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사설] 새 추기경, '화해와 평화'의 향도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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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새 추기경, '화해와 평화'의 향도가 되길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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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75) 대주교가 새 추기경에 임명됐다. 김수환 추기경은 정년인 80살을 넘긴 명예직이니, 이제 새 추기경이 한국 가톨릭을 대표하게 된다. 그간 우리나라 가톨릭은 신도가 400여만명에 이르지만, 가톨릭 최고기구인 교황청 추기경단회의에 참석할 대표가 한 명도 없었다. 신도 100만여명에 추기경이 두 사람인 일본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컸다.
한국에서 추기경은 특별한 권위를 갖는다. 1970~80년대 민주화가 최고의 화두이자 가치였을 때, 김수환 추기경은 민주화 운동의 든든한 후원자 구실을 했다. 가난하고 소외당한 이들, 독재정권과 맞서 싸운 이들의 보호자 구실도 했다. 이를 통해 추기경은 한국 가톨릭의 수장 차원을 넘어 시대적 양심을 상징했다. 불교나 개신교에 비해 교세는 작지만 가톨릭의 목소리가 컸던 것은 추기경의 이런 권위에 힘입은 바 컸다.
이제 시대적 요청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로 옮겨갔다. 땅 위의 평화를 통해 하늘에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교회의 지향과 같다. 사실 민족화해는 정의구현사제단 등 이 땅의 평화를 고민하던 가톨릭 사제들이 내건 기치였다. 애초 말 자체를 꺼렸던 북쪽은 지금 입에 달고 다닌다. 남쪽 사회 안에서도 화해는 중대한 과제가 됐다. 계층·세대·이념의 갈등과 양극화는 사회의 바탕을 흔들고 있다.
새 추기경 역시 이런 시대적 소명에 헌신하길 기대한다. 낮고 천한 말구유에서 난 예수 탄생의 뜻을 기억하며, 화해와 평화를 위한 등불이 돼야 한다. 한국에서 특별한 추기경의 권위는 교회 직책이 아니라 이런 사회적 헌신에서 나왔다. 아울러 좀더 젊고 진취적인 분이 서임되기를 바랐던 교계 일각의 바람도 새 추기경은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