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록(88회) 선수[고대-포항-광주상무] 전역 신고 인터뷰
본문
- 충성! 전역을 신고합니다. 광주 상무 김상록
- [한국프로축구연맹 2005-11-14 11:32:02]
광주 상무의 김상록(26)은 축구 선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는 군인이다. 이런 신분상 특수성은 그와 인터뷰를 추진하는 과정 중에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헌병의 검문을 통과해 낯선 공보관을 찾아간다거나 여기저기서 “충성!”하고 크게 들려오는 목소리 속에서 오늘 그를 만나면 우선 계급이 무엇인가를 물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김상록이 나타났다.
오른편 어깨 밑에 붉은 막대기 네 개가 선명히 보인다. 햇살이 좋았던 잔디위에서 한 시간여 대화를 나누며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김상록은 분명히 군인이었지만 역시 그는 여지없이 축구 선수였다. 이제 제대를 2주 앞둔 김상록을 10월 31일 육군 체육 부대에서 만났다
- 어느새 병장이 되어 있군요. 제대가 얼마나 남았나요?
11월 말에 제대하게 됩니다. 한 달여 남았습니다. (역시 떨어지는 낙엽에도...) 하하 아니요. 솔직히 백일 남겨 두고 있을 때는 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시간이 되게 안 간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한 달 앞으로 다가 오니까 도리어 덤덤해 지네요.
- 군 생활 이야기 먼저 해볼까요? 상무 소속의 선수들이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궁금해 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일반적인 드라마나 영화에서 비춰지는 모습, 그러니까 부대에서는 군화를 닦는다거나 뭐 다리미질 같은 그런 일보다는 아무래도 훈련이 많습니다. 군화도 저희가 닦고, 솔직히 이병 때까지는 제가 닦았는데 일병 때부터는 후임 병이 해주던데요. 다리미질은 세탁실에서 해주구요.
일반 부대원들이 받는 군사 훈련은 많지 않고 겨울 때 GOP를 갔다 오고 정기적으로 사격을 하는 정도입니다. 보통은 6시에 기상해서 6시30분 까지 연병장에서 점오하고 7시 30분 에 식사를 합니다.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에 운동을 시작해서 11시 30분에 운동이 끝나면 다시 점심 식사를 합니다. 오후에 다시 훈련하고 저녁을 먹고 나면 개인훈련이 있습니다. 오전 오후 운동은 선수들하고 전술 훈련을 하는데 저녁훈련은 웨이트 트레이닝 같은 개인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 남는 여가 시간은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저희는 다른 구단에 속한 선수들처럼 게임 같은 건 못하고 대신 이번에 부대장님이 오시면서 내무실에 케이블 TV를 달아 주셨습니다. 일반 공중파 방송보다는 유럽 축구를 자주 볼 수 있게 되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토튼햄 경기를 주로 봅니다. 책을 읽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요. 제 경우는 아무래도 축구를 자주 보게 됩니다. 다른 팀 경기도 재방송되면 볼 수 있기 때문에 짬나는 대로 시청을 하고 있어요.
저희는 4인 1실로 침대가 4개 있고 병장 둘에 이병 둘이 함께 지내는 형식입니다. 계급보다는 사실 형, 동생하고 지내요. 내무실내에 TV도 있고 냉장고도 있고 다른 부대랑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좋지요.
식당에서는 가끔 인터넷도 할 수 있는데 저는 잘 안하는 편이에요. 정말 가끔 할까 말까? 좀 하긴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손에 잘 안 잡히네요.
- 포항에 입단할 당시 드래프트 1순위로 상당한 주목을 받는 위치였는데 예상보다 빨리 상무에 입대했습니다.
- 포항에 입단할 당시 드래프트 1순위로 상당한 주목을 받는 위치였는데 예상보다 빨리 상무에 입대했습니다.
막상 대학 때는 골도 넣고 어시스트로 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기는 했었는데 일단 프로에 오니까 몸싸움에서 문제가 많이 생겼어요. 대학 때 보다는 훨씬 강도가 있고 힘이 들다 보니 적응에 조금 힘들긴 했습니다. 그냥 완전히 나쁜 결과는 아니었기는 했지만 사실 제가 드래프트 되었던 순위에 비하면 좋은 활약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제가 프로에서 3년을 뛰고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동국이가 입대할 때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근데 구단 사정도 있고 하다 보니 1년을 더하고 가게 되었거든요. 사실 늦게 입대하면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아서 좀 빨리 가고 싶었는데 계획보다는 1년 정도 늦은 셈이었습니다. 3년을 뛰고 나니까 얼른 갔다 와서 다시 한 번 시도해 보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 입대 전에 두려움은 없었습니까?
그때 당시에 제대한 친구들을 보면 좀 많이 부러웠지요. 입대 전에는 특히 훈련소 들어가기 전에는 많이 힘들 것 같아서 약간 걱정도 되고 부담도 많이 있었어요. 훈련받고 하면 몸도 안 좋아 질 텐데 적응할 수 있을까 하고 근데 와서 4,5개월 지나니까 사실 군사 훈련보다 운동을 위주로 하잖아요 여기는. 정말 힘들다고 말 할만한게 없는 거예요. 운동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시고 여러모로 운동하는 선수들한테는 정말 좋습니다.
- 같은 맥락에서 상무에서 다소 침체기에 있던 선수들이 부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상무에 오면 무엇보다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부분이죠. 여기 입대하는 친구들이 대부분 좋지 않은 상황에 빠져 소속팀에 있을 때는 경기를 잘 뛰지 못하던 선수들이 많은 편인데 상무에 오면 일단 출전 기회가 주어지니까 그거만한 게 없거든요.
계속 경기에 나가다보면 실력도 늘고 무엇보다 자신감이 진짜 많이 생겨요. 또 뭐 오기 전에 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선수들이 많다보니까 동질감도 있고 그렇습니다. 저도 진짜 자신감을 많이 얻었습니다. 프로리그에 참가해서 프로 선수들과 겨루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참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운동 이외에는 다른 것은 신경 쓰지 못하는 환경이니까 몸 관리가 확실하게 되구요.
- 군대를 나이순으로 오는 것은 아니라서 나이가 많은 선배가 오는 경우도 있을 텐데 여러모로 어려움은 없을까요?
그것도 원래는 아무리 예전에 알던 선배라도 일단 한 달 동안은 어느 군대랑 똑같습니다. 군기도 좀 잡고 그러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계급은 좀 다르지만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 줍니다. 저희는 일단 리그에 참가해서 경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상명 하복 관계보다는 우선 동료라는 의식을 가지도 편하게 생활하는 것이 경기력도 좋아지기 때문에 그런 면이 있지요. 후임이라고 뭐 속칭 “갈군다” 이런 건 없는 게 어차피 계속 운동하던 친구들이라서 서로 힘든 걸 다 이해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건 없습니다.
- 그래도 군대니까 훈련이 막 스파르타 식일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그런 거 전혀 없어요. 프로랑 똑같이 훈련하고 있습니다. 이강조 감독님이 말씀은 별로 없으신데 개인적으로 저한테는 작년부터 기회를 많이 주셔서 항상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선수단 관리도 정말 잘하시고 경기 전이나 경기 중에도 게임운영을 잘하신다는 생각이거든요. 밖에서 보기보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선수들을 위한다는 마음이 크세요. 틈틈이 간식도 직접 사다 주시고. 군대에서 때리는 거 이런 거 이젠 영창감이에요.
- 연봉이 말입니다. 입대 전에는 사실 선수별로 격차가 크잖아요. 그게 선수 자존심 문제도 되고 그러다 이렇게 군대 월급 받으면 어떨까 궁금해요. 지금 월급이 얼마죠?
지금 4만 8천원 정도 되요(웃음) 돈에 대한 개념이 완전 바뀌었습니다. 입대 전에는 우선 수중에 돈이 많다 보니까 별 생각 없이 좀 헤프게 썼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돈의 소중함에 대해 돈의 가치에 대해 많이 깨달았지요. 많이 알뜰해 진 것 같아요.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PX에서 간식도 사먹고 (종류가) 음료수를 주로 사먹는데 쥐포도 가끔 사먹고 또 부대에서 8시면 간식이 나와요. 과일도 나오고. 그렇게 입대 전에 느끼지 못했던 재미가 있어요. 예전에 몰랐던 것도 많이 알게 되고.
일단 사람이 힘들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를 많이 배웠어요. 입대 전에는 어려운 일이 닥치면 나약하게 받아 들였는데 여기서 많이 강해 졌어요.
- 좀 어려운 질문일수도 있는데 광주 상무 선수들에게 군대의 의미란 어떤 걸 까요?
입대 전에는 군대라는 것에 대해서 전혀 모르잖아요. 막상 입대를 해서 지나보니 처음에 비해 좋은 의미의 군기라는 것이 많이 잡히고 밖에서 보면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군인이라는 자부심이 느껴질 때도 많아요. 다른 병사들이 훈련을 받을 때 저희는 특례를 받아가지고 계속 운동하고 훈련할 수 있고 프로 리그에도 참여 할 수 있다는 게 엄청난 의미거든요.
많은 선수들이 어떻게 해서든 군 면제를 받고 싶어 하고 꼭 선수가 아니라도 군 입대를 앞둔 친구들이 군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꽤 많잖아요. 무조건 손해 본다고만 생각을 하고. 그렇게 들어오기 전에는 막연하겠지만 이곳에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고 나의 동료가 되면 즐거운 일도 많이 생깁니다. 또 운동선수 같은 경우 상무라는 존재는 정말 너무 좋은 기회를 주고 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저 자신한테는 경기도 나갈 수 있고 그래서 의미가 큽니다.
모르겠어요. 제가 포항에 가면 또 포항을 위해 경기를 해야 하겠지만 진짜 여기 상무에 있는 동안에는 진심으로 사력을 다해 뛰고 싶거든요. 작년처럼 좋은 성적을 내고 싶었는데 진짜 마음이 아파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정말 상무에 있는 동안은 광주를 위해 목숨을 걸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어요.
- 그렇다면 사실 광주의 서포터들은 이별을 알고 서포팅을 하는 건데 선수들은 어떤 심정일까요?
그게 저희 팀의 특성상 선수들도 상식이형이나 동국이처럼 1년 같이 있다 헤어지게 되잖아요. 근데 저희가 2년을 조금 넘기면 역시 서포터하고 헤어지게 됩니다. 그걸 알면서도 광주에서 서울까지 와서 응원해 주시고 다른 구단처럼 팬 미팅 같은걸 자주 할 수도 없는데 계속 응원해 주시는 걸보면 진짜 마음이 그렇지요. 진짜 고맙고 미안하고. 사실은 저희보다 팬 분들이 진짜 힘들어 하실 거예요. 타 구단 팬들이라도 좀 알아 주셨으면 해요. 진짜 힘들게 응원해 주고 있구나 하는 걸.
- 역시 상무의 효과인지 현재 데뷔 이후 최다 골을 기록 중입니다.
제 개인으로 놓고 보면 그렇긴 한데 올해 작년보다 성적이 나빠서 좀 그래요. 올해 안 좋으면 병장들이 잘 이끌지 못한다는 이야기 같은 건 진짜 듣기 싫고 제대하기 전까지 팀 성적을 확실하게 끌어 올리고 싶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제 나름대로 노력은 했는데 그래서 그런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많이 안 좋습니다. 경기 나가기 전에 우리 병장들이 (심재원, 정유석 박종우, 박윤화, 박정환...) 저희끼리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 우리가 뭉쳐가지고 팀 성적을 올리고 제대하자. 근데 마음 같이 않네요.
- 광주 상무는 까다로운 팀이라고 해요. 그 도깨비같은 경기력의 원인은 뭘까요?
저희가 선제골을 넣으면 거의 지지 않는데 반대로 선제골을 허용하면 이상하게 작년부터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고 막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요. 작년부터 인천이랑 대전, 부산이 저희를 좀 힘들어 하곤 했어요. 저희는 전혀 그렇게 생각 안했는데 징크스라고 할까? 상대팀이 좀 어려워하더군요. 반대로 저희는 대구랑 부천 경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지난 수원 전에서도 정말 기뻤던 게 입대 하고 수원 홈에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는데 그날 이겨서 정말 좋았습니다.
- 김상록 선수의 플레이를 보면 정말 스피드와 드리블이 남 다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결이라도 있을까요?
글쎄 전 별로 잘한다고는 생각안하고 있어요. 근데 제가 사실 7살 때부터 공을 좀 찼습니다.(웃음) 우연히 신설동에 있는 숭신 초등학교 5학년 때 반 대항 축구를 하다가 축구부 감독님의 권유로 축구를 정식으로 시작하게 되었지요. 사실 저희 형도 지금 축구를 하고 있거든요.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인천 한국 철도에 있는 김상균이라고 형이 먼저 하고 있다 보니까 또 나이가 한 살 차이 밖에 안 나고 어릴 때는 좀 경쟁심도 있고 함께 놀기가 좋았어요.
집에서는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아들 둘이나 축구를 하면 솔직히 좀 그렇잖아요. 경제적으로 힘든 면도 있고 또 하나가 운동 선수하면 또 하나는 뭐 공부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감독님이 부모님 설득을 많이 하셨거든요,
사실 나만의 드리블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고 수비 발을 보면서 뭐 그런 걸 누구나 다하는 건데. 중학교 때 남들 집에 갈 때도 훈련을 좀 많이 했어요. 근데 너무 혼자만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도 있었고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패스 타임도 좀 빨라야 하는데 경기를 하다보면 늦는 경우도 있고 스스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하는데 아직 발전해야할 부분이 많습니다.
- 늘 축구가 즐거울 수는 없잖습니까? 진짜 그만두고 싶다. 다른 일 해보고 싶다 이런 때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정말 운동을 그만 두려고 했던 적이 딱 한번 있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인데 아버지가 갑자기 뇌출혈로 돌아가셨을 때였는데요. 원래 중앙고등학교 있을 때 고려대를 안 가려고 했었거든요. 먼저 간 형들이 너 여기 오면 게임 뛰기 힘드니까 경기 나갈 수 있는 다른 학교를 가라고 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가셔서 그냥 도장을 찍고 오신 거예요.
아버지는 좋은 학교를 보내고 싶으셨으니까... 입학하고 진짜 좋아 하셨거든요. 여기저기 막 자랑하시고 그러다 2학기 때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니까 내가 학교를 갈 의미가 없게 된거잖아요. 아버지를 위해서 다닌 학교인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그냥 학교를 안 나가 버렸어요. 제가 철이 없어서 그랬는지 만사가 다 싫고 귀찮고 힘들기만 하고. 다 그만 둘 생각이었는데 어머니랑 형이 아버지가 하늘에서 너 보고 계신다 열심히 해라. 그래서 마음을 다시 잡고 한 달 뒤에 학교를 갔는데 그때 마지막 선수권 대회가 있었습니다. 그 대회 결승에 올라가서 제가 연장에서 골든골을 넣어서 우승을 했거든요. 그 순간 아버지 생각이 너무 나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날 이후로 계속 축구를 할 수 있었어요.
다음에 또 좀 뭐 힘들거나 그만둔다고 했다기보다 마음고생을 했을 때가 프로 1년차 때 초반기에 골 도 좀 넣고 좀 매스컴을 타고 했었어요. 당시에 히딩크 감독님이 오셔가지고 천수랑, 이을용 선배님이랑 저랑 막 들어간다고 이야기가 많이 나왔었는데 한번은 들어 갈 줄 알았어요. 근데 한 번도 못 들어가서 정말 아쉬웠지요. 그때 못 들어가고 나니 저 자신도 1년 차 때 보다 활약이 좋지 않아서 답답하기도 하고 심리적 슬럼프가 좀 왔었지요.
- 한 가지 궁금한 게 인터넷에 김상록 선수 검색을 해보면 이동국 선수에 대한 발언(이동국에게 건방지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들의 건방진 행동이 이동국에게 통용되지 않아서 하는 말일 것이다.....) 이 계속 나옵니다. 그 코멘트가 사실이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예, 작년인가 그때 그런 내용의 말을 한 기억이 나네요. 저랑은 사실 포항에 입단 했던 2001년부터 연락하고 계속 잘 지내왔기 때문에 뭐... 좀 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출생년도는 79인데 생일이 빨라서 학년으로는 하나 위거든요. (이동국 선수와의 호흡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좋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동국이가 패스 잘 안 넣어준다고 불만도 하고 좀 티격태격 했거든요. 잘 맞을 때도 있는데 뭐 아니 잘 맞아요. (웃음)
- 혹시 인터넷에 떠도는 김상록 선수 별명이 뭐 꽃사슴, 루돌프란 걸 아세요?
예. 뭐 기분 좋죠 뭐.(남자다운걸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니요 좋아요. 이런 별명 마음에 듭니다. 중학교 때는 미키 마우스라는 별명도 있었는데 그때도 좋았어요. (웃음)
- 상무 내에서 제대를 하고서도 계속 같이 뛰어보고 싶다는 선수가 있을까요?
서덕규 선수랑 여기 와서 많이 친해 졌어요. 덕규 랑은 포지션 상 좀 거리가 멀다보니까 경기 중에 자주 마주할 일은 없는데 경기장 외에서는 자주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제대하더라도 한번 같이 만나서 볼 차고 싶고 어떻게 하면 여자 친구를 만들 수 있냐는 이야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 2004년에 홍명보 자선 경기에 출전을 했었는데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었는지 궁금해집니다.
2002년에 명보 형이 일본에서 돌아 오셔서 포항에 있으셨는데 저를 바로 알아 보시더라구요. 그게 제가 대학 4학년 때 일본에 가서 가시와 레이솔과 연습 경기를 간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정말 잠시 뵈었는데 바로 저보고 “너 그때 7번 달 던 애 아니었냐?” 하고 물어 보시는 겁니다. 워낙 말이 없으신데 “어.... 너였구나.”하시면서 그 이후로 “야 상록아! 당구 한 게임 치러갈까?” 라고 해주셔서 함께 당구도 치고 또 “뭐 어떻게 고스톱이라도 한번 칠까?”라고 하셔서 인터넷 PC방에서 저는 이쪽에 선배님은 저쪽 구석에 앉으셔서 서로 게임도 하고. 다른 분들한테는 원래 안 그러신데 저한데 참 잘해주셨어요.
그때 저는 숙소 생활을 하고 형님은 댁에서 생활하셨는데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전화가 왔어요. “상록아. 운동 시간이 몇 시냐?” , “예 3시입니다.” “어, 그래” 원래 선수들한테 훈련 일정표가 나오는데도 매번 전화해서 물어 주시고 저한테는 정말 신경을 많이 써주셨어요. 진짜 그럴 때마다 충성심이 완전 가슴 밑바닥부터 끌어 올라오죠.(웃음)
그리고 다시 12월에 미국으로 들어가실 때 외부에 나가서 제가 직접 뵙지를 못했었는데 와보니까 형님이 떠나시기 전에 제 방에 축구화를 다섯 켤레나 사서 신으라고 주고 가셨어요. 미국에 계실 때도 전화도 해주시고. 원래 무뚝뚝하신데 한번 씩 전화 드리면 자상하게 받아 주시고
그러다 2004년에 뵈었을 때 정말 말이 짧으시거든요. 근데 “한 게임 뛰어라!” , “예? 무슨 게임이요?”, “어 그냥 12월 26일에 경기 있으니까 와서 뛰어” 그래서 “예” 하고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게 자선 경기였어요. 그렇게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코치 되셔서 전화 드렸더니 “빨리도 전화 한다.” 하시더라구요. 사실 제가 부대에 있으니까 일반인처럼 자유롭진 못하잖아요. 그래서 며칠 늦게 전화를 드렸거든요.
하석주 코치님도 제가 2002년까지 저랑 룸 메이트셨는데. 그때 저는 좀 어리고 그래서 드라마도 보고 싶고 그런데 코치님은 골프를 보셔가지고 제가 막 옆방에 가서 티비 보고 그랬었지요. 정말 저한테 잘해 주셨어요. 저랑 띠 동갑이셨는데 이번에 수원 전 끝나고도 수고 했다고 해주셨어요.
- 보통 집에서 형은 위로 형이 없으니까 형을 좋아하고 막내는 밑으로 동생이 없으니까 동생을 좋아하는데 김상록 선수는 형님들이 참 예뻐하셨네요.
사실 제가 동생들을 잘 못 챙기는 성격이거든요. 그게 하도 어렸을 때부터 형들을 따라다니면서 놀다보니까 그게 워낙 익숙해져 있어서 형들 따라다니기만 하고 동생들을 잘 못 챙겼어요. 그러다 여기 입대하고 나서 많이 좋아 졌습니다. 지금은 포항에 황진성 선수도 귀여워하고 뭐 후배들 잘 해주려고 노력해요. 워낙 순수하고 착하고 사실 진성이가 좀 내성적인데 제가 활발하게 만들려고 교육중이지요.
- 이제 그런 추억이 있고 친한 동료가 있는 포항에 복귀하게 됩니다. 기분이 묘할 듯싶어요.
정말 제대가 기쁘지 않다고 하면 그건 100% 거짓말이잖아요. 하지만 걱정도 많이 되요. ‘포항에 돌아가서 잘할 수 있을까? 아직 파리야스 감독님을 한 번도 뵌 적이 없고 제 포지션에 따바레즈나 웰링턴 같은 좋은 선수가 있으니까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요.
그래도 내가 여기서 배운 것이 힘든 일을 이겨내는 법이잖아요. 자신 있습니다. 새로운 각오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할 겁니다.
K-리그 명예기자 홍성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