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 후배에게....<2355 재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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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이
서로의 생각과 자유로운 의사 소통의 기회의 장이 되어서
어떤 논점이나 현상에 대해 각자 의견을 당당히 주장하고 비판하는 순기능이 활성화 되길 희망해 봅니다.
그런 점에서
간혹 신문지상에서 학자들간에 지상토론을 하는 것은 토론 문화에 익숙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 있어서 보다 나은 건전한 여론 문화 형성에 좋은 전례가 되라라는 생각을 평소에 갖고 있었습니다.
아래의 후배 글을 읽고 난 소감은,
또 너무 겉가지 이야기를 많이해서 답글이 자꾸 길어질 것 같아
우선 일차적으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담아서 답글로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용 글의 소재와 그런 비유에 대해 반론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그것은 좀더 뒤로 미루고, 여기서는 우선 전체적인 조명을 일차적으로 먼저 해보겠습니다
후배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럼 과연 황박사를 진정 우리 시대의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재차 묻고 싶어집니다.
왜냐하면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표현은 곳곳에서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황박사가 우리 시대의 영웅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한 인간으로서 신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분은 오직 연구실에서
피눈물나는 각고의 노력과 인고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 앞에 우뚝 선 분입니다.
그분에게 윤리 문제를 이야기 하지만, 생명 윤리 문제의 덫에 걸릴 만큼 사악한 분이 아닙니다.
모든 걸 떠나 한번 돌이켜 생각해 봅시다.
서양인들은 모르지만 동양적인 더구나 한국적인 정서에서
아끼는 연구원이 자발적으로 난자 제공을 하고 나서는데 얼마나 고맙고,기특하겠습니까?
그러면 비밀 보장해 달라는데 제자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냉정하게 내칠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렇게 해서 윤리 문제를 해결했다고 했을때 연구팀원간의 팀웍과 난자 제공한 여성 연구원에 대한
인간적인 문제는 어떠하겠습니까? 스승이 헌신적인 제자의 그 아름다운 마음을 모른 척 해야만 옳았을까요?
나는 내가 그런 상황이라도 분명히 황교수처럼 했을 것입니다.
물론 후배는 당연히 윤리 문제를 언급하며 거짓말을 안하겠지요.
그것이 후배와는 다른 인식 문제와 가치 판단의 차이가 될 것입니다.
물론 서양인들은 당연히 후배처럼 가차없이 그렇게 행동하였을 것입니다.
서양인들이 몸에 벤 합리주의로는 가능하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런 정서가 아닌 한민족 특유의 정체성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 아닙니까?
서양인들은 절대 이해 못하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는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것으로 인해 문제가 되고 그 문제 때문에 곤욕을 치르더라도 그것은 숙명이겠지요.
황박사는 대한민국 사람이고, 새튼처럼 유태인이 아니니까요.
황교수를 형재애 운운 이야기 하고도 윤리 문제로(그게 진정한 이유가 아니라도) 자빠지는 사람이니까요.
왜 아무 문제 없다는 말하는데,구역 구역 우기며,
윤리 문제가 논문의 성과나 내용에 중대한 사안도 아니고, 중요한 부분도 되지 아니한데,
국제학술지인 사이언스가 검증헸다고 하는데, 왜 우리가 유독 윤리 문제에 그토록 집착을 합니까?
헬싱키 선언이라는 게 그렇게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 모셔야 할 만큼 최고의 가치 개념은 분명 아닙니다.
물론 신발 가게 나이키 처럼 경영 전략상의 윤리와는 다른 차원의 가치 문제인 만큼 다른 명제임은 확실하겠지요
그렇다고 가증스럽고 사악한 두 피디의 취재 윤리 문제로 난자 윤리 문제를 달리 말하지는 않으렵니다..
하지만 과학은 과학자가 연구 논문과 성과로 말하는 것이고, 과학계의 학설과 실험과 검증으로 입증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튼의 학설을 검증했어야 했겠군요.
왜냐하면 황박사가 새튼의 논문과 학설을 뒤짚었고, 황박사 논문으로 검증되었으니까요.
만약에 MBC가 검증했어야 할 대상은 새튼의 학설과 논문을 갖고 문제삼아야 하는게 아닐까요?
이렇듯 과학은 정-반-합.. 다시 정-반-합,
이런 식으로 과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검증되어가는 순환논리 구도로 얽혀있는 자연스런 이치의 산물입니다.
비전문가인 일개 피디가 果實과 업적에 눈멀어 오기어린 횡포로 생명공학의 꽃망울을 왜 잔인하게 꺾어 놓았나요?
서로의 생각과 자유로운 의사 소통의 기회의 장이 되어서
어떤 논점이나 현상에 대해 각자 의견을 당당히 주장하고 비판하는 순기능이 활성화 되길 희망해 봅니다.
그런 점에서
간혹 신문지상에서 학자들간에 지상토론을 하는 것은 토론 문화에 익숙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 있어서 보다 나은 건전한 여론 문화 형성에 좋은 전례가 되라라는 생각을 평소에 갖고 있었습니다.
아래의 후배 글을 읽고 난 소감은,
또 너무 겉가지 이야기를 많이해서 답글이 자꾸 길어질 것 같아
우선 일차적으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담아서 답글로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용 글의 소재와 그런 비유에 대해 반론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그것은 좀더 뒤로 미루고, 여기서는 우선 전체적인 조명을 일차적으로 먼저 해보겠습니다
후배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럼 과연 황박사를 진정 우리 시대의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재차 묻고 싶어집니다.
왜냐하면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표현은 곳곳에서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황박사가 우리 시대의 영웅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한 인간으로서 신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분은 오직 연구실에서
피눈물나는 각고의 노력과 인고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 앞에 우뚝 선 분입니다.
그분에게 윤리 문제를 이야기 하지만, 생명 윤리 문제의 덫에 걸릴 만큼 사악한 분이 아닙니다.
모든 걸 떠나 한번 돌이켜 생각해 봅시다.
서양인들은 모르지만 동양적인 더구나 한국적인 정서에서
아끼는 연구원이 자발적으로 난자 제공을 하고 나서는데 얼마나 고맙고,기특하겠습니까?
그러면 비밀 보장해 달라는데 제자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냉정하게 내칠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렇게 해서 윤리 문제를 해결했다고 했을때 연구팀원간의 팀웍과 난자 제공한 여성 연구원에 대한
인간적인 문제는 어떠하겠습니까? 스승이 헌신적인 제자의 그 아름다운 마음을 모른 척 해야만 옳았을까요?
나는 내가 그런 상황이라도 분명히 황교수처럼 했을 것입니다.
물론 후배는 당연히 윤리 문제를 언급하며 거짓말을 안하겠지요.
그것이 후배와는 다른 인식 문제와 가치 판단의 차이가 될 것입니다.
물론 서양인들은 당연히 후배처럼 가차없이 그렇게 행동하였을 것입니다.
서양인들이 몸에 벤 합리주의로는 가능하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런 정서가 아닌 한민족 특유의 정체성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 아닙니까?
서양인들은 절대 이해 못하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는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것으로 인해 문제가 되고 그 문제 때문에 곤욕을 치르더라도 그것은 숙명이겠지요.
황박사는 대한민국 사람이고, 새튼처럼 유태인이 아니니까요.
황교수를 형재애 운운 이야기 하고도 윤리 문제로(그게 진정한 이유가 아니라도) 자빠지는 사람이니까요.
왜 아무 문제 없다는 말하는데,구역 구역 우기며,
윤리 문제가 논문의 성과나 내용에 중대한 사안도 아니고, 중요한 부분도 되지 아니한데,
국제학술지인 사이언스가 검증헸다고 하는데, 왜 우리가 유독 윤리 문제에 그토록 집착을 합니까?
헬싱키 선언이라는 게 그렇게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 모셔야 할 만큼 최고의 가치 개념은 분명 아닙니다.
물론 신발 가게 나이키 처럼 경영 전략상의 윤리와는 다른 차원의 가치 문제인 만큼 다른 명제임은 확실하겠지요
그렇다고 가증스럽고 사악한 두 피디의 취재 윤리 문제로 난자 윤리 문제를 달리 말하지는 않으렵니다..
하지만 과학은 과학자가 연구 논문과 성과로 말하는 것이고, 과학계의 학설과 실험과 검증으로 입증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튼의 학설을 검증했어야 했겠군요.
왜냐하면 황박사가 새튼의 논문과 학설을 뒤짚었고, 황박사 논문으로 검증되었으니까요.
만약에 MBC가 검증했어야 할 대상은 새튼의 학설과 논문을 갖고 문제삼아야 하는게 아닐까요?
이렇듯 과학은 정-반-합.. 다시 정-반-합,
이런 식으로 과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검증되어가는 순환논리 구도로 얽혀있는 자연스런 이치의 산물입니다.
비전문가인 일개 피디가 果實과 업적에 눈멀어 오기어린 횡포로 생명공학의 꽃망울을 왜 잔인하게 꺾어 놓았나요?
댓글목록
내가 나이키를 모르겠습니까? 자산이 많다는 게 그리 대단합니까? 나이키는 본질적으로 수억개의 신발가게의 조합일 뿐입니다. 나는 그 가치 개념을 말하는 것입니다.규모가 큰 신발가게일 뿐이죠.
자본은 목적일 수가 없습니다.자본주의가 목적일 수가 없듯이..그러나 인간생명은 숭고한 가치입니다.목적을 뛰어넘은 초월적인 가치지요.한 생명은 우주보다 더 넓다고 하지 않나요? 난 가치 개념에서도 경제 가치, 경영 가치 이런 것이 생명 가치에는 절대 범접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에 나이키를 신발가게로 비유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