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은 죽어서도 감동을 . . .(펌)
본문
1. 박정희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얼마뒤 朴대통령의 일본지인들이 서울신당
동으로 유족들을 위로방문한 자리에서 차대접을
받는데 이 사람들이 가만
보니 찻잔하고 잔받침하고 하나도 짝이 맞는게
없더라는것입니다.이에
이
일본인들은 "아! 박정희는 죽어서도 교훈을 주는 사람" 이라며 입을 다물
지 못하더라는것입니다.18년간 일국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집에 제대로된 다
기세트 하나가 없으니 놀랄수밖에요.
2. 10.26사건당일,서울육군통합병원의 당직군의관이었던 정규형대위는
사
건직후 합수부조사에서 이런말을 합니다."응급실에 안치된 시신이 VIP일
것이라고는 어느정도 짐작했지만 대통령일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못
했다.바지는 도데체 몇번을 수선했는지 수선흔적이
역력했고,혁대는 다 헤
져있었으며,넥타이핀도금도 다 벗겨져있었다.시계도 흔해빠진 세이코였다"
朴대통령은 사건당일 아침에도 보좌관을 시켜 바지의 허리부분을 수선해
오게했고 결국 그 바지를 입은채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3. 이승만박사는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하루종일 사과한개를
세번 나
누어먹으며 삼시세끼를 해결하면서 "오늘도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 로 시작되는 주기도문을 세번 외웠다고 합니다.4.19가 일어나서 경무대
에서 이화장으로 쫓겨나왔을때는 수중에 가진돈이 없어서 이화장의 꽃나무를
장마당에 내다팔아 쌀을 사먹었습니다.
4. 하와이로 떠날때 세인들은 금은보화를 궤짝채로 가지고간다고 수근거렸지
만 실제 가지고간 짐은 약간의 옷과
藥,보온병,타자기1대
정도였습니다.李박
사는 1962년에 노인성질환이 악화되어 요양원에 입원을 하게되는데 이때도 입
원비가 없어 애를 먹다가 요양원원장인
존슨여사라는 분이 호의를 베풀어준덕
분에 겨우 입원을
할수있었습니다.프란체스카여사는 창고같은 요양원부속실한
켠에서 李박사가 돌아가실때까지
생활했고 잠은 쇼파두개를 연결해서 잤습니다.
차마 일국의 건국대통령내외의 말년이라고는
믿을수없는 광경이었습니다.
5. 李박사가 남긴 재산은 1945년 귀국했을때 모사업가에게 헌납받은 이화장한
채와 이화장에 전시되어있는
고물상도 주워가지않을것같은 가재도구3000여점
이 전부입니다.자칭
민주투사정권이 3번이나 들어서서 역사바로세우기니 과거
사진상규명이니하는 저주의 굿판을 벌이고 박정희를
그위에 제물로 올려놓았지
만 여지껏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서 뭔가 한껀수
잡았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
습니다.
6. 물론 금전적으로 깨끗하고 청렴하다고 해서 무조건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설사 독재를 하고 나쁜짓을 한다해도
그정도가 있습니다.물론 李박사와 朴대통령은 청렴했을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한 위대한 지도자들입니다.李박사의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건국-韓美동맹체결-교육입국정책,朴대통령의 물질적-정신적근대화등은 우리
가 두고두고 고개숙여 감사해야할 위대한 업적들입니다.
이승만박사내외가 양복장으로 사용한 종이옷장.프란체스카여사가 헌 종이
박스를
재활용하여 직접 만들었다
7. 한때 태국의 잠롱총리가 청백리의 표상으로 칭송을 받은적이 있었는데
저는
이승만과 박정희도 절대 그 못지않을거라 생각합니다.등소평-이광요-요시다
등을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지도자로 꼽곤 합니다만은 이승만과 박정희는 그
들보다 훨씬 더 나쁜 환경하에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한 사람들입니다.
자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위대한 인물은 몰라보면서 남의 나라 역사와 위인
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것은 좀 우스운 짓입니다.
8. 대한민국현대사가 마치 중세유럽암흑기나 되는양 과장왜곡하고
反체제인사
들의 정치적자유를 일정기간 일정부분 제한했던 이승만-박정희정권의 독재를
인권완전말살의 전체주의독재-공산독재와 동렬에 놓는것은 역사왜곡입니다.
남의 나라가 내 나라역사를 왜곡하는것도 문제지만
내가 내 나라역사를
왜곡한다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