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학교] 유관순 열사 '3·1 정신' 교정 곳곳에 스며, 공주 영명 중·고등학교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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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학교] 유관순 열사 '3·1 정신' 교정 곳곳에 스며
지난 1일 공주 영명중·고교생들은 공주 문화회관에서 열린 3·1 만세운동 행사에 참가했다. 1919년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공주 독립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전통에 따른 것이다. 영명고 2학년 서기선(17)양은 “우리 학교 역사가 이렇게 오래됐구나 새삼 느끼게 됐다”고 말한다. 2학년 송영롱군은 “우리 학교는 유관순 누나가 다녔던 학교”라고 말했다.
충청도를 기반으로 한 최초의 근대 중등학교인 공주 영명중·고등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미국인 감리교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Frank E.C. Williams) 목사가 설립한 이 학교는 ‘복음전파와 신교육’의 건학이념으로 1906년 남학생 15명을 모아 첫 수업을 시작했다.
일제시대 영명은 항일민족운동의 중심에 섰다. 1919년 만세운동은 교사 3명과 학생 4명이 주도했고 독립선언서 1000매를 학교 기숙사에서 등사했다.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준석은 유관순 열사의 오빠이며 유관순 열사도 영명학교를 다니다 이화학당으로 전학갔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때는 영명학교 학생들이 동맹휴학을 결의해 학생 7명과 교사 2명이 구속됐다.
그런 만큼 일제의 집중탄압과 감시도 받았다. 일제는 1940년 애국지사를 길러낸 윌리엄 목사부부를 해외추방했고 적국인(敵國人)이 세운 학교라며 1942년 폐교(廢校)시켰다. 해방 후 1949년 ‘학교를 다시 열어야 한다’는 요구에 따라 영명상업중학교가 문을 열었고 1951년 현재 교명으로 개편됐다.
개교 100주년을 맞아 영명은 학교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목표는 학력신장과 인성교육이다. 최근 침체된 학력을 높이기 위해 학교는 매일 밤 11시까지 학교를 개방하고 일요일에도 학생들이 등교해 부족한 학과공부를 한다. 우수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동창회에서는 4억여원의 장학금을 모금했다.
인성교육을 위해서는 ‘교육사랑 A/S 운동’을 벌이고 있다. 교사가 매일 학생들에게 전화와 편지 또는 이메일을 보내는 운동이다. 오대현(吳大鉉) 교장은 “교육도 서비스개념으로 접근하자는 의미”라며 “이 운동을 시작하면서 학생과 교사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고 말했다. 이 학교 교사와 학생은 수업이 시작하고 끝날 때 서로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한다.
오는 10월 100주년 기념식을 맞아 학교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교정 중앙에 ‘영명동산’을 만들고 100주년 기념조형물을 세운다. 100년사 편찬과 기념축제 등도 마련된다.
영명은 그간 2만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유석 조병옥(趙炳玉) 박사가 2회 졸업생이다. 2·8독립운동을 주도한 윤창석씨와 음악가 안기영씨, 소설가 방인근씨도 이곳에서 공부했다. 초대 충남지사이며 군산해양대학 학장을 역임한 황인식씨도 영명 출신이며 표용은 목사(영명학원 이사장) 등 110명의 졸업생들이 전국에서 목회자로 활동 중이다.
공주 영명 중·고등학교
충청 첫 근대 중등학교… 조병옥 박사 등 배출
충청 첫 근대 중등학교… 조병옥 박사 등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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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를 기반으로 한 최초의 근대 중등학교인 공주 영명중·고등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미국인 감리교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Frank E.C. Williams) 목사가 설립한 이 학교는 ‘복음전파와 신교육’의 건학이념으로 1906년 남학생 15명을 모아 첫 수업을 시작했다.
일제시대 영명은 항일민족운동의 중심에 섰다. 1919년 만세운동은 교사 3명과 학생 4명이 주도했고 독립선언서 1000매를 학교 기숙사에서 등사했다.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준석은 유관순 열사의 오빠이며 유관순 열사도 영명학교를 다니다 이화학당으로 전학갔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때는 영명학교 학생들이 동맹휴학을 결의해 학생 7명과 교사 2명이 구속됐다.
그런 만큼 일제의 집중탄압과 감시도 받았다. 일제는 1940년 애국지사를 길러낸 윌리엄 목사부부를 해외추방했고 적국인(敵國人)이 세운 학교라며 1942년 폐교(廢校)시켰다. 해방 후 1949년 ‘학교를 다시 열어야 한다’는 요구에 따라 영명상업중학교가 문을 열었고 1951년 현재 교명으로 개편됐다.
개교 100주년을 맞아 영명은 학교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목표는 학력신장과 인성교육이다. 최근 침체된 학력을 높이기 위해 학교는 매일 밤 11시까지 학교를 개방하고 일요일에도 학생들이 등교해 부족한 학과공부를 한다. 우수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동창회에서는 4억여원의 장학금을 모금했다.
인성교육을 위해서는 ‘교육사랑 A/S 운동’을 벌이고 있다. 교사가 매일 학생들에게 전화와 편지 또는 이메일을 보내는 운동이다. 오대현(吳大鉉) 교장은 “교육도 서비스개념으로 접근하자는 의미”라며 “이 운동을 시작하면서 학생과 교사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고 말했다. 이 학교 교사와 학생은 수업이 시작하고 끝날 때 서로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한다.
오는 10월 100주년 기념식을 맞아 학교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교정 중앙에 ‘영명동산’을 만들고 100주년 기념조형물을 세운다. 100년사 편찬과 기념축제 등도 마련된다.
영명은 그간 2만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유석 조병옥(趙炳玉) 박사가 2회 졸업생이다. 2·8독립운동을 주도한 윤창석씨와 음악가 안기영씨, 소설가 방인근씨도 이곳에서 공부했다. 초대 충남지사이며 군산해양대학 학장을 역임한 황인식씨도 영명 출신이며 표용은 목사(영명학원 이사장) 등 110명의 졸업생들이 전국에서 목회자로 활동 중이다.
입력 : 2006.03.30 00:01 54'
댓글목록
관심이 갑니다. 유관순열사에 대해서는 외국인과 대화를 나눈 적도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