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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카타르의 奇跡(기적)'이 필요없게 되려면
- 정몽준 국제축구연맹 명예부회장
결과가 좋지 않자 여기저기서 한국 축구의 문제점이 새삼 거론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현실에 비해 기대가 너무 컸다. 한국 축구의 세계 순위는 57위다. 세계 11위인 벨기에와 겨뤄서 그 정도 성적이 나왔다면 그다지 실망할 것도 없다.
우리 축구에 대한 기대가 커진 것은 그동안의 좋은 성적에서 기인한 착시 현상 때문이다. 2002년 4강, 2010년 원정 16강이라는 성적은 우리 축구에 대한 기대감 인플레를 낳았다. 하지만 세계무대에서 우리 축구의 실력은 본선 진출도 쉽지 않은 수준이다.
1990년대 초반에 2002년 월드컵 유치 활동을 결심할 때만 해도 한국 축구의 인프라는 아시아에서도 바닥이었다. 경기장을 비롯한 하드웨어는 물론 선수들의 실력과 팬들의 열기도 내세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월드컵을 유치하면 우리 축구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에서, 무모하지만 유치 활동을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쓴 지 1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축구의 실력은 아시아에서만 선두권이다. 그나마 관중 수나 선수층 등 축구 열기는 하위권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 자체가 놀라운 기록이다.
우리가 연속해서 월드컵에 간 것은 축구뿐 아니라 국가 전체에도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 국민이 바깥세상에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면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 경기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은 그다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외 의존도가 90%를 넘는 국가이다. 바깥세상을 모르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지난 30여년간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바깥세상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좋은 기회였다.
축구는 가장 세계화된 스포츠이지만 대표적으로 민족주의를 먹고 사는 스포츠이다. 우리만 해도 K리그에는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도 국가대표 경기에는 재미를 느낀다. 특히 한·일전에는 더 많은 사람이 열광한다.
4년 후면 다시 월드컵이 돌아온다. 그동안은 어떻게 하다 보니 운 좋게 본선에 진출한 경우도 있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을 앞두고는 '카타르의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다. 우리의 본선 진출 탈락이 거의 확정적이었던 시점에 여러 가지 조합이 기막히게 맞아떨어져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올라가고 일본이 떨어진 그야말로 '사건'이었다. 이번에 다시 한 번 '카타르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많은 국민이 바랐다. 하지만 기적도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일어나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의 실력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그에 맞는 대비책을 세워야 할 때다. 4년에 한 번만 반짝 관심을 갖는 지금의 축구 열기로는 앞으로도 왜소한 한국 축구의 모습에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수들은 선수들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축구에 대한 열정과 실력을 키워나갈 때 우리에게 더 이상 '카타르의 기적'은 필요 없게 될 것이다.
- 정몽준 국제축구연맹 명예부회장 |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