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대의 위기탈출] <font color=blue>徐慶錫(51회)</font> - 월간조선 7월…
본문
[내 인생 최대의 위기탈출] 徐慶錫
내 발 앞에 수류탄이 투척되고, 16명의 베트콩이 총을 난사하며 덮쳐 왔다
땅바닥에 깔려 있는 포장지 사이로 수류탄을 잡은 손이 쑤욱 올라 왔다. 세상에 이럴 수가!
徐慶錫 駐韓 캄보디아 명예영사
1942년 경기 의정부 출생. 중앙高·고려大 사학과 졸업. ROTC 3기. 파월 맹호부대 소대장·중대장, 육군 제6군단장, 고려大 객원교수 역임. 충무무공훈장·화랑무공훈장 수훈.
베트콩의 지역 사령부를 찾아내다
1969년 맹호부대 1연대 11중대장 시절, 베트콩과 전투를 할 때다. 월맹군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는 베트콩들은 게릴라 전술을 구사하면서, 전투준비가 허술한 민간인 차량이나 보급품 조달 차량을 집중 공격했다.
베트남에 진출해 있던 「韓進(한진)」의 자동차가 보급품을 싣고 1번 도로를 따라 이동하다가 敵으로부터 기습을 당했다. 자동차 여섯 대가 불타고 운전기사와 호송인원이 사살당했다.
우리 중대는 다른 4개 중대와 함께 敵의 근거지인 퀴논 지역의 해안 염전지대 소탕작전에 투입됐다. 염전의 작은 나무 뒤에 숨어 있던 敵 한 명이 손을 들고 바들바들 떨면서 투항을 했다. 퀴논 사범학교에서 영어선생을 했다는 이 포로는 불안에 떨며 유창한 영어로 『제네바 협정을 지켜 달라』고 내게 하소연을 했다.
그는 자신들의 아지트인 한 농가 지하의 동굴로 우리를 안내했다. 동굴을 수색하니 안에서 베트남 사람 특유의 냄새가 났으나,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동굴 안에서는 미국산 「살렘」 담배꽁초가 발견됐다.
담배 필터의 니코틴을 자세히 보니 버린 지 얼마 안 된 것이었다. 「이 지역 베트콩 사령관이 살렘 담배를 피운다」는 첩보를 입수한 상태여서, 이 동굴이 이 지역 베트콩의 사령부였음을 직감했다.
도망갈 곳을 비워 두고 3面을 포위
긴장감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포로들의 진술을 믿고 따라갔다가 허탕을 치거나 심지어 숨어 있던 敵의 기습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포로들이 우선 살고 보자는 공포심에 엉터리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포로가 알려준 두 번째 지점으로 갔다.
한 농가 마당에 아주 양질의, 그것도 만든 지 얼마 안 되는 시멘트 블록 더미가 몇 개 있었다. 그 밑이 敵 게릴라의 사령부 은거지라는 얘기였다. 소대장과 분대장을 불러 지시를 했다.
사방을 포위하면 우군끼리 총을 쏠 염려가 있어, 敵이 통로로 이용했던 농가 문 쪽에는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다. 이 문 쪽으로 집중사격을 하도록 지시했다.
시멘트 블록 더미를 한 장씩 한 장씩 긴장하면서 걷어 냈다.
나는 소총의 자물쇠를 연발 위치에 놓고 「쪼그려 쏴」 자세로 시멘트 블록 더미 쪽을 노려봤다. 블록을 걷어 내던 분대장이 외쳤다.
『중대장님. 땅 바닥에 호랑이표 시멘트 포장지가 깔렸습니다』
나는 짤막하게 명령을 내렸다.
『비를 막으려고 깔아 놓은 것이다. 수류탄을 까 넣어라!』
바로 그 순간, 깔려 있는 포장지 사이로 수류탄을 잡은 손이 쑤욱 올라 왔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야, 그 손을 잡아라!』 분대장이 두 손으로 수류탄을 쥔 敵의 손을 잡았다. 분대장은 그 손을 안으로 집어넣으려고 기를 쓰고, 敵은 밖으로 수류탄을 던지려 하고… 세상에 이럴 수가!
敵의 손을 잡은 분대장이 일그러진 얼굴로 옆에 있는 병사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자식아! 어떻게 좀 해봐라!』 그 병사는 대검을 꺼내더니 敵의 손목 안쪽을 내리찍었다. 敵의 손이 안으로 들어갔다. 수류탄과 함께….
나와 분대장은 『엎드려!』라고 소리를 질렀고, 병사들은 대나무 울타리 둔덕 위로 번개같이 몸을 날렸다. 순간, 그 블록 더미가 무너지더니 4명의 적이 총을 난사하며 튀어 나왔다.
그리고 敵이 던진 수류탄이 『꽝』 하고 터졌다. 내 앞 1m도 안 되는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오른편 농가 창문으로 머리부터 쑤셔 박고 몸을 내던졌다. 방바닥에 나뒹구는 순간 「철커덕」 하고 철모가 바닥에 떨어졌다.
철모를 대충 집어 쓰고 창문 밖으로 총구를 내밀었다. 그 순간 나머지 3개의 블록 더미가 무너지더니 한 곳에서 4명씩 12명의 敵이 동시에 총을 난사하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쏴라! 쏴!』
나는 정신없이 고함을 질렀다. 언제 왔는지 내 무전병이 옆에서 같이 사격을 하고, 위쪽 울타리 대나무 숲에 엎드린 대원들이 집중사격을 했다.
『땅땅땅!』
『드르륵!』
인간의 이상한 本能
16명의 베트콩은 대부분 우리가 비워 둔 방향으로 달려갔으나, 2명은 집 뒤편으로 달려가 담을 넘으려고 했다. 무전병은 대나무 담을 넘으려고 버둥대는 敵을 향해 정신없이 총을 쐈다. 나와 다른 병사들은 문 쪽으로 달아나는 敵들을 소탕했다. 전투는 3분 여 만에 끝났다.
사람이란 참으로 이상하다. 죽는 줄 알면서도 급하면 본능적으로 자기가 다니던 길로 도망을 간다. 산의 토끼가 다니던 길로만 다니다가 덫에 걸리는 것과 같다. 16명 전부를 사살했는데, 그중에 14명이 늘 다니던 문 쪽으로 달아나다 사살되었다.
근거리 전투라 우군의 피해가 있을 것으로 걱정했다. 그러나 한 사람도 다친 사람이 없었다. 하늘이 도왔다. 이 지역의 베트콩 사령관·부사령관·여성위원장을 포함하여 참모들이 전부 사살되었다.
나는 그때의 경험을 평생 교훈으로 알고 살았다.
상황에 대한 정확한 예측, 철저한 준비가 전투현장에서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한다. 만약 그곳에서 내가 병력을 분산시켜서 수색을 벌였다면, 우리 중대원들의 상당수가 敵의 기습에 무방비로 노출됐을 것이다.
만약 그때 敵의 퇴로를 열어 주지 않고 사면을 봉쇄했더라면 敵들은 탈출을 포기하고 죽기살기로 우리와 맞섰을 것이다. 「준비하고 정확하게 예측해서 대응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나는 그 전투현장에서 깨달았다.●
내 발 앞에 수류탄이 투척되고, 16명의 베트콩이 총을 난사하며 덮쳐 왔다
땅바닥에 깔려 있는 포장지 사이로 수류탄을 잡은 손이 쑤욱 올라 왔다. 세상에 이럴 수가!
徐慶錫 駐韓 캄보디아 명예영사
1942년 경기 의정부 출생. 중앙高·고려大 사학과 졸업. ROTC 3기. 파월 맹호부대 소대장·중대장, 육군 제6군단장, 고려大 객원교수 역임. 충무무공훈장·화랑무공훈장 수훈.
베트콩의 지역 사령부를 찾아내다
1969년 맹호부대 1연대 11중대장 시절, 베트콩과 전투를 할 때다. 월맹군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는 베트콩들은 게릴라 전술을 구사하면서, 전투준비가 허술한 민간인 차량이나 보급품 조달 차량을 집중 공격했다.
베트남에 진출해 있던 「韓進(한진)」의 자동차가 보급품을 싣고 1번 도로를 따라 이동하다가 敵으로부터 기습을 당했다. 자동차 여섯 대가 불타고 운전기사와 호송인원이 사살당했다.
우리 중대는 다른 4개 중대와 함께 敵의 근거지인 퀴논 지역의 해안 염전지대 소탕작전에 투입됐다. 염전의 작은 나무 뒤에 숨어 있던 敵 한 명이 손을 들고 바들바들 떨면서 투항을 했다. 퀴논 사범학교에서 영어선생을 했다는 이 포로는 불안에 떨며 유창한 영어로 『제네바 협정을 지켜 달라』고 내게 하소연을 했다.
그는 자신들의 아지트인 한 농가 지하의 동굴로 우리를 안내했다. 동굴을 수색하니 안에서 베트남 사람 특유의 냄새가 났으나,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동굴 안에서는 미국산 「살렘」 담배꽁초가 발견됐다.
담배 필터의 니코틴을 자세히 보니 버린 지 얼마 안 된 것이었다. 「이 지역 베트콩 사령관이 살렘 담배를 피운다」는 첩보를 입수한 상태여서, 이 동굴이 이 지역 베트콩의 사령부였음을 직감했다.
도망갈 곳을 비워 두고 3面을 포위
왼쪽에서 두 번째 총을 안고 있는 사람이 필자. 맨 오른쪽 반바지차림의 사나이가 영어선생을 했다는 「포로」다. |
긴장감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포로들의 진술을 믿고 따라갔다가 허탕을 치거나 심지어 숨어 있던 敵의 기습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포로들이 우선 살고 보자는 공포심에 엉터리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포로가 알려준 두 번째 지점으로 갔다.
한 농가 마당에 아주 양질의, 그것도 만든 지 얼마 안 되는 시멘트 블록 더미가 몇 개 있었다. 그 밑이 敵 게릴라의 사령부 은거지라는 얘기였다. 소대장과 분대장을 불러 지시를 했다.
사방을 포위하면 우군끼리 총을 쏠 염려가 있어, 敵이 통로로 이용했던 농가 문 쪽에는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다. 이 문 쪽으로 집중사격을 하도록 지시했다.
시멘트 블록 더미를 한 장씩 한 장씩 긴장하면서 걷어 냈다.
나는 소총의 자물쇠를 연발 위치에 놓고 「쪼그려 쏴」 자세로 시멘트 블록 더미 쪽을 노려봤다. 블록을 걷어 내던 분대장이 외쳤다.
『중대장님. 땅 바닥에 호랑이표 시멘트 포장지가 깔렸습니다』
나는 짤막하게 명령을 내렸다.
『비를 막으려고 깔아 놓은 것이다. 수류탄을 까 넣어라!』
바로 그 순간, 깔려 있는 포장지 사이로 수류탄을 잡은 손이 쑤욱 올라 왔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야, 그 손을 잡아라!』 분대장이 두 손으로 수류탄을 쥔 敵의 손을 잡았다. 분대장은 그 손을 안으로 집어넣으려고 기를 쓰고, 敵은 밖으로 수류탄을 던지려 하고… 세상에 이럴 수가!
敵의 손을 잡은 분대장이 일그러진 얼굴로 옆에 있는 병사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자식아! 어떻게 좀 해봐라!』 그 병사는 대검을 꺼내더니 敵의 손목 안쪽을 내리찍었다. 敵의 손이 안으로 들어갔다. 수류탄과 함께….
나와 분대장은 『엎드려!』라고 소리를 질렀고, 병사들은 대나무 울타리 둔덕 위로 번개같이 몸을 날렸다. 순간, 그 블록 더미가 무너지더니 4명의 적이 총을 난사하며 튀어 나왔다.
그리고 敵이 던진 수류탄이 『꽝』 하고 터졌다. 내 앞 1m도 안 되는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오른편 농가 창문으로 머리부터 쑤셔 박고 몸을 내던졌다. 방바닥에 나뒹구는 순간 「철커덕」 하고 철모가 바닥에 떨어졌다.
철모를 대충 집어 쓰고 창문 밖으로 총구를 내밀었다. 그 순간 나머지 3개의 블록 더미가 무너지더니 한 곳에서 4명씩 12명의 敵이 동시에 총을 난사하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쏴라! 쏴!』
나는 정신없이 고함을 질렀다. 언제 왔는지 내 무전병이 옆에서 같이 사격을 하고, 위쪽 울타리 대나무 숲에 엎드린 대원들이 집중사격을 했다.
『땅땅땅!』
『드르륵!』
인간의 이상한 本能
16명의 베트콩은 대부분 우리가 비워 둔 방향으로 달려갔으나, 2명은 집 뒤편으로 달려가 담을 넘으려고 했다. 무전병은 대나무 담을 넘으려고 버둥대는 敵을 향해 정신없이 총을 쐈다. 나와 다른 병사들은 문 쪽으로 달아나는 敵들을 소탕했다. 전투는 3분 여 만에 끝났다.
사람이란 참으로 이상하다. 죽는 줄 알면서도 급하면 본능적으로 자기가 다니던 길로 도망을 간다. 산의 토끼가 다니던 길로만 다니다가 덫에 걸리는 것과 같다. 16명 전부를 사살했는데, 그중에 14명이 늘 다니던 문 쪽으로 달아나다 사살되었다.
근거리 전투라 우군의 피해가 있을 것으로 걱정했다. 그러나 한 사람도 다친 사람이 없었다. 하늘이 도왔다. 이 지역의 베트콩 사령관·부사령관·여성위원장을 포함하여 참모들이 전부 사살되었다.
나는 그때의 경험을 평생 교훈으로 알고 살았다.
상황에 대한 정확한 예측, 철저한 준비가 전투현장에서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한다. 만약 그곳에서 내가 병력을 분산시켜서 수색을 벌였다면, 우리 중대원들의 상당수가 敵의 기습에 무방비로 노출됐을 것이다.
만약 그때 敵의 퇴로를 열어 주지 않고 사면을 봉쇄했더라면 敵들은 탈출을 포기하고 죽기살기로 우리와 맞섰을 것이다. 「준비하고 정확하게 예측해서 대응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나는 그 전투현장에서 깨달았다.●
댓글목록
손 창수 님, 감사합니다. 내가 컴퓨터 실력이 모자라서 제대로 올리지를 못 했는데 대신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지난 계호회 총회에 갔었는데, 선배님께서 외국에 나가셔서 못 뵙고 왔습니다. 앞으로 자주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