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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주 선배님께서 제 입장을 물어 보셨기에 아래에서 제 생각을 정리해 봤습니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나이키와 황우석 박사>
지난 96년 미국 잡지 (라이프) 6월호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은 한 다국적 기업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그 회사의 이름은 다름아닌<나이키>社 였다. 그 잡지에는 12살짜리 소년이 나이키 상표가 찍힌 축구공에 바느질을 하고 있는 사진과 파키스탄의 시알콧 지역의 아동노동을 비판하는 기사가 함께 실렸다. 이 후, 각종 매체들이 앞다퉈 이 사진을 인용하며, 나이키 제품이 아동 노동으로 만들어졌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 뉴스는 곧 미국과 유럽 사회를 들쑤셔놓았다. 월드컵 경기장부터 동네 축구장까지 전세계를 누비며 아이들에게 꿈을 주던 수많은 축구공이 대부분 어린이들을 착취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충격적이었다. 미국 소비자 단체들은 어린이 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발표를 잇따라 내놓았다. 노동조합들과 시민단체들은 시알콧지역에서 생산된 축구공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이라는 광고 문구를 빗대 ‘어린이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켜서라도 무조건 생산하고 보란 얘기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전혀 대응할 준비가 돼 있지 않던 나이키는 상황파악조차 제대로 못한 채 허둥댔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겠다며 축구공을 팔던 기업 나이키는, 순식간에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에게 강제로 바느질을 시켜 축구공을 생산해 비싸게 파는 악덕기업의 이미지로 인식되고 말았다.
이 사건 이전까지 나이키사는 지난 72년 Blue Ribbon Sports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래, 디자인과 마케팅만 본사에서 하고 생산은 대부분 제3세계 국가들로부터 아웃소싱하는 그 당시로는 아주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승승장구했던 회사였다. 이 사업모델을 채용한 후 나이키는 경쟁사에 비해 대폭적으로 생산 비용들을 낮추었고 따라서 탁월한 이익을 시현하며 일약 그 분야의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나이키는 상상력, 창의력, 젊음, 꿈, 세계화 등과 같은 신선한 이미지의 단어는 모두 독점하고 있는 그런 기업이었다. 그런 나이키사에게 그 한장의 사진은 소비자들에게 이 모든 이미지가 거짓이었다는 배신감을 안겨다준 것이다. 당연히 브랜드 이미지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또한 재무적 측면으로도 98년 나이키사의 영업이익은 반토막이 났고, 그 해 주가는 40% 가까이 떨어지는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되었다.
이 무렵 나이키에게 닦쳤던 가장 큰 도전은 윤리와 책임이었다. 세계화가 가져다준 효율성도 상상력도, 다국적 기업의 경영이념이던 주주 중심주의도, 부도덕한 경영행위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사회의 물결 앞에 무릎을 꿇었다. <뉴욕타임스>나 CNN에 나이키의 부도덕성을 드러내는 기사가 나올 때마다 주가와 매출은 추락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곧바로 Micro Soft社 부터 마리아 에이텔이라는 신임 부사장을 영입하면서 나이키사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그녀는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활용하였다. 그 이전까지 우리회사의 책임이 아니라 하청업체에서 잘 못한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려던 자세에서 입장을 바꿔, 회사 공급망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의 잘 못을 인정하고, 과거 하청업체의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아동들을 위한 사회보호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교육훈련 및 재정적 지원까지 제공하였다. 또한 아동노동이 적발된 하청업체에게는 즉각 중단을 지시하되 그 아동에게는 임금을 계속 지급하고, 법정근로 연령에 달할 때까지 학비를 지원토록하는 파격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후 나이키는 현재까지 공급망 관리 분야에서 전세계적인 Best Practice가 되었고, 시장규모가 15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운동화 시장의 40%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었다.
최근 황우석 박사의 연구원 난자 제공 문제를 접하면서 나는 이 나이키사의 아동노동 사건을 반사적으로 떠올렸다. 물론 나는 황박사의 그 사건에 대해 진위를 파악할 만한 정보도 분석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이미 황박사의 기자회견에 밝혀 진 것 처럼 연구원의 난자 제공이 사실인 이상, 그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앞서 언급된 나이키 사건을 몇가지 점에서 벤치마킹하여 이번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시대의 영웅을 더욱 진정한 세계적 영웅으로 거듭나게 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선 첫째로, 경제 업적주의적 사고방식을 절대화하는 신념체계를 버려야 한다. 수단이야 어쨌든, 방법이야 어쨌든 상관없이 과업만 달성하면 된다는 신념체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이다. 서양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정해진 과정을 따라 일을 진행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결과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절차의 정당성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양자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생각때문이다. 나이키의 사례에서 보듯 그 회사가 아동노동을 통해 아무리 이익을 극대화하고 기업의 외형을 키우고 성장을 거듭한다고 하더라도, 그 방법 상에서 비윤리적 문제를 갖고 있다면, 그 회사의 이익은 지속가능할 수 없고 따라서 회사 역시 장기적으로는 존속할 수 없다는 이치를 깊이 음미해 봐야 한다. 더군다나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고 사업을 전개하려면, 답답하고, 고루하고, 진부하게 느껴지는 이 윤리의 문제에 대해 더욱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황박사팀은 업적과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연구 과정상의 콤플라이언스를 명백히 어긴 셈이다.
둘째, 이 점에 대한 잘못을 솔직히 인정한 마당에, 향후에는 나이키사처럼 더욱 철저한 윤리지침을 마련하여 이를 전세계에 홍보하고 알림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 있는 전략이 시급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정부 소관부처와 관련 기관들이 보다 정치한 생명윤리 기준과 절차를 세워 비록 생산성, 성과, 시간등의 정량적 측면의 지체가 발생하더라도 정성적 측면이 훼손되지 않도록 더욱 철저한 관리,감독이 이루어져야 한다. 나이키사의 예를 타산지적으로 삼아, 기업 윤리 측면의 worst practice를 best practice로 승화하려는 치열한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셋째, 국수주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황박사가 이룬 업적은 이미 우리나라를 뛰어 넘어 전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이 업적이 우리만의 잔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공유될 수 있는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려면 국경의 편협한 울타리에서 이제 뛰쳐 나와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야말로 지구 상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경제체제로 최단기간의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각인된 여러가지 신념체계, 경제관, 국민의식, 윤리관 등은 글로벌한 측면에서 판단하였을 때, 설득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경우가 참 많다는 점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략적 측면에서 황박사의 위업을 진정으로 국제적 상품으로 발전시키려 한다면, 우리의 방식도 일부는 양보하고,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의 신자유주의피해의식도 극복할 때, 비로서 선진 여러나라들과의 바람직한 파트너쉽을 모색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논의가 방송과 신문으로 양분되고, 그리고 각각에 동조하는 정치이념의 전장으로 확전되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쪽에서는 황박사를 영웅으로 묘사하고, 다른 쪽에서는 황박사를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불투명한 인물로 묘사하려는 이분적 시각을 또한 경계한다. 나는 영웅만들기와 마녀사냥 모두 비논리적 사고와 비합리적 행동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극단주의 또한 이성주의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 보다는 우리 국민들이 보다 냉정하게 양자의 보도에 대해 이념 중립적인 태도, 보다 차분한 자세를 견지하며 시시비비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