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기능의 자유로운 관점에서 본 언론과 국민..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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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프라이즈
언론 카르텔 VS 국민 상식의 대결
언론의 문제는 단순히 조중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겨레, 오마이, 데섶, 엠비시도 조중동 못지 않은 병을 갖고 있다.
단지 그들이 한 때 우리편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몰랐을 뿐이다.
이번 사건이 언론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고질적 문제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데일리섶에도 겨우 문제의 근원을 미국과 유럽에만 돌리려는 얄팍한 글들만이
있을 뿐이고, 이번 사건이 근본적으로 언론의 문제라는 지적이 전무하다.
하재근의 미국 타령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기만적 술책일 뿐이다. 왜 그럴까?
이번 사건이 비상식적인 언론에 대한 국민 상식의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고,
이것이 언론독재에 대한 위협으로 흐르자,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동업자들이
암묵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섶도 조선도 이 사태의 본질에 대해서는 질끈 눈을 감고,
여전히 문제는 황우석의 비윤리성이며,
국익을 위해서 진실에 눈을 감을 수 없다는 헛소리만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익을 손상했기 때문에, 엠비시가 잘못했다는 일부 국민들의 지적은 틀렸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쇼비니즘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이번 사태에서 언론 보도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문제점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분별할 수가 없었고,
생각해 낼 수 있는 논리가 '국익'이라는 거였다.
그들이 말하는 '국익'이란, 언론의 부당한 보도를 지칭하는 기호일 뿐,
진짜 쇼비니즘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국익 타령은 이 나라 언론에 진짜 문제점을 지적하는 자가 한 명도 없다는,
슬픈 현실을 반영하는 상징일 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엠비시, 오마이 등의 한국 언론이 객관적 보도라는,
언론이 가져야만 하는 최대의 직업윤리를 내팽개치고,
선정성으로 신문을 팔아먹으려는 의도나 또는
자신들이 가진 단편적 이데올로기적 관점을 강요하거나
자신들의 권력을 확대재생산하려는 의도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황우석이 저지른 윤리나 법률 문제는 없다.
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집단은 네이처나 사이언스 지인데,
이것은 그들간의 문제일 뿐, 한국의 기자들이 나서서 제기할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언론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 직업윤리를 망각하고,
선정성으로만 흐르는 한국 언론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언론 카르텔 VS 국민 상식의 대결
언론의 문제는 단순히 조중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겨레, 오마이, 데섶, 엠비시도 조중동 못지 않은 병을 갖고 있다.
단지 그들이 한 때 우리편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몰랐을 뿐이다.
이번 사건이 언론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고질적 문제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데일리섶에도 겨우 문제의 근원을 미국과 유럽에만 돌리려는 얄팍한 글들만이
있을 뿐이고, 이번 사건이 근본적으로 언론의 문제라는 지적이 전무하다.
하재근의 미국 타령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기만적 술책일 뿐이다. 왜 그럴까?
이번 사건이 비상식적인 언론에 대한 국민 상식의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고,
이것이 언론독재에 대한 위협으로 흐르자,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동업자들이
암묵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섶도 조선도 이 사태의 본질에 대해서는 질끈 눈을 감고,
여전히 문제는 황우석의 비윤리성이며,
국익을 위해서 진실에 눈을 감을 수 없다는 헛소리만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익을 손상했기 때문에, 엠비시가 잘못했다는 일부 국민들의 지적은 틀렸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쇼비니즘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이번 사태에서 언론 보도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문제점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분별할 수가 없었고,
생각해 낼 수 있는 논리가 '국익'이라는 거였다.
그들이 말하는 '국익'이란, 언론의 부당한 보도를 지칭하는 기호일 뿐,
진짜 쇼비니즘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국익 타령은 이 나라 언론에 진짜 문제점을 지적하는 자가 한 명도 없다는,
슬픈 현실을 반영하는 상징일 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엠비시, 오마이 등의 한국 언론이 객관적 보도라는,
언론이 가져야만 하는 최대의 직업윤리를 내팽개치고,
선정성으로 신문을 팔아먹으려는 의도나 또는
자신들이 가진 단편적 이데올로기적 관점을 강요하거나
자신들의 권력을 확대재생산하려는 의도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황우석이 저지른 윤리나 법률 문제는 없다.
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집단은 네이처나 사이언스 지인데,
이것은 그들간의 문제일 뿐, 한국의 기자들이 나서서 제기할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언론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 직업윤리를 망각하고,
선정성으로만 흐르는 한국 언론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