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3·1절, <font color=blue>유영하(33회)</font> - 조선닷컴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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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건 조회 667회 작성일 2006-03-03 00:00
백발의 3·1절, <font color=blue>유영하(33회)</font>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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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3·1절

유영하翁탑골공원서 민간추념식
"31년째야… 죽을때까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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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년째 서울 탑골공원에서‘3·1절 민간 추념식’을 가져온 유영하 할아버지가 1일 오전 손병희 선생 동상 앞에 헌화하고 있다. 이태경 인턴기자·성신여대 미디어전공
백발의 할아버지는 올해도 어김없이 탑골공원에 나타났다. 해마다 스스로 ‘3·1절 민간 추념식(追念式)’을 열어온 유영하(82) 할아버지. “여기가 3·1운동의 진원지니까 여기 와 묵념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3·1정신을 계승하는 거지. 그게 내 신념이라우.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야….”

1일 오전 10시. 지팡이에 온몸을 의지한 그가 손병희(孫秉熙) 선생 동상 앞에 섰다. 들고 있던 꽃 한 송이를 천천히 내려놓고 묵념을 올린다.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 다리를 구부리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헌화(獻花)하고 묵념을 올리면서 선열들의 항일정신을 기리는 ‘민간 추념식’이다.

“뭐 하러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고 비웃는 사람도 많았지요. 그래도 이젠 조금씩 내 뜻에 동참하는 노인들이 늘어서 매년 50~100여명씩 함께 하고 있습니다.”

1975년 3월 1일. 유씨는 우연히 탑골공원에 들렀다 썰렁한 손 선생의 동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한걸음에 꽃집으로 달려가 꽃다발을 사서는 동상 앞에 놓고 묵념을 올렸다. 시작은 혼자였지만, 이듬해부터는 동네 노인들을 설득해 함께 탑골공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추념식이 벌써 31년째.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유씨는 지난해 6월 탈장 수술을 받아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지만, 신념과도 같은 3·1절 행사만은 거를 수 없었다고 했다.

“간단하게 묵념을 올렸으니 노인들 모두 데리고 인근 식당으로 갈 겁니다. 함께 밥을 먹으면서 독립 열사들의 기개를 되새기는 거지요.” 유씨는 “내 뜻에 동참해주는 사람들이니 밥은 내가 산다”며 껄껄 웃었다.

“죽을 때까지 추념식을 올릴 겁니다. 3·1운동의 정신을 되새기고 살려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그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 정신을 너무 몰라서 걱정”이라며 “이제 힘없는 노인들보다는 젊은이들이 계승해야 하는데…”라고 했다.




허윤희기자 ostinato@chosun.com but_blog.gif

입력 : 2006.03.01 22:19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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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작성일
柳永夏선배님은 1941년 '5인독서회사건' 당시의  '노국환, 황종갑, 이기을, 조성훈' 33회 선배님들의 한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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