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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고백부터 해야겠다. 사실 본 리포터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조병준의 팬이었노라고. 우연히 만나게 된 그의 책 한 권에 반해, 인도 여행을 꿈꾸기도 했고 막연하게나마 인생의 방향을 생각하기도 했고 알고보니 그가 까마득한 같은 과 선배라는 말에 흐뭇해 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제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조병준이 누구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처럼 조병준으로 인해 무언가 삶을 바꿀 계기를, 삶을 대하는 마음을 새로이 갖게 된 사람들 또한 ‘많다'. 소문도 내지 않은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글마다 수십개의 덧글이 달리고, 중년의 의사가 그의 책 때문에 “조병준이라는 사내와 사랑에 빠져”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밤새워 쓰게 할 만큼, 그에게는 사람을 끌어들이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그에게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
그는 ‘글 쓰는 남자'다. 조병준은 1992년 시인으로 등단한 후, 문화평론서 <나눔 나눔 나눔>, 에세이집 <제 친구들과 인사하실래요?>, <길에서 만나다>,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등을 써냈고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다. 초등학교 전에 한글을 깨치고 동네에 있는 책이란 책은 다 봤고, 책 속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학교 끝난 후 집에도 가지 않고 골목길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아 어둑해질 때까지 책을 보던 소년에게 ‘나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자라난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중학생이 된 소년은 영화에 푹 빠져 연출가를 꿈꾸기도 했다. 글 쓰는 사람과 연출가는 소년의 꿈이 되었다. |
소년은 대학에 갔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몇 년에 걸쳐 ‘방황'했다. 조그마한 신문사 생활을 하기도 했고, 공부를 계속 해볼까 싶어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했고, 방송개발원 연구원, 방송 구성작가, 극단 기획자 등 많은 일들을 시도하고 해보고 그만두기도 했다. “세상에는 내가 원하면서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내가 원해도 하지 못하는 일이 있어.” 사람이 모인 곳 어느 하나 정치 아닌 곳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남에게 상처 받는 것도, 상처 주는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 속에 귀뚜라미 한 마리가 들어있는지 계속 ‘이게 아니야, 이게 아니야'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래서 떠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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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이웃들과 오프에서의 모임도 생기고, 기존에 알던 친구들과도 안부를 주고 받으며 만남이 더 빈번해졌다. 처음 생각보다 블로그 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든다고 불평하면서도 그는 썩 재미있어 하는 눈치다. “내 글만 올리는 게 아니라 이웃들도 찾아가봐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려. 아까도 말했지만 give&take니까. 이건 내 삶의 원칙이기도 해. 글마다 리플이 평균 20~30개 정도 달리는데, 나도 내 블로그에 오는 이웃분들 블로그에 찾아가 글도 읽고 리플도 달아.” 사소한 덧글 이야기에도 사람냄새가 물씬 느껴진다. “받으려고 하지말라는 건 오만이야. 인간은 약한 존재거든. 주는 만큼 받고 싶은 거야. 내가 받지 않으면 주는 사람도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없어. 잘 받는 것은 이기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이타적인 행위야. 사랑받고 큰 사람이 사랑도 잘 줄 줄 안다는 말도 있잖아.” |
잘 받고, 잘 주는 것 이상의 소통의 노하우가 있을까 싶지만, 사람 사귀는 능력만큼은 전세계에서 검증받은 그인만큼 그만의 노하우를 좀 더 들어보자. 커뮤니케이션,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걸까? “우선, 뻔뻔스러워야 해요. 난 정말 얼굴에 철판구이를 해도 될 것 같아. 잘 받는다는 건, receive, 두 팔을 벌리고 나를 연다는 거지. 이야기를 듣는 것도 정말 중요해. 듣는 건 곧 받는 거야. 내가 마음을 열면, 정말 독종이 아니고서는 상대방도 마음을 열게 되어 있어.” 무언가를 받을 때에는 내면의 음모나 속셈을 생각하지 않고 잘 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단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얼마 전에 알게 된 분에게 받은 거라고. 주는 사람까지 행복하게 할만큼 기쁘게 받는 사람에게 뭔가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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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준, 그는 자신이 ‘뻔뻔하다'고 말하지만 의심 없이 나를 열고 잘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소중한 위안을 얻게 마련이다. 나를 여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그러다보면 하늘의 축복도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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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후, 예순 넘은 조병준은 환갑기념으로 세계일주를 하고 있을 것 같단다. 진짜 바라는 건, 여행자들이 머무르는 게스트 하우스를 차리는 것. “만약에 책 한 권쯤 대박이 나서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게스트 하우스 하는 게 꿈이긴 한데… 밤이면 소주 한 잔 같이 하면서 넌 어디에서 왔니, 어디어디를 여행했니, 뭐가 제일 재미있었니, 그렇게 얘기 나누면서 지내는 거지. 나는 나이 들어서 여행을 더는 못하겠지만 말이야.” 서울땅에서 게스트 하우스 차리려면 돈은 꽤나 많이 들겠지만, 그의 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서 그가 게스트 하우스를 차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를 만난 일요일 오후, 리포터는 지금의 기분을 누구에게든 나눠주고 싶을 만큼 행복해졌다. 사실 돈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 ||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 아버지, 어머니, 형, 조카 등을 비롯한 가족으로부터 친구, 동료, 유명인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사랑한 사람들, 그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야 다시 돌아온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붙들고 늘어지려는 생각에 저자는 지금의 자신을 만든 사람들을 파헤치기로 한다. 좋은 영향이었건, 나쁜 영향이었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을 보기 위해서이다. |
<나눔 나눔 나눔> 우리나라 카페에서 춤을 추다 경찰관을 만나면? 진술서를 써야 한다.‘유흥업소나 무도장이 아니면 춤을 출 수 없다'는 현행 식품위생법 때문이다.문화평론가 조병준씨는 <나눔 나눔 나눔>에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에 틈을 내는 자유로운 문화를 찾아 나선다. |
<길에서 만나다> 10여년간 그의 발 밑으로 지나간 수많은 길에 관해 말한 넋두리 모음집이다. 인도와 유럽을 여러 차례 여행하면서 만났던 사람과 풍경, 그리고 추억 이야기. 짧게 쓰인 글이 마치 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며, 자유로운 구성으로 전체적인 책의 느낌은 산뜻하고 맛깔스럽다. 동양의 인도와 서양의 유럽. 이 둘은 확연한 문화적 상이함을 갖고 있지만 저자는 이 두 문화 위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사람'과 '사랑'이라는 화두를 전한다.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의 따뜻한 마음은 어디에서나, 누구에게서나 만날 수 있는 것임을 들려 주고 있다. 올 컬러로 삽입되어 있는 낭만적 비주얼의 사진들이 각 글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 이상의 이미지도 함께 전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