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은 우리의 얼굴이다.(12월21일자 중앙일보 시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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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황우석은 우리의 얼굴이다
한달 전만 해도 우리의 영웅이었던 황우석 교수가 지금은 '피의자' 비슷한 신분으로 추락했다. 삼국지 뺨치는 반전과 굴곡, 음모와 진실의 게임이 과학연구를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현장을 보고 있는 국민의 마음은 세밑을 강타한 혹한처럼 얼어붙었다. 서울대 조사위의 검증이 사태 수습의 단초가 되기를 바라면서 황우석 사태의 함의를 따져보자. 고삐 풀린 민족주의와 애국심, 성과지상주의, 경제적 부가가치에 대한 맹목적 기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언론의 선정주의, 난치병 환자들의 간절한 소망, 정치권의 정략 등이 난마처럼 얽힌 이 드라마는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맨얼굴을 드러내 보여줬다. 이런 잡다한 요인들을 배경으로 한 황우석 영웅신화의 대두와 몰락은 두고두고 차가운 분석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내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갖는 부분은 황 교수의 거듭된 거짓말과, 그것이 우리 사회에 수용되는 양상이다. 그는 난자 공여 문제에 대해 1년 이상 거짓으로 일관하다가 결정적 증거가 나오자 마지못해 시인했다.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진위성과 연관된 폭로가 나오자 황 교수는 "인위적 실수"라는 교언(巧言)과 함께 논문을 취소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논문 조작을 명시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은 채 "줄기세포가 11개가 아니라 3개면 어떻고 1개면 또 어떠하며, 논문이 1년 뒤 나온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며 전 세계에 항변했다. '줄기세포 바꿔치기' 음모론은 일단 논외로 하자. 난해한 황 교수의 해명이 감추지 못하는 대목은 문제의 2005년 논문이 조작됐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설령 '원천기술'이나 체세포복제 줄기세포주가 존재한다 해도 이 치명적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치유복제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증거를 제시한' 2004년 사이언스 논문 성과를 한 단계 격상시켜 '줄기세포 수립의 효율성을 10배 이상 높인 것'이 2005년의 업적인데, 황 교수 자신의 설명에 의해서도 2005년의 성과는 근거가 없다. 이 때문에 논문을 취소했을 텐데 그런 연후에도 그는 원천기술이 있는데 그 정도의 '실수'가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강변한 것이다. 여기서 황 교수는 학문의 기본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논문 조작 시비를 체세포복제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의 원천기술 문제로 전환시키는 황 교수의 교묘한 레토릭에 대해 시민들이 보이는 관용적 태도다. 여기에는 앞서 예거된 요인들 외에 '털면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는가'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또는 한국 학계에 만연해 있는 표절과 짜깁기 관행에 일반인들조차 면역되어서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황 교수팀이 범한 학문적 '부정행위'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도가 선진국에 비해 한국 사회에서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고질적인 저신뢰 사회라는 것을 입증한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공인들이 거짓말과 말 바꾸기를 예사로 해도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말끝마다 '진정성'을 되뇌는 정치인들의 허언(虛言)과 식언(食言)은 물론이거니와 악성의 거짓말조차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법정에서의 무고와 위증의 비율이 이웃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수능시험에서의 조직적 부정이 고교 입시와 초등학교 현장에서도 발견된다. 대학생들은 '커닝'에 대해 양심의 가책조차 갖지 않는다. 이처럼 공적인 거짓말이 별문제가 안 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에 대한 뼈아픈 성찰 없이 황 교수 사태에 현상적으로 일희일비할 때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선진국 진입은 요원할 뿐이다. 사회적 신뢰를 결여한 우리의 얼굴은 천민의 얼굴일 수밖에 없다. 반면 정직성과 진실을 위해 고투한 젊은 과학자들과 언론인들의 얼굴은 그만큼 아름다운 것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사회철학 |
댓글목록
어렵겠지만...침착하게, 냉철하면서도 따듯하게...사건의 추이를 지켜보아야 하겠습니다. 황박사님이 어이없고 원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얼굴인걸 어쩌겠습니까?...
저는 '정직성과 진실을 위해 고투한 젊은 과학자들과 언론인들의 얼굴'은 보지 못했습니다. '공적인 거짓말이 별문제가 안 되는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똥 묻은 개들부터 깨끗하게 목욕시키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똥 묻은 개들에게는 침묵하는 자칭 결벽주의자와 순결주의자의 얼굴들만 보입니다.
지금 당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있는 좌표를 점검하여 바로 아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논자마다 생각이 모두 다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느냐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느낀 것은 참 우리 사회가 성숙해진다는 것도 있지만, 참 세상 살기 어렵구나 하는 것입니다. 참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