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 교육의 장학생 또는 희생양?
본문
몇 해전 입학식 때, 나는 경악을 했습니다. 새로 부임하신 교장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제일 먼저 들려준 이야기가 40년전 중학교 입학식 때 와세다 대학출신의 교장선생님에게 들었던 말씀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똑 같다는 것에 그야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다만 그 사이에 앳된 중학생이 반백의 교사가 되었고 교장 선생님의 출신학교가 달라지고, 짧은 군인머리는 길어 졌으며 진한 고동색의 재건복은 넥타이가 봄바람에 팔랑거리는 양복으로 바뀌었을 뿐 입니다.
일제강점기 보다 긴 40년 세월이 지났건만 껍데기만 바뀌었을 뿐 알맹이는 여전히 전체주의 교육 패러다임에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 40년 만에 다시 들은 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세상에는 세부류의 인간이 있는데
첫째는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고
둘째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며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되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제 중학생이 되었으니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시기 바란다'는 뜻으로 좋게 생각-좋게 생각해야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고 그 대안도 만들어볼 수 있으니-합니다만
그런 분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학교를 다녔고
그런 분들을 교장으로 모시고 근무하고 있으니
전체주의 교사가 되지 않을 리 없습니다.
물론 이런 불편한 방식에 끊임없이 혼자 또는 같이 저항해 보기는 하지만
'알겠습니까?'하고 물으면 '녜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어야 만족해 하는 전체주의 교육 패러다임에 길들여진 교사입니다.
이런 교장 선생님의 말씀대로 한 아이들은 범생이가 되고, 그런 두목께 '받들어 총!'했던 사람들이 출세하여 큰 목소리를 내고 이 세상의 주류라고 우기다 보니
학교에도 꼭 필요한 선생님과 있으나 마나한 선생님 그리고 '부적격교사'로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고, 아이들도 그렇게 나누자고 선동합니다.
어쩌면 지금 부적격교사나 교원평가를 발상하고 수용하자는 분들은 대부분 식민.군국.군사정권의 폭압으로 떠 맡긴 전체주의 교육에 저향할 엄두는 커녕 철저하게 순응하여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린 전체주의 교육의 장학생들인 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권위주의 정권이 사주한 전체주의 교육 패러다임에 세뇌된 희생자들일 수 있습니다.
어찌 자기랑 같이 사는 사람들을 '그들이 서 있는 자리에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고 있어서는 안되는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단 말인가? 너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운 지고!
그러나 이젠 더 이상 그런 희생자를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특히 아이들 앞에 서야 하는 선생님들을 그렇게 만들면 아이들도 그렇게 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키워서는 절대 안됩니다.
그런 아이들이 커서 교장이 되고 2050년 중학교 입학식 때에도 똑 같은 훈화말씀을 할 것을 상상해 보십시요! 진짜 끔찍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 문제는 학교 만의 문제도 교육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 사회를 다시 개인보다 전체가 우선이라고 우겨서 신자유주의라는 가면을 쓴 전체주의로 몰고 가려는 부드러운 음모입니다.
너무 부드러워 시민단체나 개혁언론마져도 쉽게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아주 강력한 성능을 가진 음모입니다.
이런 음모를 분쇄하지 못하면 이 세상은 꼭 필요한 몇몇 사람과 대부분의 있으나 마나한 사람과 있어서 안되는 사람으로 넘쳐날 것입니다.
다만 그 사이에 앳된 중학생이 반백의 교사가 되었고 교장 선생님의 출신학교가 달라지고, 짧은 군인머리는 길어 졌으며 진한 고동색의 재건복은 넥타이가 봄바람에 팔랑거리는 양복으로 바뀌었을 뿐 입니다.
일제강점기 보다 긴 40년 세월이 지났건만 껍데기만 바뀌었을 뿐 알맹이는 여전히 전체주의 교육 패러다임에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 40년 만에 다시 들은 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세상에는 세부류의 인간이 있는데
첫째는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고
둘째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며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되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제 중학생이 되었으니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시기 바란다'는 뜻으로 좋게 생각-좋게 생각해야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고 그 대안도 만들어볼 수 있으니-합니다만
그런 분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학교를 다녔고
그런 분들을 교장으로 모시고 근무하고 있으니
전체주의 교사가 되지 않을 리 없습니다.
물론 이런 불편한 방식에 끊임없이 혼자 또는 같이 저항해 보기는 하지만
'알겠습니까?'하고 물으면 '녜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어야 만족해 하는 전체주의 교육 패러다임에 길들여진 교사입니다.
이런 교장 선생님의 말씀대로 한 아이들은 범생이가 되고, 그런 두목께 '받들어 총!'했던 사람들이 출세하여 큰 목소리를 내고 이 세상의 주류라고 우기다 보니
학교에도 꼭 필요한 선생님과 있으나 마나한 선생님 그리고 '부적격교사'로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고, 아이들도 그렇게 나누자고 선동합니다.
어쩌면 지금 부적격교사나 교원평가를 발상하고 수용하자는 분들은 대부분 식민.군국.군사정권의 폭압으로 떠 맡긴 전체주의 교육에 저향할 엄두는 커녕 철저하게 순응하여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린 전체주의 교육의 장학생들인 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권위주의 정권이 사주한 전체주의 교육 패러다임에 세뇌된 희생자들일 수 있습니다.
어찌 자기랑 같이 사는 사람들을 '그들이 서 있는 자리에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고 있어서는 안되는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단 말인가? 너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운 지고!
그러나 이젠 더 이상 그런 희생자를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특히 아이들 앞에 서야 하는 선생님들을 그렇게 만들면 아이들도 그렇게 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키워서는 절대 안됩니다.
그런 아이들이 커서 교장이 되고 2050년 중학교 입학식 때에도 똑 같은 훈화말씀을 할 것을 상상해 보십시요! 진짜 끔찍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 문제는 학교 만의 문제도 교육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 사회를 다시 개인보다 전체가 우선이라고 우겨서 신자유주의라는 가면을 쓴 전체주의로 몰고 가려는 부드러운 음모입니다.
너무 부드러워 시민단체나 개혁언론마져도 쉽게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아주 강력한 성능을 가진 음모입니다.
이런 음모를 분쇄하지 못하면 이 세상은 꼭 필요한 몇몇 사람과 대부분의 있으나 마나한 사람과 있어서 안되는 사람으로 넘쳐날 것입니다.
댓글목록
참교육을 표방하는 형식적인 명분론만 앞세워 교육 현장에 온갖 독설과 독선의 횡포를 퍼붓는 전교조가 대한민국의 교육 사회와 학교 교육을 병들게 만드는 현상을 촉발하는데 이에 대항하지 못하고 묵과하고 있는 현실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안따까울 따름입니다.
생각의 "틀" 을 바꾸어 우리모두 진정 못난사람 잘난사람 나누는것부터 퇴치하고 우리모두라는 슬로건아래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어 보도록 다같이 노력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