勝戰國 위해 정부가 나서 위안부 모집했던 일본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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勝戰國 위해 정부가 나서 위안부 모집했던 일본
입력 : 2014.03.04 05:42
- 신정록 논설위원
앞서 8월 15일 일왕의 항복 선언 후 일본에선 '미군이 상륙하면 여자들을 남김없이 겁탈할 것'이라는 소문이 쫙 퍼졌다. 이 얘기를 퍼뜨린 것은 전선(戰線)에서 돌아온 군인들이었다. 그들이 동아시아 일대에서 저지른 만행을 미군이 일본에서 저지를 것이라는 얘기였다.
일본 정부도 겁에 질렸다. 내무성은 8월 18일 전국 경찰에 점령군 전용 '특수 위안 시설'을 만들라고 비밀 지시했다. 부총리는 "일본의 딸을 지켜주기 바란다"며 경시총감에게 이 사업을 직접 지휘하라고 했다. 일본 정부는 매춘업자에게 당시 돈 1억엔을 지원했다. 굶주리던 많은 여성이 광고 간판을 보고 찾아갔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돌아갔다. 하지만 "나라를 위해 헌신한다는 생각으로 왔다"는 여성도 적지 않았다.
점령군 1진이 일본에 들어오던 8월 28일 도쿄 황궁 앞에서 '특수위안시설협회' 창립 대회가 열렸다. '선서'가 낭독됐다. '(천황이) 주둔군 위안의 난업(難業)을 과(課)하셨도다. … 국체(國體) 호지(護持)에 정신(挺身)할 뿐'이라는 내용이었다. 국가를 위해 몸 바쳐 앞장선다는 이른바 '정신대' 논리였다.
8월 27일까지 도쿄에서만 여성 1360명이 모집되었고, 20개 도시로 확대됐다. 여성은 하룻밤에 미군 15~60명을 상대해야 했다. 자살하는 여성도 속출했다. 이런 정부 주도 집단 매춘은 1년간 계속됐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은 현대 일본이 감추고 싶은 상처다. 국가가 사죄하기 위해 진상 규명을 하는 것이 아닌 바에야 자꾸 상처에 소금 뿌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역사를 길게 요약하는 이유는 요즘 일본 정치인의 정신세계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민당 정권의 2인자인 이시바 시게루 당 간사장은 1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다시 듣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말한 '고노 담화 재검증'을 좀 더 구체화한 말이었다. 이들은 이른바 '협의(狹義)의 강제성'을 입증할 만한 자료가 명확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려 하고 있다.
고노 담화는 1991~92년 피해 할머니 16명의 '눈물의 증언'을 토대로 나왔다. 그 증언이 씨앗이 돼 지금 세계인의 관심사가 됐다. 그 이면에는 성적 모멸감에 평생 숨죽이다가 죽어간 할머니도 많다. 지금 생존해 있는 할머니는 55명, 평균 연령 88세다. 일본의 위정자들은 이 할머니들을 불러내 도대체 무슨 얘기를 또 듣겠다는 것인가. 그들이 '정신대' 논리로 일본 여성을 동원했던 것처럼, 조선 여성도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서 그랬던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가난에 찌든 조선의 10대 처녀들이 집안 빚을 갚기 위해 전선(戰線)으로 갔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일본은 더 이상의 도발을 멈추고 할머니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