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전5기’ 한국 권투의 전설 <font color=blue>홍수환</font> - 문화일보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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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건 조회 621회 작성일 2005-09-04 00:00
‘4전5기’ 한국 권투의 전설 <font color=blue>홍수환</font>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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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윤의 스포츠인생>
“매맞는 복싱보다 인생이 더 무서워…”
‘4전5기’ 한국 권투의 전설 홍수환
이동윤기자 dy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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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오냐, 대한국민 만세다.”

1974년 7월 3일 새벽(한국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에서 홍수환(당시 24세)은 막강했던 챔피언 아널드 테일러를 4번이나 다운시킨 끝에 세계권투협회(WBA) 밴텀급 타이틀을 따냈다. 그리고 홍수환과 어머니(황논성씨·94년 타계)가 나눈 두 마디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홍수환은 2차 방어전에서 멕시코의 강타자 알폰소 사모라(75년 3월 14일 4라운드 KO패)에게 타이틀을 잃고 다시 도전(76년 10월 16일)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홍수환은 그대로 스러지지 않았다. 77년 11월 26일 ‘지옥에서 온 악마’라는 별명의 헥토로 카라스키야와의 WBA 주니어 페더급 초대 챔피언 결정전(파나마)에서 4번의 다운을 당하고도 3회에 기적같은 역전 KO승을 거뒀다. 어떤 호사가는 이때 홍수환의 4전5기 신화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일컬을 정도로 통쾌한 것이었다.


복싱의 황금기, 그리고 천재 복서들의 각축장이었던 황금의 체급에서 영웅으로 우뚝 섰지만 ‘인생의 링’에서는 굴곡이 많았던 홍수환을 지난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로비에서 만났다. 그와의 약속은 ‘SH 45’라는 회사를 통해야 했는데 시간 잡기가 의외로 힘들었다. 빡빡한 강연 스케줄, 그리고 이승연 아나운서와 함께 진행하는 KBS Happy FM 106.1의 생방송 일정 때문이란다.

벌써 55세. 그러나 앞머리가 훤히 벗겨진 것을 빼면 장난기가 가득한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몸 관리도 잘했는지 ‘라이트급’정도로 보였다. ‘SH 45’가 매니지먼트를 해주는 회사인가요? “아, 그거 내가 차린 회사야. 지금은 스케줄 관리를 하는 정도지만 앞으로 향수하고 사촌동생이 특수하게 제조하는 홍삼 판매업도 할 계획이지. SH 45는 (홍)수환 4전5기 이니셜이고.”

화제를 74년 당시 모자의 대화로 돌렸다. “거리에서 싸움을 해봐. 1분도 안돼서 끝나잖아. 그런데 복싱은 45분간 싸워야 해. 끝나면 아픈 것 외에는 멍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그런데 갑자기 엄마 목소리가 들려서 평소 하던 대로 말했지. 엄마도 대한민국을 실수로 ‘대한국민’이라고 한거고. 엄마와의 통화가 방송에 나가는지도 몰랐어. 중계되고 있는 줄 알았으며 그렇게 안하지. ‘어머니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이렇게 점잖게 말했지.”

그는 당시 명문고였던 중앙고를 시험쳐서 들어간 머리 좋은 학생이었다. “그때 중앙고가 잠시 후기로 돌았는데 경기, 서울고 떨어진 애들이 몰렸었지. 나는 경복고 시험봤다가 낙방해서 갔고.”

홍수환은 고2때 복싱에 입문했지만 어려서부터 복싱광이었다. 아버지 덕분이었다. 어렸을 때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 살았는데 복싱도장을 하던 ‘콧수염’ 김준호씨가 이웃이었다. 신의주 출신인 그의 부친(홍경석씨)은 탄광업을 하며 넉넉하게 살았다. 워낙 복싱 관람을 즐겨 김준호씨가 자주 초청장을 보냈고 이런 인연으로 김씨의 후원회장 역할을 했다. 부친의 손에 이끌려 구경다니던 홍수환은 중학생때 공부시간에 미국의 복싱 전문월간지 ‘링(Ring)’을 해석하며 읽다가 교사에게 혼쭐이 나는 등 복싱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고2때 김기수가 세계챔피언에 오르는 것을 보고 김준호씨의 서울 용산구 후암동 동신체육관에 입문했다. 14세때 고혈압으로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챔피언 벨트를 바치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은 데뷔 5년만에 지켜졌다.

어느 종목이나 세계정상에 오르려면 땀은 물론 운도 있어야 한다. “2번의 세계챔피언에 오를 때마다 누군가가 도와준 것 같다고 생각되는 행운이 따랐어. 더반에 가서도 테일러가 어떻게 생긴 선수인지도 모를 정도로 정보가 없었어. 그런데 경기를 앞두고 테일러 진영에서 내분이 발생, 트레이너가 교체됐는데 잘린 트레이너가 경기 테이프를 가져다 주어 전략을 세울 수 있었어. 카라스키야와의 대결에서는 룰 미팅때 그쪽에서 갑자기 프리녹다운제로 바꾸자고 한 거야. 3회 다운이면 KO되는 WBA 규정대로 했다면 4전5기 신화는 없었지.”

카라스키야측은 왜 규정을 바꾸어 스스로 무덤을 팠을까. “나를 아예 죽일 작정이었지. 그때 17세였던 카라스키야는 11전 11KO승이었는데 신설체급인 주니어페더급을 차지하면 파나마는 4체급 세계챔피언을 보유하게 되거든. 이길 것은 확실하다고 자신하고 있었으니 나를 수십번 때려 뉘어서 이 경기를 국민적 축제로 만들 생각이었던 것 같아.”

홍수환은 50전 41승(14KO)4무5패의 전적을 남겼다. 50전의 상대중 가장 힘들었고 기억에 남는 복서는 누구일까. 사모라나 카라스키야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태국의 수코타이를 꼽았다. “벙어리 복서였던 수코타이는 90% 이상의 KO율을 자랑하던 하드펀처였는데 72년 태국에서 맞붙었어. 3회에 내가 먼저 다운시켰는데 이후 중반까지 고전했지. 8회 TKO로 이겼지만 다시 싸우기 싫은 상대였어. 한대 맞으면 멍멍한 느낌을 주는 아주 기분 나쁜 주먹을 가졌었어.”

2번 세계챔피언에 오르며 돈은 얼마나 벌었을까. “사모라한테 8만달러를 받고 도전을 받아주었는데 10만달러를 주기로 하고 인천으로 불렀지. 그런데 스폰서가 붙지 않아. 사모라가 25전 25KO승이었으니 질게 뻔하다 이거지. 할 수 없이 후암동에 사두었던 목욕탕을 팔아 파이트머니를 만들었어. 당시 강남 땅 1평에 400~500원 할 때고 100만원이면 집 한 채 살 수 있었으니 10만달러면 지금 돈 몇십억원이야. 그놈의 심판 때문에 전 재산을 날렸어. 2번째 챔피언이 된 후에도 돈을 좀 모았는데 ‘돈은 써야 한다’는 게 생활신조였고 내가 술을 좀 마셨지. 홍가치고 술 못 먹는 사람 봤어? 그런데다 옥희 때렸다가 합의금 주고 하느라고 다 없어졌어.”

사모라와의 리턴매치는 결국 큰돈을 없앴는데 그 경기는 정확히 말하면 ‘노 콘테스트’다. 멕시코 선수와 싸우는데 멕시코인이 주심을 봤다. “전호연씨가 비즈니스를 잘못한 거지. 지금도 자신있게 말하지만 이길 수 있는 경기였어. 그런데 주심이 9회에 내가 KO찬스를 잡자 브레이크를 시키고 12회 내가 로프에 몰리자 카운트도 하지 않고 경기를 중단시켜 버린거야. 11회까지 점수로도 내가 약간 앞서있었는데. WBA 감독관 코르도바가 무판정 경기라 선언했어.”

그는 은퇴 후 이민간 첫 부인을 따라 미국에 건너가 알래스카에서 택시 운전사를 하다 마약밀매업자로 구속되기도 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는 청부폭력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기도 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물론 두 건 모두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

“매 맞는 복싱보다 인생이 더 무섭더라고. 알래스카에서는 택시 단골손님이 봉투를 누구에게 좀 갖다주라는 부탁을 했는데 그게 마약이었고, 청부폭력건은 아는 사람이 내 이름을 판 거야. 그런데 믿어주지를 않아요. 도하 각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그때 유일하게 문화일보만 공정하게 다뤘지. 그래서 억울한 사람 말 들어주는 좋은 신문이라는 호감을 갖고 있어.”

그는 기업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을 하러 다닌 지 벌써 11년째다. “94년에 삼척시장을 하시던 남동우씨가 ‘자네는 말 재간이 있으니 4전5기 신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 어떤가’하시며 그해 강원도 연수원에서 첫 강연을 시킨 것이 시작인데,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터지면서 내 4전5기 이미지가 필요했던지 아예 강연하는 게 직업이 될 정도로 바빴어. 강연 주제는 ‘프로정신을 갖자’야. 내가 말하는 프로정신의 골자는 집중력을 가지라는 것이지. 링에서는 쓰러지면 일으켜 세워주는 레프리라도 있지만 인생에서는 스스로 일어서지 않으면 그냥 끝이야.”

홍수환은 2003년 강연 내용을 모은 책도 펴냈다. “출판사에서 의뢰가 와서 책을 냈는데 제목을 놓고 한참 싸웠어. 나는 ‘링보다 인생이 무섭더라’를 원했는데 출판사에서 ‘누구나 한방은 있다’를 고집했어. 그게 더 팔리는 제목이라나. 결국 그 출판사는 돈을 별로 못벌었어.처음에는 잘나가더니 남편 스캔들 까발린 배인순씨의 자서전이 나오니까 내 책이 안나가데. 우리나라 사람들 남의 스캔들이나 좋아하고 문제야 문제.”

그는 주말이면 교회에 열심히 나간다. “내가 원래 교회에서 태어났어. 엄마가 피란와서 서울 중구 장충동 신광교회에서 나를 낳았다고. 가수를 했던 동생, 수철이는 전도사야. 지금 경기 구리시 인창동의 예빛교회라는 개척교회를 하는데 주일이면 머릿수 채워주러 나가.”

방송 인기는 어떤지? “아 좋아, 담당 국장님 표정이 밝아요. 사람들도 재미있다고 하고. 나 방송 진짜 열심히 해볼거야. 홍수환이가 뜬 게 챔피언 됐을 때의 그 멘트 때문인데 라디오와는 인연이 있나봐.”

홍수환은 현재 옥희와 재결합해서 초등학교 6년생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큰아들이 복싱에 소질이 남달라 한국에서 데뷔전도 가졌지만 그의 만류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동윤기자 dylee@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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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링의 사나이라 남자답게 화끈하고 시원 시원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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