유희에 가깝다면 무는 수도(修道)와 다를 바
없다.사춘기 소년의 인상쓰는 폼은 비교우위를 바라는 충동의 표현이기도 하나 언젠가는
사선(死線)에 서서 세상의 벽을 격파해야 한다는 원초적 무심(武心)의 무의식적 발로라고
해도 결코 비약이 아니다.

무도는 이같은 무심을 건강하게 갈고 닦는 것이며 그 정신과 행동의 미학은 명료한 직진성에
있다.암기(暗技)에 기대는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 것이다.

사육신의 충절은 청사에 길이 빛나지만,거사에 실패하자 무신 유응부는 “심약한 문신들과
대사를 도모하다니…”하며 크게 한탄했다고 한다.

세조의 야외 유희 때 “바로 치자”는 그를 문신들이 말려 일이 그르쳐졌다는 말인데,물론
사육신의 경우는 운명적 실패였으나,생사의 선상에서 일도양단하지 못했다는 무인의 한탄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명색 기마민족인 이 나라에 상무정신이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흐물흐물해진지 오래다.자고로
무를 등한시한 나라치고 번성한 예가 없고,그 이치는 개인이라고 다를 수 없다.남을 괜히
두들겨패자는 무가 아니라,몸을 단련해 정신의 진취성을 고양하는 것 그것이 무도라면
무의 정신이야말로 ‘잔머리’로 남을 괴롭힐 용의점이 다분히 있을 수 있는 지식정보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가꿀 전제적 토대가 되는 것이다.

수벽치기 전인(傳人)육태안(47)은 이 시대의 전업 무사다. 무사라는 단어가 풍기는 재래적
이미지때문에 그가 이를테면 도포에 새긴 낭(浪)·풍(風)·운(雲) 따위 글자를 휘날리는
사람일 리는 없다.그렇다고 ‘다이하드’나 ‘터미네이터’류는 더욱 아니다.무도,그 중에서도
우리 무예를 연구하고 그 술기와 정신을 보급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은,우리가 바둑두는
조훈현을 기사라고 칭하듯 그냥 무사이다.

그가 전념하는 수벽치기는 태껸과 함께 한국 비전의 무술로 태권도의 원류가 되며,일본의
가라데(당수),한일 양국에서 성행하는 합기도(아이키도)의 뿌리로 추정되는 무술이다.

중학생때 무술에 입문한 육태안은 87년부터 수벽치기에 전력하기 전에 합기도 공인 8단,은류(隱流)무술인
기천문 수석사범이었고 작고한 태껸의 무형문화재 신한승의 임종을 지킨 이른바 강호 무사의
내력을 지녔다. 90년대의 한 2년간,고려시대 몽고침략에 끝까지 저항한 삼별초 무사들의
혼을 찾는다며 식솔을 데리고 제주도·진도에 머문 것도 누가 어떻게 보던 그다운 무사정신의
실천이었다.

은자적(隱者的)일에 심취한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그도 주위의 일엔 무심해 흔히 하는
말로 집팔고,공부(고려대 대학원 임학과)포기하고,돈 못버는 인생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그런대로 빛을 봐 수벽치기 보급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며(중앙문화센터
강좌),특히 80년대 중반부터 우리 무술의 때로는 부드럽고,때로는 강한 유기적 몸동작을
예술에 접목해 공연계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사물놀이의 김덕수,연극배우 박정자,무용가 이애주,영화배우 방은진 등 내로라하는 공연계
인사들이 그로부터 한국인의 새롭고도 멋진 몸짓을 한 수 배웠고 국립극단,국립무용단
등 여러 단체들이 그의 지도를 받았다.필요하면 그 자신도 무대에 섰다.98년 프랑스 아비뇽축제에서
검무를 춰 르 몽드 1면을 장식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중앙문화센터에서 수벽치기를 가르치고 상명대 연극과의 겸임교수로 일하는 육태안은
스스로를 ‘돌무사’라고 칭한다.세상의 물정을 몰라 우매하고,외길을 걸으니 우직하다는
뜻일 것이다.

‘돌무사’와의 대화는 수벽치기의 고드기(칼날같은 손끝이란 뜻의 고어)처럼 서로 절도있게
찌르는 것이 좋을듯 하다.물론 설명이 긴 부분에서는 그도 말이 많아진다.

-무를 수련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스스로 강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무사는 머릿속에 죽음까지 가정하고 수련한다.그런
마음에서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진짜 무사란 어떤 사람인가.

“온몸이 무기처럼 사용되어 상대를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잘못쓰면 안된다.고도
의 수련을 거쳐 정신적으로 사생관을 정립한 사람이다.”

-우리 무도정신의 요체는 뭔가.

“첫째‘지킴이’정신이다.일본무사는 자결 따위로 어떻게 보면 멋있게 죽는 수련을 한다.우리는
임전무퇴다.둘째‘다스림’이다.격렬할수록 스스로를 가라앉혀야 한다.그 다음은‘어울림’이다.지킴이가
열탕·용암·패기면 다스림은 냉탕·심연·예법이다.어울림은 경지에 든 인격,예술과 만난다.”

-우리 무예는 어떻게 전해져 왔나.

“ 스승 일동(日東)선생의 말인데 ‘사뭇 그렇게 전해져 온 거다.몸에서 몸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그 무슨 선답(禪答)같은 말인가.

“사실이 그렇다.우리 무인들은 은자들이었다.누군가와 운명이 닿으면 전수하는 식이었다.”


-일동 선생은 누구인가.

“지금도 살아 계신다.태껸의 명인 신한승 선생의 스승이다.일생을 시계수리점에서 일한
그 분은 1948년 무렵 어느 노인으로부터 비결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고수(高手)란 어떤 사람인가.

“최고의 고수는 관뚜껑 닫을 때까지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천명을 다하고 가는 사람이다.여기서
힘이란 수련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젊었을 때 힘없는 사람은 없다.늙어 힘이 전인생의
힘이다.”

-우리 무예가 중국·일본 무예와 다른 점은 뭔가.

“인간관 때문에 다르다.중국은 재주가 많으면 그를 최고로 친다.일본은 살법(殺法)에
치중한다.우리는 사람을 귀히 여긴다.한 판 붙더라도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면 그걸로 족하다.”

-중국 무협영화보면 아주 하늘도 날고 휘황찬란하더라.

“허구의 세계니까 재밌게 보면 그만이지만 잡스럽게 느껴진다.TV에서 소림사 무술시범을
보니까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수평으로 들고 머리로 종을 치던데 그 짓 하자고 수련하는
게 아니다.”

-조그마한 소나무 가지를 든 고수가 칼을 든 무사를 이길 수도 있나.

“소나무 가지로 먼저 상대방 눈을 찌르면 몰라도….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ROTC장교로 최전방 수색소대장을 지내고 78년 제대한 육태안은 대학원 재학 중이던 다음
해 우리 무예의 비법을 깨치기 위해 아예 삭발하고 계룡산에 입산했다.

솔잎을 씹으며 산쥐와 더불어 잔 동굴생활 한 달을 포함한 3개월여 이 시절의 수련은 그가
지은 책‘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나니’에 간략하게나마 소개돼 있다.하산 후 우리 무예의
숨은 고수를 찾아 전국을 떠돌던 그는 86년 12월 마침내 신한승을 만난다.

신한승이 다음해 7월 타계하며 유품을 그에게 물려줬으니 ‘사뭇 그렇게 전해져 왔다’는
말이 실감난다.수벽치기의 은자 일동의 소재에 관한 단서도 신한승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찾았으니 더욱 그렇다.육태안은 그 후 5년간 일동에게 지도를 받았다.

-꼭 동굴에 들어가고 그래야 수련이 되나.

“당시엔 교수의 길이냐,무사의 길이냐 절박한 갈림길에 선 상태였다.후자를 택했다.더
높은 수준의 무예를 갖추려면 내가 나를 혹독하게 다뤄야 했다.”

-산 속에서 수련하면 특별한 방법이 있을 법한데.

“다섯가지다.첫째 담력키우기다.절벽 끝에서 자세를 취하면서 공포심을 제거한다.둘째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3시간 정도 쉼없이 산길을 왕복한다.정신적인 지겨움을 극복하는
수련이다.셋째 물을 친다.순간적인 폭발력을 연마하는덴 최고다.

넷째는 ‘나무씨름’으로 소나무 숲 속에서 나무들을 상대로 여러 몸짓을 써가며 돌파한다.끝으로
자기자신에게 백번 큰절하기다.엄숙하게 백번 큰절을 해보면 세상이 달라져 보일 것이다.”
두번째,다섯번째 수련법은 일반인도 해 봄 직하다.

팔짓을 괴상하게 하며 산을 오를 때 남들이 “저거 돈 놈 아니냐”라고 수군거리는 걸
짐짓 모른 체 견디는 것은 덤으로 얻는 정신수련이겠다.

-수련의 최종 목표가 생사의 경계에서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요즘 세상에
스포츠나 호신 개념보다 그걸 강조하면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겠는가.

“단계별 선택의 문제다.놀이나 호신의 단계를 넘고 또 넘으면 정신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분명하다.그러나 그걸 강요해서 될 일은 아니고,해서 누구나 건강증진에 도움이 됐으면
해 수벽체조를 고안해 보급하고 있다.”

무를 권장하는데 육태안은 꼭히 수벽치기만을 고집하지 않는다.태권도든 뭐든 무도 한가지쯤은
몸에 익혀야 인격수양에 도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초등학교때부터 도장에 나가는 건
좋으나 무슨 장난처럼 우르르 갔다가 흐지부지하는데,무의 정신이 오도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생업이 무엇이든 지금 나이가 어떻든,과거 진정한 선비들이 문무를 겸비했듯이,수벽치기
강좌에 나가든 인근 도장을 찾든 절대 손해날 일이 아니다.우선 밤길에 헐렁한 불량배
하나쯤 능히 제압할 배짱도 없다면 될 일도 안될 것이다.

<육태안 약력>

▶72년 중앙고 졸업
▶76년 고려대 임학과 졸업
▶95년 수원대 대학원 체육학
▶87년부터 수벽치기 전수(중앙문화센터 강사)
▶97년부터 상명대 연극학과 겸임교수
▶85년 울타리 검무 공연
▶85년부터 연극 '검은새' , 발레 '세걸음' , 연극 '지킴이' ,
서울올림픽 문화축전 작품 등 무예.동작 지도
▶98년 프랑스 아비뇽 축제 공연
▶저서: '우리무예 이야기'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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